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정리 #2
어제도 종이 무더기와 함께 책 여러 권을 한 박스 분량으로 만들어 내다 버렸습니다. 오늘도 지저분한 책들을 한 박스 만들어 버렸습니다. 어제 글을 쓰며 느낀 것이 책을 나누려 하는 것보다는 책을 정리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버릴 책이지만, 누군가 관심 있다면 연락 주시길.
19세기말에 태어나 20세기초를 살았던 중국 지식인들에 동경을 가지고 있다. 나름의 뚝심과 철학을 가지고 살았다고 보기 때문일까. 그 시절 동아시아 삼국이 저마다 부침을 겪었지만 중국 지식인 나름의 묘한 매력이 있다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을 테다.
<중국철학사>를 열심히 읽었기 때문일까. 처음 관심을 가진 20세기 철학자는 펑유란(풍우란)이었다. 그의 <중국철학사>는 교과서처럼 정말 열심히 읽었다. 흥미롭게도 학교 밖에서 <중국철학사>를 열심히 공부했다는 점이다. 돌아보면 오히려 그게 좋은 일이었다. 교과서 같은 책을 교과서처럼 읽지 않았으니.
<간명한 중국철학사>와 함께 <현대 중국 철학사>가 있다. <현대 중국 철학사>는 일종의 흑역사처럼 취급되는 까닭에 별로 많은 주목을 받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다. 20세기 중국의 지식인으로 부침을 겪었던 그의 삶은 <펑유란 자서전>에 잘 담겨 있다. 청말기 청년이 도미하여 학위를 마치고 중국에 돌아오기까지, 그리고 이어서 신 중국 성립 이후 문화대혁명 시기의 고초 등, 한 인간의 생애를 통해 20세기 중국을 읽을 수 있다.
<중국 철학의 정신>은 '도道'를 열쇳말로 삼아 중국 철학의 전통을 재정리하고, 또한 철학이라는 보편학문의 세례를 받아 철학의 용어로 중국철학의 새로운 도약을 기획한 책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모종삼의 책처럼 별로 큰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철학연 하는 데 신물이 났기 때문일까. 아니면 중국 철학의 고유성과 독자성을 '철학'의 용어로 재정립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무튼 지금 나에게는 관심 밖의 주제이다.
옌푸(엄복)과의 만남은 꽤 신선한 충격이었다. 영국으로 유학 간 그가 돌아와 토마스 헉슬리의 진화 생물학을 고문古文으로 소개하다니! <천연론>은 토마스 헉슬리의 <진화와 윤리>를 번역한 책이지만, 번역 과정 가운데 옌푸의 독자적인 해석이 들어간 책이다. <정치학이란 무엇인가> 역시 비슷하다. 캠브리지 대학의 실리의 <정치과학 입문> 일부를 번역한 책이다. 그러나 번역은 엄밀한 과정은 아니었고, 청말 지식인의 길찾기 과정가운데 하나였다. 어쩌다 보니 위 두 책을 번역한 역자 양일모의 <중국의 근대성과 서양사상>도 서가에 있다. 열심히 읽은 흔적이 남아 있다. 그러나 지금 나에게는 더 파고들 애정이 없다.
애정을 쏟는다면 루쉰과 마오에 쏟고 싶은 생각이다. 루쉰의 책은 여전히 서가에 여럿 남겨 두었다. 다시 읽을 날이 있을까는 장담할 수 없지만 여전히 루쉰은 나에게 호소하는 힘이 있다. <루쉰 정선>은 최근에 읽은 책이다. 첸리췬의 책이라 나름 기대했는데 실망이 많았다. 좀 낡고 뻔한 관점이 읽혀서 그렇다.
필립 쇼트의 <마오쩌둥>도 서가에서 덜어낸다. 애드거 스노의 <중국의 붉은 별>과 함께 재미있게 읽은 책이다. 지금 보니 흑백으로 나뉜 이 책의 표지가 인상적이다. 계몽주의자, 혁명가로서의 마오도 있지만 전략가, 야심가로서의 마오도 보여준다. 어쩌면 신중국 성립 이전과 이후의 마오는 딴 사람이 아닐까. 서구 작가의 책이지만 마오를 신화화하지도 않으면서 그렇다고 그를 악마화하지도 않는다는 점이 좋았다. 더불어 한 인간에 대해 저렇게 파고들 수 있다는 점도, 그의 생애를 저렇게 기술할 수 있다는 점도 재미있었다. 물론 읽는 건 꽤 수고로운 일이었으나.
루쉰의 글만큼은 아니지만 마오에 대한 책도 꽤 많이 남겨두었다. 모두 벽돌보다 두꺼운 책들이다. 이 책들을 여전히 서가에 남겨두는 것은 그 인간에 대한 호기심이 아직 남아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에게서 읽어낼 가능성이, 그를 재해석할 여지가 남아있다고 생각하는 까닭이다. 언제 그 작업을 할 수 있을지는 모르나. 무튼 여전히 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