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의동 에밀리 May 04. 2024

우당탕탕 쪽지시험 육아열차

1개월 9일

저녁 7시 쯤에 수유를 하고 아이를 재웠다. 


낮이라면 모를까, 밤잠만큼은 모로반사 때문에 깨지 않도록 스와들업으로 갈아입혀 주었다. 아이는 그런 건 난 모르겠고 저녁 빨리 달라고 난리난리를 치며 울어제꼈다. 하지만 무시하고 옷을 갈아입혔고, 그 참에 기저귀도 갈아주었다. 


생후 5주 밖에 되지 않은 아기였다. 밥을 먼저 먹고 나서 옷을 갈아입히려고 눕혀 버리면 그 즉시 게워내서 또 새 옷을 갈아입어야 할 게 분명한 나이였다. 아이가 운다고 해서 모든 것을 들어줄 수는 없었다. 아기가 울면 그저 "루나야 아빠가 맘마 만들러 가셨네~ 맘마 주신대 맘마~" 하고, 나에게 되뇌는 것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말을 읊조리며 울음을 한 귀로 듣고 흘렸다. 




아직도 갈 길이 멀지만, 그래도 첫 날에 비교하면 완전 양반이 되었다. 


조리원에서 퇴소하고 집에 돌아온 첫 날 밤은 전쟁이었다. 대체 수유 텀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조차 몰랐다. 아이가 자지러지게 우는 이유는 배고픔밖에 없다고 주장하는 남편과, 한 시간 밖에 되지 않았으니 밥을 또 먹이면 안될 것 같다고 주장하는 나 사이에서 우리는 둘 다 우왕좌왕했다. 


지금은 수유텀이 3시간 안팎으로 잡혔다. 아침 6~7시 쯤에 첫 수유를 하고, 저녁 6~7시 쯤에 막수(마지막 수유)를 한다. 물론 아이가 생후 만 1개월 밖에 되지 않아서 밤중에도 수유가 필요하지만, 고맙게도 아이는 벌써 밤낮을 구분하면서 막수 이후에는 잠을 비교적 푹 자 주고 있다. 요 며칠은 밤에 3시간이 아니라 4시간씩도 수유 없이 쭉 잠을 자기도 했다. 


분유를 어느 정도 주면 3시간 텀이 잡히고 크게 게워내지도 않을지 살짝 감이 잡혔다. 덕분에 아이가 밥을 먹고 나서 빨래며 물건 정리 등 집안일도 하고 쪽잠도 자는 생활을 점점 찾아가고 있다.




오늘은 남편과 합심해서 '먹-놀-잠'을 만들어주려고 노력했다. 


먹고, 놀고, 자는 패턴을 육아 서적들에서 추천해줬다. 먹은 다음에 바로 자면 소화도 안 될 뿐더러 '먹으면-잔다'라는 패턴이 '먹어야-잔다'로 이어지거나 혹은 '먹다가-잔다'로 변질될 수 있다고 한다. 


한편으로는 '먹-놀-잠' 대신에 '먹-잠-놀'이 되면 에너지 측면에서도 좋지 않다고 한다. '놀다가-먹는다'가 되기 때문에 아이가 노는 데에 힘을 다 써버려서 충분히 먹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부족하게 먹고, 부족하게 먹었으니 배고파서 잠을 금방 깨고, 잠을 덜 잤으니 피곤해서 또 조금만 먹게 되는 악순환이 만들어진다. 




어차피 나는 가지고 있던 육아 지침 같은 게 딱히 없었으니 책을 따라보기로 했다. 


목표는 책에서 말한 대로 아이에게 건강한 일과를 만들어주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서 분유를 다 먹인 다음에는 아이가 필시 잠에 빠져들었는데, 그럴 때면 남편에게 "루나 깨워줄 수 있어요?" 하고 부탁했다. 


남편은 등센서를 활용해서 아이를 바운서 같은 데에 올려두었다. 그러면 아이는 찡찡대면서 눈을 뜨지만 결국에는 모빌을 보든 팔다리를 파닥거리든 1시간 정도를 놀았다. 그러다 "아얽……" 하는 소리를 내며 칭얼대면 '1시간 이상 깨어 있어서 지쳤을까?'를 생각해 보고, 만약 맞다면 단 30분만이라도 잠을 잘 수 있게 토닥이고 이름을 불러줬다. 


그렇게 하루를 보냈더니 신기하게도 아이는 모유를 빠는 모습부터가 달라졌다. 평소 같았으면 젖을 물자마자 3초만에 잠들었을 텐데, 5분이 지나도록 눈을 깜빡이며 턱을 열심히 움직였다. 어찌나 열심이었으면 나중에는 울 때 턱을 덜덜 떨었다. 처음에는 어디 아픈가 싶었는데, 인터넷에서 남편이 검색해 준 바에 따르면 모유를 먹느라 턱관절을 많이 쓰면 그럴 수 있다고 한다. 나도 예전에 런지를 빡세게 했더니 다리가 후덜거렸는데, 그 기억을 떠올리니 아이가 귀엽고 기특했다.




만약 책을 안 읽었더라면 어땠을까?


뭘 아는 게 있어야 전략을 세우지, 나는 육아에 대해서 완전히 무지한 상태였으니 아마 지금보다도 더 허둥댔을 게 분명하다. 의지할 곳이라고는 산후조리원에서 들은 설명과 산후도우미님으로부터 전수 받은 팁 정도였겠거니. 투자로 치자면 누가 "ㅇㅇ 주식이 오를거라더라" 하는 말만 듣고 주식을 사는 것과 다를 게 없었다. 


왜 오를 것이라고 하는지, 그 근거가 타당해 보이는지,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고 생돈을 털어넣는 셈이다. 게다가 남이 이야기하는 피상적인 내용만 듣고 행동하면, 환경이 바뀌거나 나에게 특수한 경우가 생길 때 스스로 판단하는 능력도 키울 수가 없다. 


아이가 커갈수록 월령/연령에 따라 챙겨야 할 게 다르고 또 아이마다 기질도 다르니, 육아도 내가 직접 알아보고 판단해야 맞는 방향으로 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맘카페나 블로그의 이야기들은 전적으로 믿고 따르기 보다는 '참고'만 해야 하는 경험담으로 봐야 했다. 


아마 따로 공부를 안 했으면, '먹-놀-잠'을 만들어 줘야겠다는 생각을 중심으로 잡지 못했을 것 같다. 중심이 없으니 그저 다른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만 듣고 이리저리 휘둘리다가 '우리 아이는 매운맛이네……' 하고 지쳐갔겠지. 지금도 체력적으로 지치는데, 그랬더라면 더 큰일이었을 것 같다.




다만 육아는 배워야 할 게 너무 많은 데 비해서 주어진 시간이 늘 촉박하다는 점이 문제였다. 


육아를 대학교 강의에 비교하자면, 마치 매일매일 쪽지시험을 보는 수업처럼 느껴졌다. 하루도 빠짐없이, 수업 때마다 교수님이 쪽지시험을 치르게 한다. 개강 전에 예습을 할 수도 없고, 부지런하게 허겁지겁 진도를 따라가며 공부해야 하는 강의 스타일 같았다. 만약 이 설국열차같은 폭주기관차를 따라잡지 않으면, 신생아 시기가 다 지나고 나서야 '아차, 생후 0개월 한 달 동안은 이렇게 했어야 했군……' 하고 후회할 일이 생겼다. 


그렇게 몰아치는 성격인 데에 비해서, 아무도 육아에 대해 미리 알려주는 체계가 없다는 점이 한편으로는 신기하게 느껴졌다. 학교에 '육아' 수업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나라에서 산전/산후 교육을 떠먹여주지도 않았다. 


매일이 아이 먹이고 재우느라 잠도 부족했지만, 그럴수록 마음이 좀 절박해져서 육아 서적들을 찾아 읽었다. 친구가 선물해 준 <삐뽀삐뽀 119> 책을 먼저 쓱 훑어봤다. 그러면서 '진짜 중요한데 내가 놓치는 부분은 없는지'를 체크해봤다. 


그 다음에는 산후관리사님이 추천해 주신 <잘 자고 잘 먹는 아기의 시간표>를 읽었다. 이 책이 좋은지 아니면 다른 책이 더 좋을 지 따져볼 수도 있었지만, 나는 모르는 분야에서는 피곤하게 재고 따지기 보다는 일단 전문가와 경력자의 이야기를 겸손하게 받아들이는 편이 좋다는 주의였다. 결과적으로도 덕분에 아기 키우는 데에는 먹이고 재우는 것이 팔할이라는 기본 개념을 머릿속에 심을 수 있었다. 


요즘에는 국민 육아서적이라는 <똑게육아>를 읽고 있다. 앞의 두 책이 교과서라면 이 책은 문제집 같은 성격이 강했다. '잘 재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보다는, '재울 때는 쉬-소리를 내주고 옆으로 뉘여서 토닥인 다음……' 하는 식으로 실전 꿀팁을 건네주었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적절한 순서대로 책을 골라 읽은 기분이었다. 


어른들 하시는 말씀으로는 '아이는 자기가 알아서 큰다'라고 하시던데. 공부할 게 이렇게나 많은걸,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내가 부족한 부분은 고맙게도 아이가 알아서 커주며 메워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든다. 



 * 표지사진 출처: Unsplash의 JESHOOTS.COM

매거진의 이전글 육아 업무로 발령받았습니다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