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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는 죄는 달콤할지니 - <씨너즈: 죄인들> 시청기

by 기픈옹달

무료한 마음에 극장을 찾았다. 그냥 골라서 본 작품. 최소한의 정보를 가지고 영화를 만나는 것을 좋아한다. 기대를 최소화했을 때 만나는 생경함이 좋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에 휘둘리지 않고 싶어서기도 하다. <씨너스: 죄인들>은 좋았다. 한 번 보고 극장이 아쉬웠다. 이런 영화는 제대로 봐야 하는데. 이틀 뒤에 돌비 영화관에서 봤다. 후회 없는 선택. 엉덩이를 찌르르 울리는 커다란 음악 소리가 좋았다. 그래 이런 영화는 극장에서 봐야지


잡탕도 어떻게 섞느냐가 중요


영화는 시작부터 끝까지 종잡을 수 없게 흘러간다. 흔히 말하는 장르의 문법을 따르지 않는다는 말씀. 갑자기 시공간을 초월하더니, 뱀파이어가 등장하고, 가족과 우애를 말하는 뱀파이어에 가슴이 두근거릴 때쯤이면, 갑자기 주인공이 람보가 되어 인간들을 깨끗이 소탕하는. 선정적이기도 하고, 폭력력이기도 하고, 감동적이기도 하고, 세련되기도 하고. 어떤 쩌릿쩌릿함이 음악과 함께 흐른다. 그래 이 영화의 베이스는 음악이다. 비빔밥에 밥이 빠지면 안 되듯이, 이 종잡을 수 없는 영화의 바탕은 음악이다.


흔들흔들 쿵쾅쿵쾅


블루스를 좋아한다면 특히 올드 블루스를 좋아한다면 필견. 그렇다고 흑인 영가를 떠올리는 그런 정적인 블루스에 멈춰있지 않다. 블루스에서 락 그리고 살짝 힙합을 얹기도 한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아일랜드 민요 #Rocky_Road_to_Dublin 가 정말 매력적으로 그려진다는 것. 영화는 통상적인 뱀파이어 영화를 따르지 않는다. 인간과 뱀파이어 가운데 마냥 인간 편을 들지 않는다는 점. 어느 영화보다 뱀파이어가 충분히 매력적이다. 이 영화에서 안과 밖은 매우 중요한데, 끝없이 묻는다. 너는 안에 있을래 나올래. 너의 심장은 어느 리듬에 울리는지 묻는 꼴


흑인의 흑인에 의한 흑인을 위한 영화


1830년대 미국 남부 흑인의 삶을 떼어놓고 영화를 이야기할 수 없다. 감독도 흑인, 주연도 흑인, 주요 인물도 흑인. 영화는 흑인의 영혼을 담을 블루스에 대한 찬가이다. 그렇지만 흑인만의 것은 아니라는 점을 영화는 명백하게 보여준다. 블루스는 누구의 것인가. 영화는 블루스를 찬양하면서도 그것을 독점하지 않는다. 이주민으로 구성된 미국 사회의 다양성을 포괄하려는 노력이 영화 곳곳에 보인다. 이것이 빼어난 스타일과 함께 담긴 영화의 미덕이다.


살아 숨 쉬는 캐릭터들


영화를 두 번 보고서야 알았다. 주연 배우가 혼자 쌍둥이 역할을 했다는 것을. 주연 배우는 스모크와 스택을 연기했다. 그러나 주연 혼자 끌어가는 영화는 아니다. 스모크와 스택에 얽힌 인물들이 생생하게 살아있다. 영화를 보고 얼굴 하나하나가 떠오르는 것은 그만큼 복잡한 서사에 캐릭터를 잘 잡았다는 뜻. 조연들의 연기도 매력적이다. 어느 하나 버릴 게 없는 캐릭터가 서사를 더 풍성하게 만든다.


결국 남는 건 개성


처음 영화를 보고 혼자 흥분하며 집에 돌아왔다. 다시 영화를 보러 가는 길은 그리 기껍지 않았다. 할 일도 많고, 거리도 멀고, 신선함도 덜하고. 그러나 영화관에 도착하니 몸이 들썩거리더라. 굳즈 따위에 별 관심이 없다지만, 포스터를 받고 나니 마냥 기분이가 좋았다. 무엇이 그렇게 나를 들뜨게 만들었을까. 결국 개성이 남는구나 생각한다. 제 목소리와 색깔을 가질 것. 잘하는 사람은 많지만 다르게 하는 사람은 보기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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