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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의동 에밀리 May 27. 2024

실전! 육아템

2개월 29일

육아는 템빨이라는 말이 있다. 


실제로 육아를 해보니,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린 말이었다. 절반이 틀린 이유는 여전히 육아는 ‘기술’의 영역이 크기 때문이었다. 장인이 도구를 탓하지 않듯, 예를 들어서 경험 많은 산후도우미라면 보자기 하나만 가지고도 깔끔하게 속싸개를 싸맬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절반은 맞는 말이었다. 초보 부모의 부족한 기술을 아이템으로 어느 정도까지는 커버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도구를 가리지 않는 것은 장인이고, 초보는 도구를 좀 가려야 마땅하다. 게다가 장인들은 도구를 ‘탓하지’ 않을 뿐이지, 좋은 것을 안 쓴다는 말은 아니다. 이름난 바이올리니스트들은 몇 억 짜리 바이올린을 켠다. 




가제 수건은 다다익선이었다. 


아기는 생각보다도 훨씬 많이 뭔가를 흘렸다. 모유나 분유를 먹다가 게우고, 2개월령에 접어들자 침도 뚝뚝 흘렸다. 


출산 전에 지인이 “가제 수건과 턱받이는 다다익선”이라고 얘기해준 적이 있었다. 그래서 턱받이는 8개 정도, 가제 수건은 한 50장은 쟁여놓았다. 


실제로 아기를 키워보니 가제수건을 하루에도 열 장은 기본으로 썼다. 수유할 때마다 쓰고, 수유 사이사이에도 쓰는데, 수유를 하루에 다섯 번 이상 하니 계산해보면 당연했다. 그것도 지금은 2개월령이니까 다섯 번이지, 신생아 때는 1~2시간 간격으로 수유를 한다. 


가제수건은 거친 것과 부드러운 것을 둘 다 썼다. 보통은 거친 것을 써서 침도 닦고 게운 것도 닦았다. 어깨 위에 손수건을 얹고 아이를 들어올려야 혹시라도 아이가 뭔가를 게웠을 때 옷을 버리지 않을 수 있었다. 


부드러운 것은 목욕할 때 머리를 말려줄 때 쓰곤 했다. 아이가 숱이 많아서 두 장은 필요했는데 보통은 한 장이면 다 끝난다고 들었다. 하지만 요즘에는 기저귀 갈이대 옆에 쌓아놓고 더 요긴하게 쓴다. 남자아이다 보니 기저귀를 갈다가 물총을 쏘는 경우가 있어서, 기저귀를 갈 때 살짝 덮어두면 혹시라도 물총을 쏠 때 소변 흡수를 잘 해줬다.


물총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기저귀 갈이대에 깔아두는 방수포는 다섯 장은 있으면 좋은 것 같다. 그러지 않으면 아기가 소변을 보거나 게워서 방수포가 젖었을 때 난처할 수 있다. 아무리 기저귀 갈이대 커버 자체가 방수 재질이라고는 해도, 소변이 묻었을 때 물티슈로만 닦으면 지저분해진다. 그렇다고 그 때마다 빨면 커버 마를 동안에 기저귀 갈기가 곤란하다.




가제 수건의 거대 버전으로 천기저귀가 있었다. 


천기저귀라는 물건이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내가 사서 쓸 일이 있을 줄은 몰랐다. 나는 건강이나 환경을 염려해서 세탁을 감수해가며 천기저귀를 쓸 생각은 일절 없었기 떄문이었다.


하지만 산후도우미님의 이야기를 듣고는 바로 그 자리에서 천기저귀를 10개 정도 주문했다. 천기저귀는 기저귀로 쓰이지 않았다. 아기 목욕 타올로도 쓰이고, 속싸개로도 쓰이고, 바운서에서 아기를 놀릴 때는 가끔 다리를 따뜻하게 덮어주는 용도로도 썼다. 하여튼 ‘기저귀’라는 용도만 빼고 다방면으로 사용되었다. 


처음에는 10개가 너무 많지 않나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로 써보니 그렇게까지 많지는 않았다. 목욕할 때 체온 보온용으로 하나, 물기 닦는 용으로 하나, 또 하루에 몇 번 대변 씻겨줄 떄 쓰니까 또 두세 개, 신생아 때는 속싸개로도 쓰니까 한두 개……. 이런 식으로 하루에 기본 세 장, 많으면 대여섯 장도 썼다. 만약 누가 산다고 하면 다섯 장 정도는 사두면 좋을 것 같다고 조언해주고 싶다.




요즘에는 세면대에서 대변을 씻어준 다음에 천기저귀로 하반신을 감싸서 물기를 훔쳐주지만, 처음에는 천기저귀 대신에 건티슈를 많이 썼다. 


이전까지는 몰랐는데, 물티슈처럼 ‘건티슈’라는 게 있었다 (나만 몰랐나?). 휴지는 물에 젖으면 쉽게 찢어지고 너무 얇다는 단점이 있는 반면, 건티슈는 물기 없는 물티슈 느낌이라 찢어지거나 먼지 날릴 일이 없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아기들은 변기통을 쓰지 못한다. 게다가 분유나 모유를 먹다 보니, 대변 형태도 성인과는 달리 물설사처럼 나온다. 그래서 대변을 한 번 보면 기저귀와 엉덩이에 잔뜩 묻어서 거의 하반신 샤워 수준으로 닦아주어야 했다. 이럴 때 두루마리 휴지 대신에 건티슈를 사용하면 물기를 닦아줄 때 편리했다.


건티슈는 대용량으로 나오는 것을 박스째로 구매해서 화장실에 쟁여 두었다. 휴지와는 달리 피부에 달라붙을 일이 없어서, 세수한 다음에 얼굴을 닦아줄 때도 간편하게 쓰기 좋았다. 엉덩이 물기를 닦아줄 때는 가제 손수건을 엉덩이용으로 따로 구분해서 사용하고 세탁해도 되지만, 구분하기가 귀찮기도 하고 손수건을 깨끗하게 쓰고 싶기도 해서 건티슈를 주로 썼다. 




화장실에는 아기용으로 나오는 순한 바디 워시를 두었다. 


목욕 시킬 때도 쓰고, 대변을 씻겨줄 때도 썼다. 바디 워시와 샴푸가 겸용인 제품이라 유용했다.


아기 용품을 사용하다 보니 몇 가지 느낀 게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튜브보다 펌프’였다. 내가 바르는 게 아니기 때문에, 한 손에는 아기를 들고 다른 한 손으로 뭔가를 발라줘야 할 일이 종종 있었다. 그래서 로션이든 샤워젤이든 펌핑으로 된 제품이 편리했다.


물론 이것도 숙달이 되면 튜브형으로도 충분히 쓱쓱 잘 발라줄 수 있었다. 




거실 구석에는 기저귀 갈이대와 트롤리를 놓아 두었다.


아기는 생각보다도 하루에 기저귀를 몇 개씩 썼다. 아기가 건강하게 잘 먹고 있는지를 파악하는 척도로 ‘하루에 대변 기저귀 2~3개, 푹 젖은 소변 기저귀 6개’를 주로 본다. ‘푹 젖은’ 소변 기저귀가 되려면 소변을 서너 번은 봐야 하는데, 기저귀를 자주 갈아주지 않으면 발진이 생긴다는 얘기를 들어서 개인적으로는 푹 젖기 전에 웬만하면 새 것으로 교체해주고 있다. 


그러니까 하루 최소 10개 이상의 기저귀를 썼고, 아기가 밤에 12시간 정도 잔다는 점을 고려하면 낮에 1시간에 한 번씩은 기저귀를 갈아줘야 했다. 그래서 기저귀 갈이대를 쓸 일이 굉장히 많았고, 하루의 시작도 여기서 새 기저귀를 채워주는 것으로 시작했다. 


그런데 기저귀 갈이대가 조금 높은 책상 높이라, 아이를 땅바닥에 내려놓는 것보다 훨씬 허리가 편했다. 그래서 여기서 옷도 갈아입히고, 터미 타임도 시키고, 로션도 발라주고, 비타민D도 먹여줬다. 


기저귀 갈이대 자체에도 주머니가 달려 있어서 이것저것 담아두기 좋지만, 개인적으로는 여기에는 기저귀를 손쉽게 꺼내 쓸 수 있도록 미리 10~20개 정도를 채워놓고 있다. 대신에 옆에 트롤리를 하나 두고 그 위에 로션과 수딩젤부터 비타민D, 체온계, 비판텐, 천기저귀, 대변 기저귀를 넣어다 버릴 위생백, 아기가 울 때 시선을 강탈할 딸랑이까지 올려두었다.




기저귀 갈이대 밑에는 체중계도 두어서, 아침마다 체온과 체중을 측정해주고 있다. 평상시에는 딱히 쓸모 없는 활동이지만, 아기에게 이상이 생겼을 때 이 기록들이 빛을 발했다. 


폐렴 예방 주사를 맞고 나서 미열이 생겼을 때도, 평소에 아기 체온이 36도 안팎이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도움이 되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37.1도라…… 아기 체온으로는 정상인데, 평소 체온보다 높은 건가? 제대로 잰 건 맞나?’하고 어리둥절했을 것 같다. 


체중은 아기가 잘 먹고 있는지를 판단할 때 기준이 된다. 특히 몇 ml를 먹는지 확인할 수 없는 모유의 경우에는 일주일 동안 체중이 정상 증가했는지를 보는 게 중요하다. 전문가들은 ‘일주일에 한 번씩만 재면 돼요’라고 하지만, 막상 매일 재보니 아기가 바둥거려서 10~30g 정도가 왔다갔다 하는데다 하루이틀은 늘거나 줄기도 해서 오차가 생겼다. 




트롤리는 소파 앞에도 하나 두었다. 


소파는 더 이상 TV로 유튜브 보는 곳이 아니라 수유하는 장소가 되었다. 그래서 수유할 때 가제 수건을 담는 상자도 트롤리에 놓고, 수유할 때 잠깐 젖병을 놓는 용도로도 사용했다. 수유를 하다가 중간에 트림을 시켜주거나 혹은 아기가 갑자기 켁켁거릴 때는 젖병을 어딘가에 두어야 하는데, 둥글둥글하고 폭신한 소파 위에 놓았다가는 쓰러지기 일쑤였다. 


모유수유를 할 때는 트롤리에 놓아둔 타이머로 양쪽 각각 15분씩 젖을 먹이는 데에도 썼다. 트림 시켜줄 때도 타이머가 있으면, ‘아직 트림을 안 했는데 내가 대체 몇 분 동안 시켜준 거지?’하고 궁금해 할 필요가 없었다. 잠깐 핸드폰을 거치할 수도 있고, 밤에 수유할 때는 수유등을 올려둘 수도 있었다. 요즘에는 손톱깎이도 두고서 수유할 때 살살 눈치를 보며 손톱도 깎아주고 있다.


트롤리는 그냥 협탁과는 다르게 바퀴가 달려 있어서 때때로 요긴했다. 아이를 낮잠 재울 때는 안방의 아기 침대에 재웠는데, 이 때 트롤리 하나만 끌고 들어가면 필요한 물건을 모두 가져갈 수 있었다. 가제 수건부터 백색 소음기까지 모두 있으니까.


이런 기능들을 탑재해서 ‘수유 트롤리’라고 따로 하나 만들면 잘 팔리지 않을까 생각도 들었다. 아기를 잠시 놓아둘 수 있는 트립트랩 같은 바구니도 붙이고, 그 위에 모빌도 하나 놓고.




어쩌다 보니 아기방은 창고가 되고, 안방이 아기방이 되었다. 


사람 아기는 다른 동물들이랑 다르게 이동 자체를 못 했다. 겨우 등 대고 누워서 팔다리를 휘젓는 게 할 수 있는 활동의 전부였다. 그렇다 보니 뭔일이 발생하면 부모가 후닥닥 가서 구해줘야 했는데, 이 때문에 아기 침대도 6개월까지는 어른 침대와 같은 방에 두는 편이 좋다고 미국 소아과 협회(아마도?)에서 얘기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원목으로 된 울타리 침대를 아기 침대로 썼다. 그런데 생각보다도 아기는 빨리 컸다. 태어났을 때가 3.3kg이었는데 두 달이 지나자 5~6kg이 되었다. 


사이즈 뿐만 아니라, 아기가 침대에 등을 대고 힘차게 버둥거리면서 침대는 급속도로 작게 느껴졌다. 분명 똑바로 눕혔지만 1시간만 지나도 아기는 뱅글뱅글 돌아서 가로로 누워 있곤 했다. 때로는 난간까지 와서 울타리를 발로 차고 있었다. 


잘못하면 팔이든 다리든 울타리에 끼겠다, 혹은 발을 울타리에 찧겠다 싶어져서 만 2개월에 범퍼 침대로 바꾸어주었다. 아기 놀이 매트처럼 생긴 것을 바닥과 사방 울타리로 둘러준 형태의 침대였다. 마음 같아서는 한 번 살 때 아예 슈퍼 싱글 침대로 구매해서 초등학교 들어가서까지 쓸 수 있으면 했지만, 슈퍼 싱글 침대는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안방에 들어가지를 않았다. 


낮이 되면 범퍼 침대 안에 쿨리 베어(라라스 베개의 메쉬 버전), 짱구 베개, 머미쿨쿨 이불을 넣어놓고 갖은 방법을 동원해서 낮잠을 재웠다. 템빨인지, 기분 탓인지, 아니면 수면 교육의 병행 효과인지, 아무튼 범퍼 침대로 바꾸고 나니 아기가 낮잠도 더 잘 자게 된 것 같았다. 아무래도 나무 울타리는 틈새로 밝은 빛이 들어오고 안방 가구들도 보이지만 범퍼 침대는 아예 시야가 차단돼서 더 아늑한 기분이 드는 모양이었다. 


언젠가는 아이가 이런 아이템들 없이도 잠을 잘 자는 날이 올까? 어차피 초등학교 들어갈 때쯤이면 아예 낮잠이 필요 없어진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내일 당장 초등학교에 입학하지는 않으니까…….



 * 표지사진 출처: Unsplash의 Recha Oktavia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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