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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으른개미 Sep 28. 2023

언덕길

마을과 마을을 오가는 마을버스를 탄다. 

이름조차 귀여운 마을버스를 타고 이 마을 저 마을을 돌아다니다 보면 매일이 여행길이 된다. 

지금까지 가장 오랜 시간 동안 살았던 서대문구에는 언덕을 넘는 도로가 많았다. 하루는 수색역에서 응암동 방면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이내 우회전한 버스는 천천히 언덕을 오르기 시작했다. 멈추면 뒤로 구를듯한 언덕의 경사를 오르다 문득 마을과 마을의 경계를 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덕을 지난다는 건 그저 경사 높은 도로를 넘는다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이 도로를 넘으면 새로운 동네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아래에선 보이지 않던 언덕 너머의 산이 언덕의 꼭짓점에 버스가 도착했을 때 마법처럼 드러나고는 한다. 가려져있던 무언가가 드러날 때의 기쁨은 생각보다 크다. 있는지도 몰랐던 더 높은 산이 눈앞에 펼쳐지기도 하고 도심이 한눈에 보이기도 한다. 마을을 잇는 버스를 타면 외국의 낯선 동네를 여행하는듯한 새로운 기분을 느끼게 된다. 

'넓게 펼쳐진 평야를 제외한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땅 대부분이 언덕과 언덕으로 이루어져 있었겠지?'라는 당연한 생각을 하며 하나의 도시를 만들기 위해 산을 깎는 행위를 마다하지 않는 시대에 내가 살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학창 시절에는 서대문구에 있는 천연동과 홍파동에 살았다. 독립문에서 서울역으로 연결되는 길게 뻗은 도로를 기준으로 두 동네가 양쪽으로 나누어져 있다. 내가 살았던 집들 모두 동네의 언덕에 위치해 있었다. 학교를 갈 때면 언덕을 올라 마을버스를 타거나 언덕 아래로 내려가 터널을 지나고는 했다. 하굣길엔 또 다른 언덕을 지나기도 했고, 홍파동 집에서 건너편 영천시장에 갈 때면 좁은 골목에 빼곡히 쌓인 계단을 와다다다 뛰어 내려가기도 했다. 


수십 년이 지나 지금의 홍파동은 조금 평평해졌다. 재개발구역에 포함되지 않은 곳은 여전히 언덕으로 남아있지만 내가 살던 때의 분위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건너편 천연동 언덕마을은 어느새 남산이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 좋은 아파트가 되었다. 언덕동네에 많이 살아서였을까, 평평한 평지보다 언덕 위의 집들을 볼 때면 그 너머를 기대하게 된다. 내가 발견하지 못했던 또 다른 마을과 세상이 펼쳐질 것만 같다. 


파주로 이사 온 이후엔 광역버스를 탄다. 소소했던 마을탐험이 이제는 도시와 도시로 이어지는 셈이다. 7111번 버스는 연세대를 지나 자유로를 탄다. 빼곡히 들어선 운정아파트 단지를 벗어나 개발되지 않은 평평한 땅을 지나면 디지털미디어시티가 나오고, 이내 높이 솟은 건물들이 가득해진다. 오후의 따스한 빛과 막 움트기 시작한 초록잎사귀, 곧 자리를 내주어야 하는 벚꽃잎들이 바람에 몸을 싣기 시작한 지난봄이었다. 두세 개의 큰 나무줄기에 듬성듬성 머리를 내민 벚꽃잎이 보이는 신도시의 풍경과 달리 연세대 주변 도로의 벚꽃나무들은 너무나도 화려하고 풍성했다. 이제 막 조성되기 시작한 신도시 아파트단지의 나무들을 보면 앙상하기 그지없다. 나무는 시간을 축적하며 산다. 해가 거듭될수록 가지치기가 잦아질수록 나무는 더 풍성해지고 푸르러진다. 부서지고 세워지길 반복하는 인간의 터전이 새삼 무기력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북촌에 들렀다 수능을 보았던 풍문여고가 이사 간 걸 알게 됐다. '건물이 예쁘네' 하고 둘러보던 공예박물관이 옛 풍문여고 터란 것을 깨달았다. 공예박물관이 개관한 지 벌써 1년이 다되어가도록 나는 이곳이 이렇게 변한 지도 알지 못했다. '한순간에 사라질 수 있는 것이 우리의 공간이구나'라는 생각이 조금 서글퍼졌다. 마음에 집을 지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나 보다. 많이 마음에 담아두고 담아두어야 사라진 이후에도 내 기억 속에서 자리 잡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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