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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의동 에밀리 May 22. 2024

영유아 수면 전문가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2개월 23일

‘심심하다……?’


오후 2시. 아이가 잠든 지 2시간이 훌쩍 지난 시각이었다. 


나는 소파에서 잠들었다가 깨어났다. 창문을 열어두었더니 공기는 선선했다. 평소 같았으면 남편이 이렇게 아이를 봐주는 사이에 산책을 다녀왔겠지만, 오늘은 너무 피곤해서 낮잠을 잤다. 


그런데 자고 일어났더니 아무 일도 없었다. 아이는 아직도 자고 있었다. 이래서 사람들이 라라스 베개를 찬양하는 것이었을까? 안겨서가 아니고서는 1시간 넘게 낮잠을 잔 적이 없는 아이였다. 게다가 오전에 부지런히 몸을 움직인 덕분에 집안일도 딱히 남은 게 없었다. 빨래도 갰고, 설거지도 다 했고. 


최근에 읽던 책들도 딱 오늘 낮잠 자기 직전에 두 권을 때마침 다 읽은 상태였다. 오전에는 <베이비 위스퍼>를 드디어 다 읽었다. 왠지 그 책을 다 읽어야 다른 책들을 후련한 마음으로 읽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늘 찜찜했는데. 오후에는 소설책 <내일 또 내일 또 내일>을 완독했다. 흥미로웠지만 몇 주에 걸쳐 읽은 책이었다. 


아기도 울지 않고, 집안일도 없고, 읽을 책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딱히 외출해서 가고 싶은 곳도 없고. 낮잠은 방금 다 잤고, 아이 백일상은 내가 잠든 사이에 남편이 대여 업체며 떡집이며 다 알아두었다. 


심심했다. 생경하고도 익숙한 기분이었다. 아기가 태어나고 나서는 단 한 번도 느끼지 못한 감정이었다. 




아이는 늘 꼼지락거렸다. 


울거나, 먹거나, 놀거나. 잘 때도 가만히 자지 않고, 뒤척이며 ‘푸르릉’, ‘아!’ 같은 희한한 소리를 냈다. 한시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깨어 있으면 깨어 있어서, 자고 있으면 언제 울면서 깨어날 지 몰라서 전전긍긍했다. 


요즘에는 아기 울음 소리가 환청처럼 들리기도 한다. 카페에 앉아 있으면서도 어디선가 아기 울음 소리가 들려오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아기가 울면 당황스러웠다. 졸리거나 배고프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라고 생각해왔는데, 이쯤 되니 변수를 몇 번 겪어서 자신이 없어졌다. 과피로로 우는 줄 알고 재우러 갔더니 더 자지러지게 운 적도 있었다. 어쩔 수 없이 거실로 들고 나왔더니 방긋 웃으면서 잘 놀았다. 추측하건대 더 놀고 싶은데 방에 눕혔다고 짜증내는 것이었다. 


하루는 시어머니와 통화를 하다가, 아기가 너무 울어서 힘들다고 지나가는 말처럼 얘기드리기도 했다. 시어머니께서는 “그럼 울지~ 그게 갸가 하는 일인디~”라고 답하셨다. 그 이야기를 듣고보니, 정말 아이는 울어서 밥을 얻어내고 잠을 재워지고 함으로써 성장하는 것이 일이었다. 


이것이 그의 일…….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놓였다. 쟤는 자기 할 일을 하고 있는 것일 뿐이라고. 평생 우는 것도 아니고, 저러다 나중에 말을 할 수 있는 나이가 되면 그 때는 말을 하겠지. 이런 게 연륜일까? 




“영유아 수면 전문가와 함께 사니까 어때?”


“완전……. 완전 좋지. 일당 50만원 받아도 수요가 있을 걸?”


남편은 내가 붙여준 ‘영유아 수면 전문가’라는 칭호를 꽤나 마음에 들어 했다. 남편은 이제 아기 재우기에는 거의 달인이 되어 있었다. <베이비 위스퍼> 책에서는 아이를 재우는 데에 보통 20분이 소요된다고 했다. 남편은 아이가 많이 울고 보채더라도 20분 컷으로 재우는 일을 높은 확률로 성공했고, 가끔은 5분 컷도 이루어냈다. 


아이를 재우고 안방을 나오는 남편에게 나는 늘 “이번 포인트는 뭐였어?”하고 물어봤다. 그러면 남편은 이런저런 적용 스킬을 이야기 해주었다. 가슴을 대고 눌러준다거나, 라라스 베개를 공중에서 결합시킨다거나, 이래저래 얼러서 진정시킨 다음에 쪽쪽이 물리고 머리를 쓰다듬었다거나. 


남편의 출산휴가 덕분에 나는 휴가를 얻었다. 하루종일 집에서 아이의 울음에 ‘이건가? 저건가?’ 하며 노심초사하곤 했는데 요 며칠은 하루 한 번씩 외출도 다녀왔다. 아이 재우는 중노동을 남편이 거의 다 전담해 준 것은 물론이었다. 


다만 남편의 출산휴가가 끝나면 어쩌나 싶어서 가끔 막막해진다. 나도 아이를 잘 재울 수 있을까? 아이가 아빠가 재워주는 데에 익숙해져서 내가 재우면 엄청 울려나?


아무튼 오늘은 오늘 나름으로 살아야지. 육아는 로맨스 판타지에 나오는 것처럼 귀여운 아기와의 힐링 라이프와는 거리가 멀었다. 소설 속 주인공은 늘 고용인들을 거느렸다. 현실 육아는 귀여운 아기와의 힐링 & 리얼리티였다. 


 * 표지사진 출처: Unsplash의 Marcin Jozwi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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