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파서당 2024 고전논술 후기
풀리지 않는 물음이 있습니다. 왜 글쓰기는 힘들까. 사실 따져보면 글쓰기는 그렇게 버거운 활동은 아닙니다. 주로 키보드로 글을 쓰는 지금, 책상에 앉아 손가락을 부지런히 움직이면 될 일입니다. 튼튼한 허리와 유연한 어깨, 재빠른 손가락이면 충분하지 않을까요. 그러나 글쓰기를 마치면 헛헛한 기분을 지울 수 없습니다. 뭔가를 쏟아낸 것 같고 무엇인가를 태운 것만 같습니다.
문제는 글쓰기뿐만 아니라 글을 수정하는 데도 힘이 든다는 점입니다. 글을 수정하는 데 왜 글쓰기만큼 힘이 들까요. 더구나 타인의 글을 수정하는 것도 힘듭니다. 살짝 푸념을 하면 아이들의 글을 수정해 주는 것도 힘들어요. 대관절 어떤 무슨 힘을 쓰는 것일까.
하여 꾸준히 글쓰기에 참여한 아이들에게 응원의 말을 덧붙이고 싶습니다. 힘들었을 텐데 잘했다고, 그간 노력한 시간이 헛되지 않으리라고.
교육은 '강제의 기술’이라 생각합니다. 무엇인가를 하도록 강제하는 것. 그렇기 때문에 배움은 힘들고 귀찮습니다. 이 강제의 기술은 여럿 있습니다. 저의 경우에는 가능한 친절하고자 노력합니다. 스몰토크를 통해 낯섦을 허물고, 그 관계를 통해 읽기와 쓰기 활동을 진행하려고 해요. 물론 모두 성공하는 것은 아닙니다. 상호성이 중요하다 보니 종종 실패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쓰기를 강제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거듭 말하지만 쓰기가 힘들기 때문입니다. 쓰기의 첫걸음으로 '쓰기 근육'을 키우고자 해요. 간단히 말해 손가락 힘을 기르고자 합니다. 또박또박 연필로 400자 원고지를 채우기. 기초적인 맞춤법과 원고지 표기 법에 맞게. 안타깝게도 이런 기초적인 쓰기 근육이 없는 아이들도 많아요. 손을 쓰기의 도구로 사용해 본 경험이 없기 때문입니다.
보이지 않는 근육도 키워야 합니다. 400자 글쓰기를 하며 하나의 주제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힘이 필요해요. 생각하기란 또 얼마나 힘든 일인지요. 생각이야 말로, 생각의 근육을 키우는 것이야 말로 오랜 시간이 필요합니다. 생각이란 번개 치듯 불현듯 떠오르는 것이 아닌 까닭입니다. 생각해 보아야 생각할 수 있다는 생각의 어려움.
오래도록 아이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쳤지만 보통 일상 글쓰기는 하지 않습니다. 자유롭게 일상을 쓰는 것도 좋은 글쓰기이겠지만, 금방 한계에 이른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들어가는 것이 있어야 나오는 것이 있는 법. 쓰기 앞에 읽기가 있어야 합니다. 무엇인가를 읽고 저마다의 생각을 담은 글쓰기를 합니다. 쓰기에 앞서 종종 아이들은 푸념합니다. 무엇을 서야 할지 모르겠다고.
얄궂게도 도와주지 않는 것이 원칙입니다. 무엇을 쓸지 스스로 생각할 것. 글쓰기는 주체의 연장인 까닭에, 결국 자기 깜냥에 달린 일입니다. 누구도 대신 생각해 줄 수 없고, 누구의 생각을 빌려 쓸 수도 없습니다. 질문하고 답하는 것은 스스로 해야 할 일입니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글쓰기는 굉장히 고독한 활동입니다. 스스로에게 묻고 스스로의 답을 들어야 하기에.
말은 습관의 결과물이라 표현할 말을 찾아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글을 쓰다 보면 뭘 써야 할지 생각나지도 않고, 설사 생각이 떠오른다 해도 그 생각을 담아낼 말이 딱히 보이지 않습니다. 마치 도돌이표를 그리듯 똑같은 말을, 혹은 비슷한 문장을 반복합니다. 그 굴레에서 벗어나는 것도 시간이 필요합니다. 표현도 연습이라 자꾸 하다 보면 새로운 길을 찾게 됩니다.
결국 답은 꾸준함입니다. 쓰다 보면 는다는 말은 진실입니다. 문제는 그 꾸준함이 힘들다는 것이겠지요. 한 해 꼬박 아이들과 글쓰기를 함께 했습니다. 누구는 수십 편의 글을 쓰기도 했어요. 올해 첫 글쓰기와 비교한다면 분명 달라진 차이를 발견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대부분 이른바 '흑역사'라며 옛 글을 들춰보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겠지만.
안타깝게도 꾸준함과 글쓰기가 정확히 비례하지 않습니다. 계단식으로 성장하기도 하고, 때로는 파도치듯 오르락내리락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누구는 쑥쑥 잘 성장하는데, 그 성장의 기울기가 영 성에 차지 않는 경우도 있어요. 그래도 한 해를 돌아보면 모두들 크게 성장했어요. 정도는 다르고 방향도 다르지만 다들 실력이 늘었어요.
가끔은 조금 더 매섭게 채찍질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더 잘할 수 있으리라는 짐작, 자신의 깜냥만큼 힘을 쓰지 않는구나 하는 판단 등등. 아이들마다 속도도 다르고 성격도 달라 세세하게 이를 이야기할 여력이 없다는 아쉬움도 있습니다. 그래도 꾸준함을 믿기로 합니다. 하여 글쓰기 훈련의 첫 번째 대원칙은 이렇습니다. 꾸준히 쓸 것.
가끔은 조바심이 일기도 합니다. 아이들이 책에 대해 원망을 쏟아내면 속으로 여러 생각이 들어요. 더 재미있는 책을 찾아야 하나 등등. 그러나 곧 포기하기로 해요. 늘 재미있는 책을 찾기도 불가능할뿐더러 재미있는 책을 읽는 것이 목표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재미있다 없다를 벗어나 저 마다 다른 이야기를 내놓는 것을 보면 책 읽는, 문학을 즐기는 법을 익히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글쓰기는 무엇에 도움을 주는가. 이런 질문을 받으면 삶에 도움을 준다는 크고 뻔한 이야기로 퉁치곤 합니다. 생각하는 대로 말하고, 말하는 대로 글 쓰고. 글 쓰는 대로 살아가는 삶을 선물해주고 싶습니다. 생각대로 말하지 못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요. 말하듯이 글 쓰고 그리고 그 글이 삶의 태도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글쓰기가 더 건강한 삶을 선물해 줄 수 있다 믿습니다.
한 해 수업을 마치며 나누고 싶은 말을 어지러이 남겼습니다. 새해에도 읽기와 쓰기는 계속됩니다. 읽고 쓰며 성장하는 또 다른 한 해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좋은 책들과 함께 새해에 반갑게 만나요.
글쓰기 지도의 어려움 가운데 하나는 대부분이 글쓰기를 잘한다는 점에 있습니다. 무슨 이야기냐 하면 대부분 친구들보다는 글쓰기를 잘한다는 뜻입니다. 워낙 글쓰기가 귀한 능력이 되어 그렇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책을 읽지도 않고 글도 쓰지 않는 아이들이 태반인데.
그렇다고 주변 아이들 평균에 우쭐댈 수는 없는 일입니다. 아이들에게 적합한 기준은 무엇일까. 앞으로 고민할 숙제로 남겨둡니다. 이것을 칭찬에 인색한 핑계로 삼을 수 있을까요. 일일 전하지 못한 칭찬과 응원의 말은 이 글로 대신합니다. 칭찬과 응원도 대신 부탁 드리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