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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예인 Jun 30. 2024

빙구의 팥빙수

요즘, 내가 경험한 소중한 성취


     “씻고 나오면 해줄게, 금방 나와야 해.” 

빙구는 어제 도착한 연유와 팥을 꺼내며 첫 팥빙수를 만들어 볼 요량으로 말을 건냈다. 갈고 나면 금새 녹아내릴 얼음 때문에, 팥빙수를 맛 볼 고객이 올 때까지 기다리기 시작했다. 

     “빙구가 기다린다니까 그냥 나왔어.” 

그 마음을 아는 고객이 금세 식탁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수제 팥빙수는 처음인지라 설레는 마음으로 닌자블렌더에 얼음을 넣었다. '위잉-' 15초 만에 팥빙수 얼음이 완성됐다. 

     “대박!” 

생각보다 더욱 잘 갈린 얼음을 보며 둘은 성공의 예감에 들뜨기 시작했다. 

     “이거 넣어봐” 

신이 난 빙구가 짝꿍에게 연유와 팥을 건넨다. 짝꿍이 들뜬 표정으로 국산 팥을 다섯 큰 술 얹고 연유를 휙휙 두르더니 비빔밥 마냥 정성껏 비비기 시작했다. 

     “음!” 

한 입을 맛본 그는 진실의 미간을 찌푸려 음미하더니 고개를 세차게 끄덕이며 말했다. 

     “이거야! 음!” 

올여름, 더위를 많이 타는 남편을 위해 그가 원하는 재료만을 골라 만든 맞춤형 팥빙수는 대성공이었다. 


     ‘빙구’의 사전적 의미는 ‘조금은 어리석고 바보같은 사람’이라고 한다. 나는 최근에서야 내가 가정에 대해서 빙구였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앎은 변화를 이끌어내기 시작했다. 신혼생활 1년 9개월 차에 접어든 나는 요즘에서야 ‘가정’이라는 의미를 조금씩 알아간다. 최근, 신학대학원의 첫 학기를 마치면서 동기들의 작고 큰 간증들을 듣게 된다. 첫 학기 동안 내게는 어떤 배움과 은혜가 있었을까? 천천히 돌아보니 가장 큰 신앙적 깨달음은 ‘성경적 의미의 가정’이었다. 

     

     결혼 전, 나는 '결혼을 하면 내 인생이 불행해질 것이다.'라는 뿌리 깊은 두려움에 맞서야만 했다. 남편을 사랑하는 것과는 별개로 ‘여성’에게 결혼과 출산이 커리어와 개인 인생에 매우 과도한 헌신을 요구하며, 따라서 불합리하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두려움과 달리 결혼생활은 달콤했고 잠든 남편을 보며 밤마다 절로 감사기도가 튀어나왔다. “하나님, 이렇게 멋진 남편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최근 대학원의 첫 학기를 보내며 평소 남편과 대화하던 저녁과 주말 시간을 모두 학교 과제에 쏟아붓다 보니 부부의 갈등은 깊어졌다. 전적으로 대학원 생활을 지지해 주던 남편이 섭섭함을 토로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균열을 통해 우리는 깊은 대화를 할 수 있었다. 가정과 아이에 대해 소망이 큰 남편에 비해, 나는 가정과 아이에 대해 비전이 없다는 것을 직면하게 됐다. 바쁜 신대원 생활은 그 문제를 드러내는 계기였을 뿐이었다. 남편과 대화하다 보니, 신혼생활 동안 무심결에 드러났던 나의 개인주의적 태도들로 인해 실망하고 낙담했던 남편의 솔직한 마음을 들을 수 있었다. 


     처음에는 남편이 내 바쁜 대학원 생활을 왜 더욱 이해해 주지 못할까라는 속상한 마음이었지만, 기도의 자리에 나갈수록 하나님은 가정이 바로 서지 않으면 앞으로 내가 감당해야 할 사역들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하셨다. 또한, 가정에 대해 조금씩 소망을 품게 하시고, 아이를 갖는 것에 대해 두렵고 부정적이기만 했던 내 마음을 조금씩 바꿔가셨다. 그러면서 한 학기 동안 매일의 가정예배를 다시 세우게 하셨고, 나는 사역보다 이전에 세워져야 할 가정을 위해, 남편과 대화하는 시간을 확보하기 시작했다. 


     어제 종일, 우리는 카페에 앉아 나는 기말고사 과제를, 남편은 덩달아 회사 업무를 했다. 언제나 열이 많은 남편은 여름맞이 빙수를 주문했는데, 그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기만 해도 미소가 지어졌다. 

     “맛있어?”

     “응, 근데 나는 우유 빙수보다 옛날에 먹던 얼음 빙수가 더 좋아. 근데 요즘엔 다 우유 빙수더라고.” 

내가 해줄 수 있는 작은 일이 나의 한 몸에게 더 큰 기쁨을 줄 수 있다면, 기꺼이 그 일을 하고 싶어졌다. 어제 저녁, 집에오는 차 안에서 빙수 재료를 주문했다. 그리고 우리는 번갈아 노래를 불렀다. 

     

     "빙수야, 팥빙수야 녹지마 녹지마." 


     "빙수야, 팥빙수야 사랑해 사랑해."

  




written by.권예인 (2024.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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