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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으른개미 Oct 04. 2020

007. 좋아하다

안녕하세요,하다씨


조금 좋아해.
많이 좋아해.

‘사랑해’라는 말보다 유연하고 폭넓게 쓰이는 말, 좋아해.
‘좋아하다’는 무겁지 않고 강요되지 않으며, 정도의 차이를 나타낼 수 있는 지극히 개인적인 단어이다. 이 말은 사람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먹고 보고 입는 삶의 모든 순간에 사용된다. 가장 쉽게 표현할 수 있는 말이자 언제 들어도 반가운 말이기도 하다. 이렇게 친근한 단어가 한순간에 증명해야 하는 단어처럼 무겁게 느껴진 일이 있었다.

20대 초반 나는 한 영화사의 무비 패널로 활동한 적이 있다. 활동 지원 동기는 간단했다. 블로그에 영화 리뷰를 올리던 시기라 많은 영화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특별히 좋아하는 감독도 없었고 영화에 대한 배경 지식도 많지 않았다. 단지 공짜로 영화를 볼 수 있다는 게 그 시절엔 정말 큰 혜택으로 느껴져서 지원했는데 운 좋게도 뽑혔다. 운이 좋았다고 말하는 이유는 다른 패널들이 급이 달랐기 때문이다. 영화 파워블로거이거나 영화를 정말 정말 정말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아니 지금 생각해보면 좋아한 게 아니라 영화와 사랑에 빠진 사람들이었다. 친해진 패널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나는 나의 좋아함을 의심하게 됐다.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영화의 메시지, 내가 느낀 영화 속 감정들을 헤아리고 글로 표현하는 것이 좋았던 나는 패널들 사이에서 순수(백지라는 의미)한 사람에 가까웠다.
대부분의 패널들이 영화의 배경지식은 물론, 시나리오, 감독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었고 영화배우 혹은 감독이 내한을 할 때면 달려갈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들이었다. ‘그 감독도 몰라?’라는 의문의 눈빛을 받을 때면 나는 더 주눅이 들었다. 좋아하는 정도의 차이, 그 차이로 인한 부끄러움은 생각보다 나를 오래도록 괴롭혔다. 내가 영화를 좋아한다고 표현하는 게 맞는지 고민되기까지 했다.  
이렇게 흔하게 써도 되는 말일까...?

“내가 가진 지식이 너보다 많고 내 마음이 너보다 크기에 너는 좋아한다고 표현할 자격이 없어.”
“좋아한다면 관심을 가지세요. 공부는 하셔야죠!”라고 누가 과연 말할 수 있을까?

좋아함은 지식의 정도를 말하지 않는다.

그저 감정임에도 불구하고 때때로 우리는 상대방의 좋아함을 나의 기준으로 판단하려 한다. 이러한 행동은 ‘내가 너보다 더 좋아해!’라는 상대적 우월감을 느끼고 싶어서거나, 타인을 깎아내리고 싶은 못된 본성 때문일지도 모른다. 혹은 좋아하는 감정을 비교대상으로 여긴 내가 그들보다 못하다는 생각에 스스로 비참함을 느껴 내린 결론일지도 모른다. 나의 감정이 타인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다고 투덜거리기엔 나도 똑같은 사람이 되어버렸다. 어느 순간 나도 ‘좋아한다면서 왜 이것도 모르지? 좋아하는 거 맞나?’라는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표준대국어사전에 따르면 좋아한다 것은 ‘어떤 일이나 사물 따위에 대하여 좋은 느낌을 갖는 것’이다.
개인의 느낌, 너는 알 수 없는 나만의 감정인 것이다. 좋아함이 ‘모든 것을 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기에 스스로는 물론 타인에게도 관대해질 필요가 있다.
조금 좋아할 수도 있고 많이 좋아할 수도 있고 적정하게 좋아할 수도 있다. 그게 ‘좋아하다’의 매력이기도 하다.

타인의 감정을 의심하거나 나보다 못하다 비난할 이유도 없다. 얼만큼 좋아하든 그것은 문제가 될 수 없다
이 글은 나에게 쓰는 반성문이기도 하다.


 
타인의 마음을 지식으로 평가하지 말라
너의 ‘마음’역시 누군가에게 그저 하찮은 부스러기일지도 모르니



190811/20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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