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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예인 Mar 20. 2022

김영하作 과의 첫 만남

The RED : 김영하 작가의 내 안의 숨은 이야기를 찾아 쓰는 법

한 동안 독서를 쉬다가 다시 한번 책을 읽어봐야겠다 생각이 들 때면 나는 가장 얇은 책부터 시작한다.


독서에는 특별히 재주가 없지만, 도서관은 유난히 좋아해서 대학생 시절 도서관의 구석구석을 돌며 책을 가득 구경하곤 했다. 도서관이 좋은 이유는 조용함, 서가 사이로 비추는 햇살, 잘 정돈된 책, 그리고 그 책 하나하나마다 충만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점이다.


다른 세계로 나를 이어주는 문처럼 각 책들이 서가에 꽂혀 각자의 책감, 표지, 글자체를 뽐낸다. 나를 수천 가지의 세계로 인도해 줄 수 있다며 각 세계에서 아우성치며 날 초대하고 있는 모습으로 보인다.


대학생 시절 어느 여름날, 다시 독서를 시작해볼까 하고 처음 집어 든 책이 '김영하 작가'의 <나는 나를 파괴할 수 있다>였다. 아주 얇았고, 몽환적인 분위기의 달 삽화가 그려진 표지였다. 그 당시에는 김영하 작가가 지금처럼 TV에 얼굴을 비추지는 않았던 때라서 나 또한 그가 이렇게 유명한 작가인 줄은 알지 못했다.


그 책을 읽은 후 나는 '김영하'를 검색하여 김영하 작가의 책을 차례차례 읽어나갔다. 실전서나 자기 개발서를 좋아하던 내게 소설은 쓸모없는 시간낭비처럼 느껴지곤 했었는데,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를 읽은 후 매일 시간을 내어 '검은 꽃'을 제외한 김영하 작가의 모든 책을 읽었다.


그의 소설을 읽을 때면  '몽환적이고 퇴폐적인 느낌'이 좋았다. 그리고 철학 전공인 나는 그의 소설을 읽으며 '이 분이 철학에 깊은 조예가 있으신 것 같다.'라고 느낄 때가 많았다. 나의 착각일지 모르겠지만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그의 단편 소설들이 담고 있는 주제가 내가 배우고 있는 철학자들의 이론들을 '말'이 아니라 '스토리'로 잘 풀어놓았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작가님이 진정 철학 이론에 기반을 두고 소설들을 썼던 것이라면, 그것이야 말로 대단한 능력자 일 것이다.


김영하에게 빠진 후 나는 책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를 내게 가장 소중한 친구에게 선물해 줬다. 김영하 작가만의 문체와 매력에 빠져 나와 함께 덕질을 하기 바랐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내 친구는 나와는 취향이 다른지라 전혀 이 책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퇴폐적인 그의 책을 선물한 내가 오히려 이상해 보이지는 않았을지 모르겠다.


그 당시 김영하에 많이 빠져있어서 영문과나 스페인어과 등 주변에 있는 어문학과 친구들에게 내가 '김영하' 팬임을 밝혔지만 그들은 김영하의 작품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즈음되니, '김영하 작가가 이렇게 호불이 있는 작가인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에게 김영하 작가는 소설의 즐거움을 처음으로 선물해 준 극호의 작가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나는 몇 년 전부터 그의 글쓰기 강의를 찾았지만 찾지 못했고, 얼마 전 인터넷에서 그의 인터넷 강의를 하나 발견하고는 바로 결제했다.


'김영하'이기에 그의 작품을 좋아하는 게 아니다.

'소설의 즐거움'을 처음 맛보고 줄줄이 어느 작가의 글만을 찾게 되었는데, 그 작가가 '김영하'였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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