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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의동 에밀리 May 17. 2024

무너지지 마!

2개월 18일

젖병을 바꿨다. 


이전까지는 160ml가 최대인 젖병을 사용해왔다. 수유할 때마다 모유를 먼저 빨린 다음에 분유를 140ml씩 주곤 했다. 그런데 어제 저녁에 막수(마지막 수유) 하면서 여느 때처럼 140ml를 줬더니, 아이가 다 먹고도 혀를 낼름거리며 명확하게 더 달라는 표시를 했다. 


웬만큼 배고픈 게 아니면 혀를 낼름거리지 않았기에 남편도 나도 신기해하며 35ml를 더 타서 주었다. 그랬더니 그마저도 꿀떡꿀떡 잘 먹고 또 혀를 낼름거렸다. 이럴수가? 이미 175ml 먹었어, 루나야. 여기서 35ml를 더 먹으면 200ml가 넘는다구. 


일단 35ml를 더 타주기는 했지만, 과식해서 밤중에 배 아파할까 걱정되어서 조금 남기고 공갈젖꼭지를 물려주었다. 그랬더니 트림을 하면서 꾸벅꾸벅 졸다가 잠이 들었다. 


다음 날인 오늘 아침에는 더 큰 젖병 다섯 개를 꺼내서 깨끗하게 씻은 다음 스팀소독기에 넣고 돌렸다. 240ml 짜리 젖병이었다. 확실히 이전 것에 비해서 컸다. 세척할 때도 160ml 짜리와는 다르게 실리콘 세척솔이 꽉 차게 들어가지 않아서 좀 더 꼼꼼히 씻어주어야 했다. 브레짜(분유 제조기)에 젖병을 세워놓을 때는 받침을 한 단계 아래에 두어야 젖병이 들어갔다. 


기분이 묘했다. ‘내가 완모를 하지 못해서 이 지경에 이르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2개월인 지금은 유축을 하면 40ml가 나왔다. 다른 산모들은 유축하면 100ml는 기본으로 나오던데. 그마저도 아이가 40ml를 다 먹는지도 의문이다. 처음에는 꿀떡꿀떡 소리가 나지만 이내 몹시 건성으로 빨기 때문에, 때로는 수유 후에 유축을 해도 10ml 씩은 더 나오기도 했다. 젖샘은 침샘과도 같아서 ‘실시간 생성’이라고 유튜브에서 얘기하던데, 그래도 아이가 제대로 모유를 안 먹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여전히 들었다. 




유축해도 조금밖에 안 나오고, 아이도 제대로 빨지도 않고. 


이제는 ‘잠시 빠는 시늉을 하면 곧 분유를 주겠지’ 하고 꾀를 내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들었다. 게다가 이미 생후 78일차다. 젖양을 늘리는 골든 타임은 생후 2주 정도까지가 최대치인 모양인데, 이제 와서 주구장창 모유만 빨리면서 완모로 전환하려다가는 그야말로 아이를 쫄딱 굶길 것만 같다.


예전 기록을 어쩌다 들춰봤더니, 한때는 분유 보충 수유를 40ml만 한 적도 있었다. 당연한 이야기이긴 했다. 처음부터 100ml씩 먹는 아기는 없으니까.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 때라도 10ml씩 점차 줄여나갔다면 완모 가능성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또 ‘지금은 성장이 매우 중요한 신생아 시기이기 때문에 1개월은 지나고 나서 시도해 보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조리원 원장님이 말씀해주신 것이 마음에 걸렸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한 번 틀어진 방향성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바로잡기가 어려웠다. 40ml에서 야금야금 줄여나갈 수 있던 시절은 점차 175ml씩 보충 수유를 해주는 날들로 변해갔다. 


이제는 일주일이 아니라 하루에 10ml씩 줄여도 보름 이상이 걸리는 셈이다. 그 사이에 아이 체중이 줄어가면 그것은 또 그 나름대로 고민거리 한 그릇 추가다. 


이제 아이는 눈도 맞추고 방긋방긋 웃기도 하고 흑백 대신 컬러 모빌도 보면서 놀기도 해야 하니, 신생아 때처럼 먹고 자는 데에만 집중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 완모로 넘어가려면 지금의 3~4시간 수유텀 대신에 1~2시간마다 허겁지겁 먹고 자고를 반복하며 하루 10회 이상 수유를 해야 젖양이 아이의 요구량에 맞춰질 수 있다고 한다. 




완모를 못한대도 혼합수유가 완분보다는 훨씬 좋다고 <삐뽀삐뽀 119 소아과> 책에서는 말했다. 


예전에는 ‘그래 나는 최선을 다하고 있어’라고 위안을 받았던 내용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못 해먹겠어서 단유를 할까 하다가도 다시 생각을 접게 하는 문장이 되었다. 한 번 단유를 하면 돌이킬 수 없는 것을. 


‘삐뽀삐뽀 119 정유미’ 채널에서는 혼합수유에서 완모로 가는 과학적인 방법을 이야기했다. 하루 10ml씩 줄이는 무식한 방법을 썼다가는 아이가 성인 기준으로 하루 두 끼씩을 굶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했다. 아기 먹고 사는 문제에는 리스크를 져서는 안 된다며, 대신에 수유 사이사이에 유축을 해서 쌍둥이 동생 효과를 내어 젖양을 늘리라고 했다. 분유 보충량의 적정 여부는 일주일 간 체중 증가량과 하루 여섯 개 이상으로 푹 젖은 기저귀가 나오는지 체크해서 판단하라는 조언도 주었다. 


하지만 결국 그래서 어떻게 분유 보충량을 서서히 줄여나갈 수 있는지는 이야기하지 않았기에 여전히 나는 갈팡질팡했다. 조금씩 줄이는 것을 두고 ‘맘카페에서 하는 말을 홀랑 믿고는 무턱대고 애 굶기는 방식’으로 묘사했는데 (그냥 내가 주관적으로 받아들인 느낌이 그랬다…), 그럼 지금의 분유 보충량이 0ml로 수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오리무중이었다. 조금씩 안 줄이면 어떻게……?


지금 생각으로는 그 때 그냥 밑도끝도 없이 하루에 분유 총 수유량을 10ml씩 줄여버렸으면 어쨌든 되었을 일이었다. 그러면서 매일 체중계에 아이를 올려보면서 전 주 대비 몸무게가 잘 늘고 있는지만 체크하면 끝이었다. ‘아기가 꼼짝없이 굶게 된다’는 말에 벌벌 떨면서 손 놓고 있을 필요가 없었다. 아기가 잘 못 빨았을 때 굶게 되는 것은 혼합수유나 완전모유수유나 매한가지인데, 괜히 우물쭈물 해서는. 




게다가 오늘은 수면교육까지 골머리를 앓게 했다. 


지난 주 화요일부터 아이를 수면교육에 돌입시켰다. 낮에 산후도우미님의 품에서 2시간씩 푹 자던 아이였기에, 등 대고 자는 것을 필수적으로 연습시켜야 했다. 산후도우미님이야 아이 케어하는 것 자체가 일이니 그렇게 재우실 수 있지만, 나는 그랬다가는 인간 라라스 베개 꼴을 벗어나지 못해서 생활이 불가능했다. 


첫 이틀은 최악이었다. 심지어 하루는 아이가 낮에 너무 못 자서 피로가 쌓인 탓이었는지 밤잠까지 설쳤다. 그렇지 않아도 아침부터 평소보다 현격하게 많이 게워올려서 ‘이러다가 수면교육으로 애 잡겠다’ 싶은 생각마저 든 날이었다. 그런데 기존에 잘 자던 밤잠까지 20~30분 간격으로 깨서 우니, 생활 패턴이 엉망이 되나 싶어져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 이후 주말 연휴 동안 남편이 총대를 메고 수면교육을 시켰고, 덕분에 소기의 성과가 있었다. 심지어 첫날은 등 대고 입면까지 성공했다. 졸려하는 아이에게 머미쿨쿨 이불을 덮어주고 쪽쪽이 물린 채로 토닥이다가 나왔더니, 슬슬 눈을 감고 자기가 알아서 잠들었다!


그런데 어제와 그제는 도저히 아이가 침대에서 입면하도록 유도하지를 못했다. 피곤한 상태에서 침대에 눕히기만 하면 칭얼거리며 울었다. 이럴 때는 ‘쉬-’ 소리를 내며 토닥여주어 진정시키라고 책과 유튜브에서 얘기하던데, 다른 집에서는 효과가 있는 모양이지만 어쨌든 우리 아이에게는 전혀 통하지 않았다. 마치 풀 포켓몬에다가 공격이랍시고 물을 뿌려대는 것과도 같았다.




일단 눕혀 놓고 시작했건만 일명 ‘쉬닥법’은 통하지 않으니 점점 울음소리는 격해졌다. 


그러다 보면 도저히 ‘쉬닥’ 따위로는 진정되지 않고 얼굴이 시뻘개지며 팔다리에 땀이 나는 강성울음으로 번졌다. 그럴 때는 들어올리지 않고서는 도저히 달랠 방법도 없는데다가 수면교육 전문가들도 ‘달래지지 않으면 안아올릴 수 있다’라고 하기에 안아서 얼렀다. 


안아서 어르다가 좀 진정된다 싶을 때 내려놓으면 이제는 바로 강성울음과 히끅거림으로 전환되었다. 마치 나에게 ‘드디어 진정됐는데 자꾸 침대에 떨궈서 절 자극시키지 마세요, 피곤해 죽겠다고요!’라고 하는 듯했다. 


그러다 보면 지난 주에 밤잠까지 설쳤던 날의 수면교육이 데자뷰처럼 떠올랐다. 낮에 충분한 낮잠으로써 스트레스 호르몬(코르티솔)을 제대로 처리해 주어야 하며,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밤잠에까지 영향을 미쳐서 좀처럼 푹 잠들지 못한다던 영유아 수면 전문가들의 말이 귓전에 맴돌았다. 


등 대고 재운답시고 이렇게 올렸다 내렸다 하는 것이, 머미쿨쿨 이불이나 내 몸으로 아이를 살포시 눌러서 안정감을 주려는 이 행동이 과연 실전 기술로서 맞는 방법인지도 의문이 들었다. 왜냐하면 자꾸만 실패했으니까. 성공한 적이라고는 남편의 수면교육 첫 날 정도가 전부였으니까. 그 이후로는 이 모양이었으니까!




며칠 전에는 아이가 막수 후에도 바로 잠들지 못하고 침대에서 칭얼거렸다. 


그 바람에 남편이 아이를 재우느라 애를 먹었다. ‘수면교육 하려다가 애 잡겠네’ 싶은 생각이 들었던 문제의 그 날이었다. 그런데 그 후에도 한 번 아이가 웬일로 또 침대에 눕고 얼마 후에 바둥거리더니 눈을 번쩍 뜨고 이내 울었다. 결국 남편이 두어 번 투입되어서 아이를 안아 얼러서 재우는 수밖에 없었다. 


때마침 <삐뽀삐뽀 119 소아과>에 수면교육 편이 있던 것이 생각나서 책을 펼쳤다. 그런데 여기서는 일부러라도 아이가 깬 상태에서 15분 정도 수면의식을 하면서 밤에 등 대고 입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래야 나중에 가서 뒤늦게 수면교육 하느라 쩔쩔매지 않을 수 있다고. 


게다가 그러지 않고 젖 먹여서 재우면 앞으로도 젖 먹어야만 잠이 들고, 밤중에 깰 때도 젖을 찾기 때문에 밤중수유도 끊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러한 수면교육은 생후 2개월부터는 시작해야 한다고 했다. 


지금이 생후 2개월인데?




루나의 저녁은 목욕 후에 조금 놀다가 한숨 자고, 일어나서 살짝 버둥거리다가 잠옷으로 갈아입은 다음에 막수하고 트림하면서 살살 잠드는 것이 일상이 된 지 오래였다. 막수하면서 잠든 아이를 깨우기도 뭣한데다가 이대로 자면 밤중에 다섯 시간 정도는 잘 자고 배고파서 깨는 게 전부였기에 그대로 두고 있었다. 그런데 책을 읽고 나니 이 루틴이야말로 ‘젖 먹여서 재우기’였던 것으로 보였다. 


이제 어쩌지? 지금이라도 뭔가 변화를 줘야 하나? 하지만 지난 주에 목욕 후 막수를 시도했더니 아이가 살짝 각성 상태가 되어서 쉽사리 잠들지 못했다. 그 모습을 보고서 다른 집들은 아마 ‘살짝 각성 상태로 만드는’ 목욕을 수면의식으로 집어넣는 바람에 아이가 밤늦게까지 잠을 못 자는 게 아닐까 싶다고 추측했다. 다시 이전의 저녁 루틴으로 복귀한 것은 물론이었다. 


하루는 산후도우미님께 ‘저녁에 조명 어둡게 하고 잠옷 입힌 다음에 밥 먹이면 바로 잠들기 때문에 수면의식이 따로 없다’라고 고민을 털어놓았다. 그랬더니 ‘그게 수면의식이고, 덕분에 아이가 낮밤을 잘 가리는 것이므로 산모는 지금 잘 하고 있다’라고 하셨는데, 그 말씀도 맞는 말 같고…….




완모를 진작 과감하게 시도하지 못해서 완전혼합수유(!)라는 분유 보충량 과반 이상의 애매한 수유 형태가 된 것도 후회스러운데, 수면 문제에서까지 비슷한 실수를 저지르게 될까봐 덜컥 겁이 났다. 


지금이라도 수면의식을 뭔가 새로이 해야 하나? 밤에는 수유하다가 잠들더라도 “얘야 좀 깨보렴, 수면의식 하고 자게” 하면서 아이를 깨워야 하나? 그래서 아이 눕혀놓고 동화책을 줄줄 읽어주다가, 칭얼거림이 강성울음으로 번지는 것을 속절없는 토닥거림으로 진정시키려 시도하고? 낮에는 낮잠과 밤잠을 모두 설칠 것을 각오하고서라도 무.조.건. 등 대고 입면하도록 몰아세워야 하려나? 


그나저나, 그것들이 맞는 방법인가? 방향성은 맞지만 방법이 완전히 틀렸으면, 그래서 효과가 없는 것이면 어쩌지? 


아니면 이번에도 그냥 광기와 오기로 내가 선택한 방법 한 가지를 밀어붙이면 그만이려나? 마음 같아서는 낮에 아이가 졸려하면 잠옷 갈아입한 다음에 머미쿨쿨로 눌러놓고 침대에 눕힌 채로 ‘안녕 잘 자고 이따 보자’ 한 마디 하고서 1시간씩 기다려보고 싶다. 피곤하면 울다 지치겠지, 별 수 있겠나. 그렇게 한 일주일 하면 지가 알아서 등 대고 잠들겠지. 


하지만 또 ‘낮잠을 잘 못 자면 코르티솔 호르몬이 어쩌고……’, ‘그렇다고 해서 아기를 울게 내버려두는 것은 잔인하다……’ 등의 책에서 읽은 이야기들이 마음을 어지럽힌다. 


여기에 ‘2개월부터는 수면의식을 해야 하고, 부모가 밀어붙이면 할 수 있다’라면서 동시에 ‘3개월까지는 많이 안아주세요’라고 하던 <삐뽀삐뽀 119 소아과>의 문장들도 떠올라서 더욱 아리송해진다. 수면교육 하다가 안아달라고 울어제끼는 ‘2개월’ 아기는 그럼 얼마나 안아줘야 적당할까. 피곤한 게 아니면 울지를 않는 아이인데. 


생후 78일의 아기에게는 먹-놀-잠이 전부인데, 먹일 때는 수유 형태 때문에, 놀릴 때는 피로도 체크 때문에, 재울 때는 수면교육 때문에 머리가 아프다. 그렇게 결국 하루종일 고민하는 셈이 되어버렸다. 저녁이 되자 심신이 모두 지쳐버려서 남편에게 아기 막수와 재우기를 맡기고 집 근처 카페로 도망쳤다. 어쨌든 게임 속 세계보다는 집 앞 카페가 잠시 피신하기에는 훨씬 좋을 테니까. 


시간이 흐른 후 지금을 돌이켜 볼 때, 이 고민의 답은 과연 무엇이 될까…….



 * 표지사진 출처: Unsplash의 Taya Ra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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