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걷냐고 묻거든.
온종일 비를 맞으며 걸은 적이 있었을까..
처벅처벅. 처벅처벅. 발걸음이 더디다.
도로 위에 차들은 여행자를 아랑곳하지 않는다. 갓길에 딱 붙어 걷지만 이내 멈춰 서기 일쑤다.
레인 커버를 두 개나 씌웠다. 배낭 안은 모두 젖어 있었다. 휴대폰은 망가졌고 추위에 몸은 떨렸으며
발은 예상한 대로 온탕에 10시간 담가진 마냥 심히 불어 있었다.
몸도 마음도 지쳐버렸다.
"그만 할까 이제.. 많이 왔는데,, 아니면 경주에서 자전거를 사서 부산까지 갈까.."
도보여행 15일차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즐기진 못해도 스트레스를 받을 거란 생각은 예상 치 못한 일 이였다.
내가 원해서 떠난 여행, 나를 위한 길이였다.
고성 거진항에서 부산 오륙도 해맞이 공원까지 동해안 해안도로를 걷고 싶었다.
왜 걷냐고 묻거든 "걷고 싶어서요"라고 말하고 싶었다.
길을 걸으며 수많은 인연들이 스쳐 지나갔다. 짧은 시간 동안 길 위에 나선 이유를 설명하기란 쉽지 않았다.
나에게는 쉼이 필요했고 위로가 필요했다. 절실함을 깨워줄 심장 깊숙이 숨어있는 울림이 필요했다.
3일 동안 지도, 식량, 장비를 세팅했고 7월 29일 고성 거진항으로 향했다.
1시 반쯤 도착한 거진. 습한 날씨 탓에 땀이 벌써 흐른다.
지나치게 무거운 배낭도 한몫했을 터.
생수를 채우기 위함, 언제 먹을지 모르는 식당 밥을 먹기 위해 중국집에 들렸다.
배낭을 짊어진 모습에 22개의 눈동자가 내 배낭으로 쏠렸다.
45리터의 배낭에 다 들어가지 않아 매트리스, 컵, 타월, 모자, 샌들을 배낭에 걸어놓은 모양 때문일 것이다.
"그래요. 이제 멀리 갑니다. 걸어서..."
거진해수욕장으로 장소를 옮기고 선크림을 바르고 출발하기에 앞서 배낭 인증샷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친구들의 메세지, 중간에 포기할 수도 없다.
언제나 첫 발거음은 가볍다. 배낭 무게에 한 숨은 나왔지만 설레임에 가득 찼던 첫 날은 힘이 들어도 힘이 들지 않았다.
1시간째 걷고 있을때
"화이팅!!,"
"감사합니다."
"동서울터미널에서 타지 않으셨어요?"
"네 거진에서 내렸습니다. 통일전망대에서 시작하셨나 보네요?"
"네. 어디까지 가세요?"
"부산까지 갑니다. ㅎㅎ"
배낭을 버스 짐칸에 넣을때 자전거가 많이 보이기에 떠나시는 분들이 많구나 했는데 한분이 나를 알아보셨다.
10분 가량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끝까지 몸조심 하라고 당부 하셨고 휘익 떠나셨다.
길 위에서 처음 만난 낯선 인연. 좋다.
여행을 떠나면 낯선 인연과의 만남이 그렇다.
그들과 함께 시간을 공유하고 소통하며 오래된 친구처럼 서슴없이 다가가는 그 느낌이 좋다.
편안히 얘기할 수 있고 나이와 성별도 중요치 않다.
여행이 주는 묘미는 이것 말고도 많을 것이다.
한참을 걸었다.
7시를 목전에 두고 물을 얻기 위해 교회에 들렸다.
목사님은 시원한 생수, 막 찐 옥수수 그리고 20분 정도만 더 걸어가면 해변에서 텐트를 칠 수 있으니 그쪽으로 안내해 주셨다.
물론 부산까지 간다는 말에 이 더위에 몸조심하라는 당부의 말씀도 잊지 않으셨다.
30분을 더 걸었고 해변 끝자락에 텐트를 쳤다.
바다의 짠 내, 파도소리, 매미 울음, 발에 밟히는 모래알들, 저 멀리 보이는 길 위에 가로등까지 하루를 마감하기에
더없이 좋았다. 혼자였지만 외롭지 않았다. 걸었기에 천천히 볼 수 있었고 깊이 볼 수 있었다.
새로운 만남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나타난다.
이른 아침부터 갈 채비를 하고 떠난 시골길. 밭길을 걸을때 발에 전해지는 돌들에 두드림이 좋다.
강력한 퇴비 냄새를 맡으며 길을 지나가고 있을때,,
"대단하십니다. 어디까지 가세요? 물좀 드시고 가세요."
동해안 길 걷는 계획을 말씀드리니 지난날 국토종주와 같은 도보여행을 해보지 못해 아쉬움이 아주 크다고 하셨고
나와 같이 길을 걷는 사람을 보면 꼭 뭐라도 챙겨 주신다고 하셨다.
그맘이 얼굴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참외, 오이, 생수를 얻었다. 감사한 마음을 전달해 드리고 다시 길을 나섰다.
힘이 났다. 그리고 감사했다.
속초를 지났고 정암해수욕장에서 하루를 마무리했다.
걷는 동안 물집이 심해졌고 가벼워지지 않은 배낭 무게에 어깨는 점점 결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좋다. 지금을 살고 있으니까.
아침이 되면 연례 행사처럼 웃옷과 속옷 양말을 빨고 배낭에 널고 간다. 혼자이기에 시선이 집중되는지
지나치는 분들마다 "화이팅" 을 외쳐 주신다.
작은 한마디지만 큰 힘이 아닐 수 없다.
도보여행을 마치고 친구와 술자리에서 나눈 말 중에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화이팅을 해주면 정말 힘이 나? 힘들어 죽겠는데 놀리는 것처럼 들리지 않아?"
"전혀. 엄청 힘이 되지. 그런데 직접 걸어보지 않고서는 그 느낌이 어떤지 알 수 없어. 걸어보면 알아."
사람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정말 힘이 났다.
길 위에서 만난 인연은 잠시 스쳐 지나가지만 기억 속에 맴돈다.
기사문항.
예사롭지 않던 날씨. 천둥과 번개가 치더니 강력한 스콜성 비가 내린다. 불과 10분 남짓 하늘에 정말 구멍 난줄 알았다...
텐트가 날아갈 것 같은 예감에 모든 짐을 방수커버에 넣고 해양 경찰서 안으로 피신했다.
샤워를 3일 만에 할 수 있었다.
빨래, 핸드폰, 카메라 충전 그리고 치킨과 콜라까지.
배려에 감사했고 감사했다. 다음 날 출발하기 전 다시 한번 인사를 드렸다.
물집에 고생을 하지 않았더라면 지나쳤을 기사문항이다.
걷고 쉬고 걷고 쉬고 새벽에 출발 정오부터 2~3시간 휴식 다시 걷고 또 걷는다.
하루를 마무리할 때면 온몸은 땀에 젖어 있었고 눕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막상 텐트를 치고 나면 다시 어디서 힘이 나는지 어딘지 기억조차 나질 않은 곳에서의 밤을 기억하기 위해
맥주를 벗 삼아 야경을 감상하곤 했다.
경포대를 지났고 정동진을 향해 걷고 있을 때다.
바다를 바라보며 사진을 찍고 있을 때 기차소리에 뒤돌아 보니 바다열차가 지나가고 있었다.
누군가 안에서 손을 흔들어 주었다. 나도 같이 흔들었다. 누군지 모르지만.
묘한 기분이다. 얼굴을 맞대어 이야기를 하는 것도 아니고 멀리 떨어진 누군가와 지금을 공유한다는 것.
해본 사람은 안다. 그 기분이 어떤지.
어쩌면 별 기억일지 모르지만 지금도 당시를 생각하면 웃음이 나온다.
하루 종일 아무 생각 없이 걷기만 했다.
쉼터에서 쉬고 있을 때 한 분이 물어보셨다.
어떤 의미를 갖고 걷는냐고..
몸이 지쳐 있었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했다. 걷다 보면 알게 되지 않을까요
보이는 건 내 발뿐 목적지에 다다르면 그다음 목적지를 향해 또 걷기.
좋아서 하고 있는 건지 아니면 포기하기 싫어 계속 걷는지 모르겠다.
배낭 무게에 지쳐있을 때쯤 기어코 참치 2캔과 스팸 2개를 야영장에 놓고 왔다.
못난 욕심에 식량을 많이 챙겼고 그것이 화근이었다.
어깨 결림이 점점 심해졌다. 모든 장비들이 가볍지 않았으며 한 번은 싹 다 버리고 싶은 마음도 간절했다.
물론 버리지 못 했다. 배낭을 제외한 모든 장비는 내 것이 아니었으므로..
가볍게 걷고 싶다.
버거운 무게에 멋진 풍경도 스쳐 지나가고 얼굴은 자꾸 찌푸리게 된다.
가벼움이 왜 중요한지 절실히 느꼈다.
체력이 버텨준다 해도 이렇게 걷다간 분명 탈이 난다. 무릎에 이상이 오든지 발목에 오든지....
이보다 더 긴 거리를 걷는다면 필히 가볍게 가고 싶다.
물론 장비에 얽매어 스트레스를 받긴 싫다..
즐길 정도의 무게라면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차라리 체력을 늘리는 편이 쉽지 않을까..
No pain No gain
페이스북 친구의 메세지
그래 인생은 고통이다. 후회해도 괜찮다. 돌아가도 괜찮다.
포기만 하지 말자. 때론 포기도 용기이지만 그 기회를 지금 쓰고 싶지는 않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그만하고 싶을 때가 있었다. 용화 해변을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에서 넋 놓고 있을 때였다.
물이 절실했고 해변까지 3km 남아있던 상황이었다. 중년의 신사 분께서 언제 나타나 얼음 물을 건네주셨고
그 자리에서 난 벌컥벌컥 다 마셔버렸다. .물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을 때다.
부산까지 갈 계획 그리고 아직 절반도 걷지 못한 속 마음을 얘기해 드렸더니
"어쩌겠어요. 가야지., 부산이 집인데 태워드릴까요? 달콤한 유혹이죠. 하하하"
맞다. 달콤한 유혹이었다.
지칠 때마다 나타난 새로운 만남 때문에 고비를 넘겼고 다시 힘이 생겼다.
용화 해수욕장은 아마도 아름다운 동해 해수욕장 중 5위 안에는 들어갈 것 같다.
해수욕장을 많이 거치면서 걸어왔지만 가장 이뻣다.
강원도를 벗어나 경북으로 진입하는 고포항....
여유가 없었다.
하늘을 바라보고 바다를 보면서도 놓친 게 많다.
혼자 걸으면 여유롭게 걸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그러지 못했고, 걷지 않으면 뒤처질까 두려운 마음에 쉬질 못 했다.
하루에 한 번은 내가 안녕한지 내 발은 괜찮은지 아니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나에게 위로를 해줬는지 생각해 봤다.
길을 걷는 건 나와의 싸움도 아니며 이겨야 할 대상도 아니다.
오늘만은 꼭 나를 위해 위로해 주자. "잘 걷고 있다. 조금만 더 힘내자"
가끔 "나와의 싸움에서 이기고 싶다" 이런 말을 듣게 된다.
그럼 지는 건 누굴까?
도전은 싸워야 할 대상이 아닌 함께 가야 할 불안과 같다. 불안함을 인정해야 과정을 즐길 수 있고 설령 극복하지 못하더라도
다시 도전하면 된다.
11시 30분 강원도를 벗어나 경북 울진 고포항에 도착했다.
그저 푯말 하나 세워 저 있을 뿐인데 여기서부터 경북 이란다.
보이지 않는 경계를 넘어가는 것은 밤 하늘 유성을 보는 거와 같다. 아주 잠시 기뻤다.
몸으로 느끼고 있었지만 밑지방으로 내려 갈수록 햇살은 더 따가워졌고 몸은 익숙해져 갔다.
나곡 해수욕장으로 가는 마지막 언덕길. 이 언덕을 넘어가면 하루를 쉴 수 있다.
2시가 가까워질 무렵 야영장에 텐트를 쳤다.
휴가철이었지만 많지 않은 사람들 덕분에 편히 쉴 수 있었다.
해수욕을 즐겼고 밀린 빨래를 했으며 냉수 샤워와 잊을 수 없는 회덮밥을 먹었다.
시장이 반찬이라 했던가 밥 3공기를 순식간에 해치웠다.
어스레한 빛이 곧 저녁이 올 기세다. 카메라를 들고 해변으로 나갔다.
해변엔 작지만 옹골진 바위들이 있었고 바다를 배경 삼아 바위를 찍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해변을 거닐었고 몇몇은 바위에 올라앉아 그들만의 휴식을 취했고, 또 몇몇은 셀카놀이를 했다.
나 역시 바위 위로 올라앉아 하루가 지나가고 있음을 느끼기 시작했다.
텐트로 돌아오는 길 맥주 두 캔과 새우깡을 사서 경북 입성을 자축했다.
망양정 해변을 목적지로 삼고 울진 시내에서 생수와 식량 행동식을 채웠다.
저녁이 되면 텐트 칠 장소를 찾다 1~2시간 더 걸어야 할 때가 있는데 징조가 좋다.
해변을 1km 앞둔 지점 소나무 숲에 데크가 보였다.
금강소나무 야영장.
여름 휴가철 임시 개방한다는 현수막이 있었다.
울창한 소나무 숲은 아니었지만 하룻밤을 묵기에 더없이 좋은 장소였다.
: When are you going to take it?
: Sometimes I don't. If I like a moment, for me, personally,
I don't like to have the distraction of the camera. I just want to stay in it.
"아름다운 순간을 보면 카메라로 방해하고 싶지 않아. 그저 그 순간 속에 머물고 싶지."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에 나온 대사.
이 대사에 심히 공감을 했다.
카메라를 든 순간 내가 봤던 그 장면은 이미 지나갔고
카메라를 눈에 댄 순간 보고 싶은 장면을 볼 수 없었다.
그 속에 머물고 싶었다.
어둠이 오기를 기다렸다 이내 잠자리에 들었다.
기성망양해변
누군가 나에게 동해안 해변을 물어본다면 주저 없이 이곳을 추천하고 싶다.
물이 가장 맑고 깨끗했으며 휴가철이었지만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도보여행자라면 대다수 이곳을 지나쳤을 테다.
깊지 않은 수심 무엇보다 물이 정말 깨끗했다.
그냥 지나치면 후회할것 같아 해수욕을 즐겼고 다행이도 카메라, 핸드폰 충전도 할 수 있었다.
유달리 강한 인상을 지울 수 없었던 한 분이 있었다.
차림새를 봐도 장거리 여행자라는 것을 대번에 알 수 있었다.
80일 동안 팔도유람을 하고 계셨고 몇 개월을 더 할 예정이셨다.
그분 옆에는 오랜 벗인 강아지 한 마리도 있었다.
집에서 나오는 날 유독 이 강아지만 따라나섰다 했다.
1박 2일간 동행자가 생겼고, 같은 길을 걷고 있는 이유만으로 든든했다.
나 말고도 이 땅 어딘가에는 걷고 있는 분이 계시리라.
셀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이력과, 일반인이 경험할 수 없는 특별한 일을 하셨다.
생존에 관련된 몇 가지 정보도 주셨다.
밤 하늘 별을 보며 울진 비행훈련장을 지나고 목적지였던 월송정에 도착한 시각은 자정.
오늘은 외롭지 않다.
보금자리
" 영덕 도착하면 연락 하래이."
" 알았다."
도보여행을 떠나기 전 친한 동생과 술 한잔하고 있을 때다.
동생은 영덕에 도착하면 고향집에서 쉴 수 있게 얘기해 놓을 테니 연락 하라 했다.
월송정에선 전날 만난 그분과 함께 아침 식사를 했고 담소를 나누다 먼저 자리를 나섰다.
시계를 확인해 보니 10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목적지인 차유마을까지는 대략 36km. 해변길을 따라 걸었으니 어림잡아 40km 되었나 보다.
시간당 4km의 속도로 걷는다 해도 휴식을 포함하면 자정을 넘길게 뻔했다.
오늘 안에 들어가지 못하겠구나 생각하고 있던 찰나 동생에게 연락이 왔다.
나도 모르게 그만 8시까지 도착할 것 같다고 얘기해 버렸다. 집밥이 그리웠기 때문이다.
한낮 뙤약볕에 걷다 일사병 초기 증상인 어지러움과, 무기력함을 느낀 시간은 오후 3시
주기적으로 물과 소금을 섭취했지만 쉬지 않고 걸은 내 잘못이었다
몸에 이상신호가 오자 그늘을 찾았고 몸이 진정될 때까지 한 시간 동안 누워있었다.
항상 새벽에 출발했고 가장 더울 시간에는 3~4시간을 쉬었다 갔지만
급한 마음에 무리를 했고 바로 몸에 이상이 왔다.
문제없이 걸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고 자만했던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해준 잊을 수 없는 경험이었다.
도저히 제시간 안에 도착하지 못할 것 같아 연락을 했고 7시가 다 되어갈 무렵 아버님의 차를 타고
무사히 마을로 들어올 수 있었다.
편히 쉬라며 민박집을 예약해 두셨고 다음날 점심까지 푹 쉬다 갈수 있었다.
안락한 보금자리와, 맛있는 음식
하루를 쉬고 떠나기 전 가지런히 정리된 빨래, 얼음 물, 에너지 바 그리고 경비까지
감사한 마음을 전달하기 위해 부산까지 건강히 완주하겠다 말씀 드렸다.
야외취침
침낭 대신 비치타월을 준비해 갔다. 바람막이 옷도 챙겼지만 15일간 야외취침하면서
새벽마다 추위에 잠을 설쳤다. 한여름이라 침낭이 필요치 않을 거라 생각했지만 예상은 크게 빗나갔다.
한 번은 텐트를 치지 않고 매트만 깔고 정자에서 잠을 자던 날. 엄청난 바람에 하루를 꼬박 세운 적도 있었다.
해안 도로로 걷다 보니 잠자리는 대부분 바다 근처였고 바닷바람이 이렇게 차가울지 생각하지 못했다.
뜨거운 물을 물병에 담아 밤을 버텼다.
재회
호미곶으로 들어가는 초입해서 자전거로 국토종주하는 친구를 만났다.
춘천에서 시작하여 양양으로 진입해 부산을 통과 제주를 한 바퀴 도는 여정이었다.
국토종주 자전거길이 조성되어있어 걷는 동안 도보여행자는 거의 보지 못했지만 자전거 여행자는 하루에도 몇 번씩 볼 수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말동무 때문이었을까 서로 여행기를 다 쏟아내었고 저녁엔 술 약속까지 잡았다. 호미곶에 게스트하우스가 있다는 정보를 들었고 친구는 먼저 가서 자리를 잡고 있겠다 했다. 5시간을 더 걸어야 도착할 수 있는 호미곶. 오늘 안에 갈 수나 있을까...
저녁이 되면 그간의 여행기와 인생사를 나눌 생각에 들떠 있었고 그 분위기가 어떨지 알기에 힘내어 걸을 수 있었다.
혼자 걷지만 오후가 길지 않았다.
4시간을 걸어 도착한 곳은 독수리 바위, 호미곶 해맞이광장은 불과 1시간 남짓.
아저씨 두 분이 정자에서 술을 드시고 계셨는데 한 분이 술잔을 건네시며 술을 권하신다.
고생한다며 주신 한 잔이 두 잔이 되었고 한 병이 되었다.... 기다리고 있을 친구를 생각하니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술기운이 올라 더 이상 걸을 수 없었다.
배고픈 걸 아셨는지 중국집에 전화를 걸어 짜장면 곱빼기를 시켜주셨고 짜장면을 안주 삼아 술을 더 마셔버렸다.
빗소리에 일어난 시간은 새벽 5시. 짐을 챙겨 호미곶 해맞이공원으로 향했다.
하루 종일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를 본 터라 게스트 하우스에서 하루를 쉴까 잠시 고민하다 그냥 걸었다.
호미곶에는 두드림 국토대장정 차들이 보였고, 대학생들로 보이는 30명 남짓 그들은 남쪽으로 걷고 있었다.
자전거로 국토종주하는 친구는 호미곶을 떠난 지 5시간 후에 낯선 정류장에서 다시 만났다.
지난밤 게스트하우스에는 두드림 국토대장정을 하는 몇몇의 친구들이 묵었다 했다.
그들은 주문진으로 향하는 일정이었고 오늘이 첫날이라 했다.
내가 오기까지 기다리고 있었고 국통 종주하는 한 분이 지금 이곳으로 오고 있으니 오면 궁금한 거 다 물어보라 얘기해놓은 상태였는데 오질 않아 엄청 아쉬워했다고 말해줬다.
오늘은 감포까지 갈 예정이고 친구는 감포에도 게스트하우스가 있으니 이번엔 아저씨들에게 붙잡히지 말고 꼭 오라 당부하며
다시 술 약속을 잡았다. 이번에 꼭 간다며 친구를 안심 시켰다.
2시간 후에 친구에게 메세지가 왔고 우린 다시 만날 수 없었다.
당일 입실 불가. 이런 데가 무슨 게스트하우스라고....
부산 오륙도에 도착할 때쯤 친구는 제주에 있었고 서로 안녕을 당부했다.
속초에서 주문진까지 이동하며 길에서 세 번을 만난 캐나다 친구가 있었다. 일행이 있었기에 잠깐씩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만났던 사람을 다시 만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녹초
온종일 비를 맞으며 걸은 적이 있었을까..
처벅처벅. 처벅처벅. 발걸음이 더디다.
도로 위에 차들은 여행자를 아랑곳하지 않는다. 갓길에 딱 붙어 걷지만 이내 멈춰 서기 일쑤다.
레인 커버를 두 개나 씌웠다. 배낭 안은 모두 젖어 있었다. 휴대폰은 망가졌고 추위에 몸은 떨렸으며
발은 예상한 대로 온탕에 10시간 담가진 마냥 심히 불어 있었다.
몸도 마음도 지쳐버렸다.
"그만 할까 이제.. 많이 왔는데,, 아니면 경주에서 자전거를 사서 부산까지 갈까.."
도보여행 15일차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즐기진 못해도 스트레스를 받을 거란 생각은 예상치 못한 비행기 딜레이와 같았다.
오류해수욕장 오토캠핑장에 짐을 풀고 맥주 두 캔을 마셔버린 후 자버렸다.
다행히 다음 날 날씨가 좋아져 젖은 모든 물품을 말릴 수 있었다.
잠시 시간을 내어 경주시내에 들어가 휴대폰도 고쳤다.
잡생각
오늘도 걷는다. 그리고 또 걷는다.
경북 울진, 영덕, 경주, 울산을 향해 가고 있었다.
문무대왕릉을 지났고 경주 주상절리를 야밤에 지나쳤다.
해가 떠 있을 때 보았으면 더 좋았을 테지만 밤에 혼자 이 길을 걸어도 좋다.
혼자이기에 외롭고 의지할 사람이 없어 지쳐도 걸을 수 있는 이유는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이기에 가능했다.
도보여행을 시작하고 초기엔 혼잣말, 잡생각으로 시간을 채웠다면
부산이 가까워질 무렵부턴 생각이 없어지고 길에 집중했다.
힘들면 쉬어가면 된다.
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 목이 타면 물을 마시면 된다.
비를 맞고 걸어본지 언제인지, 밤 하늘 별을 보며 걸었던 적이 언제 였는지
기억조차 없지만 지금 이 순간 모든걸 경험하며 걷고 있다. 힘들지만 좋다.
울산을 가로질렀다. 도시로 나오면 필요한 물품을 사기에 더 없이 좋은 곳이지만
시끄러운 소음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다.
걸어야 할 경로를 확인하고 도시를 벗어났다.
기장군으로 들어가는 날.
지독히 힘든 날이었다.
몸 상태도 좋지 않았다.
걸어도 걸어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고리 원자력 발전소를 지나칠 땐 도로의 폭이 좁아 위험하기도 했다.
18일차에 부산으로 진입했다.
"그래요. 나는 배고팠어요. 지독히도 배가 고팠어요. 그냥..... 그렇다고요."
5년을 사진가로 살면서 풍족함을 바라지는 않았지만 배가 고팠다. 육체적인 고통은 언제든 감당할 자신이 있었다.
마음도 지쳐가던 지난 시절 열정과 절실함마저 잃어버릴까 버티며 살았다.
사회적 알람과 시선.. 현실을 못 본 척 지날 칠 수 없어 나와 오랜 시간 함께 있어준 모든 카메라 장비를 팔았다.
사진은 당분간 잊기로 했다. 어쩌면 불편한 진실과 마주치기 싫은 도피성인지도 모르겠다.
나에겐 돈이 절실했다. 숙식이 제공되는 일이 필요했다. 월급을 확인한 순간 보통 일은 아닐 거라 예상했고 그 예감은 적중했다.
장시간 노동에 잠시 현실을 잊을 수 있었다.
그곳에서 오랜 벗이 될 인연을 만났다.
부산 진입 하루 전 그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어디까지 걸었어?"
"내일이면 부산 진입해"
"그래? 내일 부산에 가는데 그럼 같이 걸을까? 마지막 길을 함께 하자고.."
"그럽시다!.
한 달을 예상하며 걸었지만 이상한 오기가 발동하여 18일차에 부산에 진입했고 늦은 밤 송정해변에서
친구를 만날 수 있었다.
해변을 바라보며 먹었던 치맥은 진수성찬이 부럽지 않았다.
길에서 만난 인연들 그들과 함께 공유했던 시간들을 안주 삼아 이야기를 주고받았고 우리의 밤은 즐거웠다.
오륙도 해맞이 공원까지는 이제 20km 남짓
동해 남부선 철길
폐쇄된 철길을 따라 해운대로 향하고 있을 때다.
눈인사를 주고받으며 도보 여행객들을 지나치고 있을 때 한 분이 말을 걸어 오신다.
"어디서 출발 하셨어요?"
"고성에서요. 오늘이 마지막입니다."
이내 나에게 다가오셨고 아무 말 없이 몇 초간 나를 안아주셨다.
낯선 이에게 안겨보는 것이 얼마 만인가. 무엇보다 그분 눈빛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그 눈빛은 지난날 나의 삶을 위로해주었고 길 위에서 겪은 고통을 한 번에 씻겨주었다.
따뜻했던 눈빛, 오늘이면 끝나는 이 길이 마음을 더 적셔 주었는지도 모른다.
그분은 그렇게 지나가셨다.
해운대, 광안리를 지났고 30분간 낮잠을 즐겼다.
오늘로 도보여행이 끝난다는 생각에 여러 감정에 휩싸일 줄 알았지만
특별함 없이 어제와 같다. 그저 끝났구나 싶을 뿐이다.
오륙도공원엔 사람이 무척 많았다. 해파랑길 시작점이기도 한 이곳엔 도보 여행을 시작하는 분들이 꽤 보였고
일반 여행객도 섞여 있었다.
목적지는 오륙도 공원 이었지만 어디서 끝을 맺어야 하나 고민하다 스카이워크가 있는 지점에서 끝을 맺기로 했다.
같이 간 친구는 엉덩이에 땀띠가 생겨 엉거주춤 걸었으며 나는 그냥 웃었다.
19일간 내가 지나온 거리가 몇 km 인지 잘 모르겠다 어림잡아 700km 그 이하일 수도 있다.
나에게 중요했던 건 19일간 걸을 수 있게 기회를 준 것이다.
그저 나에게 이런 시간이 필요했을 뿐이고 무사히 도착할 수 있어 다행이라 생각한다.
감사해야 할 사람들이 많다. 아무런 대가 없이 베풀어 주신 모든 분들에게 고마움을 전달해 드리고 싶다.
그 방법을 찾고 있으며 새로운 도전과 나눔으로 이뤄지길 계획하고 있다.
마지막을 함께 걸어준 동생, 영덕에서 1박2일간 잠자리와 음식을 제공해준 동생, 그리고 가진 것은 유일하게 배낭밖에 없는 나에게
모든 장비를 빌려주며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힘이 되어준 형. 모두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