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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으른개미 Nov 05. 2020

010. 급변하다

안녕하세요 하다씨

올해는 정말 ‘어제와 오늘이 다르다’는 걸 매일같이 실감하고 있다. 코로나 베이비를 제외하고 모든 사람들이 평생에 처음 겪는 일을 겪고 있다. 코비드19, 처음 유럽에 도착했을 때 대수롭지 않았던 이 전염병은 3월을 기점으로 전 세계를 집어삼켜버렸다. 

음모, 거짓, 억압된 자유, 경계, 두려움 이 모든 것이 뒤엉켜 서로가 서로를 증오하고 불신하는 사회가 되었다. 


차라리 “이 모든 것은 거짓이었습니다.”라는 발표가 있었으면 좋겠다. 

코로나가 발생한 지 1년이 되어가는 지금, 우리의 두려움이 사라지고 질병이 삼켜버린 일상이 그렇게라도 돌아올 수 있다면 허망하게 보낸 1년쯤이야 용서가 될 것 같다. 언제까지 지금의 상황이 이어질지 아무도 알 수 없지 않은가.


오랜만에 아이들을 돌보고 집에 돌아와 컴퓨터를 하고 있는데 빈에서 총격사건이 일어났다는 연락을 받았다.

schwedenplatz 근처, 빈에 살거나 여행을 왔었다면 한 번쯤 지나쳤을 그곳에서 사건이 벌어졌다. 나 역시 며칠 전까지 그 근방을 돌아다녔을 만큼 시내 중심부에서 벌어진 것이다. 2차 락다운(야간통행금지) 시작을 앞둔 밤이었다. 어떤 이유에서 이 날을 정했는지 알 수 없지만 테러리스트의 공격은 잔혹했다.

시시각각 사람들이 퍼 나르는 소셜미디어에서 총격 장면을 보고야 말았다. 보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을..

늘 사람의 호기심이 문제다. 누구나 테러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에 한국에서는 느껴보지 못한 새로운 공포가 나를 감싸기 시작했다. 혼자 맞는 밤은 두려움에 취약하다. 나는 하염없이 공포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이곳에 사는 한인들에게서 '비엔나는 테러가 일어나지 않은 곳'이라는 얘기를 자주 들었다. 중립국이라서 테러의 위협으로부터 안전하다는 이야기를 최근에도 나누었던 터라, 이번 사건은 오스트리아 사람들에게 정말 충격적이었을 것이다. 몇 년에 한 번 꼴로 총격사건은 발생하고 있지만 개인사에 의한 것이지 테러와 연관된 적은 없었다.


올해 비엔나에서 살면서 내일로 미루는 것이 얼마나 잘못된 행동인지 알게 됐다. ‘또 가면 되지, 내일 하면 되지!’라는 마음에 담긴 보장된 내일이란 모두에게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에게 기회는 늘 지금 뿐이다. 

어제 갈 수 있었다고 오늘 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오늘 먹을 식재료를 사러 마트에 가는 것, 맛있는 빵이 먹고 싶어 커피숍에 가는 일, 예쁘다고 마냥 걸었던 그 골목골목이 더 이상 안전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단 한 번의 사건 단 하나의 질병이 하나뿐인 나의 오늘과 내일을 송두리째 바꿔 버렸다. 내일이 주는 오늘의 편안은 어디까지나 오늘에 국한된 것이었다. 


도망간 가해자들은 어디 숨었을까, 인근 나라로 달아났을까? 이전과 마찬가지로 평범한 사람들 틈 사이에서 아무렇지 않은 척 거리를 배회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니 등골이 오싹해졌다. 단독범행이라는 발표에 그다지 신뢰가 가지 않는다. 6군데에서 사건이 벌어졌는데 단독범행이라니 말이 안 되지 않는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이 더 큰 두려움을 만들어낸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나는 스스로 공포를 재생산해내고 있다.  지난 락다운 시작 때 느꼈던 두려움이 다른 방식으로 찾아온 것 같다. 사실 2차 락다운은 야간통행금지 성격이 강해 1차 때처럼 마트가 텅텅 비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언제든 마트에 가서 물건을 구할 수 있다는 생각에 이것저것 쟁이지 않았는데, 총격사건이 벌어졌으니 마트에 가는 일을 미뤘던 내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오늘이 있는 이유를 잊고 살았다. 매일 내일을 맞이할 준비를 할 뿐 오늘을 살아낼 생각은 하지 않았다.  


모든 게 급변하고 있다. 

2차 펜더믹을 예상하긴 했지만 내가 떠나기 전에 일어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더더욱 빈에서 테러가 일어날 거라곤 생각해본 적도 없다. 일상이 정말 한순간에 사라질 수 있다는 걸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 

2차 락다운은 12월의 크리스마스를 준비하는 성격이 강하다.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빈 시청사 앞에 스케이트장과 크리스마스마켓 부스가 설치되고 있다. 올초에 스케이트 타러 다녀왔었는데 그게 마지막이 될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수많은 인파가 모이는 장소에 가는 게 꺼려진다. 며칠 전까진 코로나 때문이었는데 이젠 테러의 위협까지 더해졌다. 부디 더 이상의 좋지 않은 변화는 일어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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