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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퇴턍규 Jun 29. 2024

리뷰 : 벚꽃동산

전도연 27년 만의 연극, 그리고 사이먼 스톤의 연출력

마곡에 온 지 2년이 다 되어 간다. 나에게는 일터이자 또 휴식의 공간. 찌는 듯한 한여름이 아니면 점심이나 저녁에 서울식물원을 가로질러 한강 변까지 걷곤 한다. 빠른 걸음으로 50분, 약 5km의 거리인데, 계절이 바뀌는 소리와 열심히 운동하며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소리가 들린다. 더불어 나도 건강해진다.



출퇴근 길, 그러니까 2년 동안 적어도 300번은 지나쳤던 LG아트센터에서 관람하는 첫 공연. 그 안의 식당은 한 번 가본 적이 있다. 



“전도연이다. 전도연이다. 전도연이다.”의 전도연이 27년 만에 출연하는 연극, 《벚꽃동산》. 그녀의 최고 작품 《무뢰한》(2014)이 나온 지 10년. 지난해 18년 만의 로맨틱 코미디 《일타 스캔들》(2023)에 이어 그녀는 계속 변신 중이다. 편집을 통해 여백과 감춤을 만들어낼 수 있는 영화나 드라마와 달리 연극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전히 관객에게 보여줘야 하기에 연극의 시공간이 두려워 피해 왔다고 솔직히 고백했지만, 역시 전도연은 전도연이다. 내 삶에서 이런 배우를 또 만날 수 있을까? 배우들의 배우. (어제 공연에는 송혜교도 관객으로 연극을 보러 왔다고 한다.)



또 하나 흥미로운 발견은 연출가 사이먼 스톤(Simon Stone)이었다. 한국어와 한국 문화에 대해서 영화나 넷플릭스 수준의 노출을 가지고 있던 작가이자 연출가인 그가, 외국어에 익숙하지 않은 배우들과 어떻게 연극이라는 실시간 매체를 만들어낼 수 있었는지를 엿볼 수 있었다. 물론 “이미 200편 넘는 한국 드라마와 영화를 보고, 제목과 감독을 기억하는 것은 물론, 인상 깊었던 배우의 경우 주조연, 단역 배우 이름까지 꿰차고 있는 연출가”인 사이먼 스톤의 이해력이 기반이 되었겠지만, (과장하자면) 일종의 리더십이나 팀플레이를 느낄 수 있는 부분이 많다. 손상규 배우(극 중 전도연의 오빠 역할)의 인터뷰가 흥미로웠는데, 안톤 체호프의 원곡을 다 같이 읽고 >> 모두 모여 워크숍을 한 뒤 >> 1:1로 혹은 1:多로 토론과 답사, 리서치를 통해 구체화하고 >> 사이먼이 전체 4막의 각본 초안을 만들어 >> Zoom 미팅으로 함께 점검해 나가며 >> 결정적으로는 배우들에게 자유, 상상, 해석, 애드리브, 색깔을 허용해서 >> 연극이 끝날 때까지 점차 완성도를 높여가는 중이라는 것이다. 신규 사업 TF가 빠르게 Glocal 시장을 Tapping 하고 GTM 전략을 수립하는 것으로 내 멋대로 해석해 본다.





극적 완성으로 보자면, 두 시간 반(인터미션 15분)의 러닝타임이 전혀 지루하지 않았고 막의 변화에도 연극 내내 불변인 세트에 조명과 소품에 의한 변주가 좋았다. 희극과 비극을 넘나드는, 진지함과 위트를 적절히 버무린 대사는 백미였다. 외국인 연출과 각본으로 이게 가능하단 말인가?





작은 부분이지만, ‘변동림’이라는 극 중 이름은 누가 지었을까? 바로 그 ‘변동림’을 염두에 두고 지은 것일테다. 그녀는 수필가이자 미술평론가였고 서양화가이자 위대한 제작자였다. 변동림의 다른 이름은 김향안, 1916년에 태어나 2004년에 작고했다. 20세기 한국 예술의 한복판에 그녀가 있었다. 변동림의 배우자는 설명이 필요 없는 두 인물, 이상(1937~1937)과 김환기(1944~1974).  



내게 작은 미소를 주는 이벤트도 있었다. 연극이 시작하기 직전, (대놓고 표현은 잘 안 하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고 또 어떤 의미에서는 존경하며 사회 생활을 하면서 가장 많이 배웠던 친구이자 동료를 우연히 만났다. 2년 만이었다. 그도 나도 2년을 잘 지내온 것 같아 좋았다. 인터미션에서는 반짝반짝 빛나며 그 만의 세계를 개척하는 또 다른 좋은 친구를 역시 우연히 만났다. 끝나고 나서 쑥쓰럽지만 사진도 함께 찍었다. 40대 아저씨가 된 기분이었다. 아니 40대 아저씨였다. 




좋은 공간에서 좋은 연극이었다. 

좋은 여름 밤이 지나고 있다.






***




[전도연에 대한 찬사]


역시 이 영화에서 압도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전도연 씨네요. “나, 김혜경이야”라는 극중 사자후가 고스란히 “나, 전도연이야”로 들리는 상황에서, 그는 끝없는 여인 수난극으로 보일 수도 있었던 이 이야기에 제대로 질감과 굴곡을 만들어 넣었습니다. “진심이야?”라는 짧은 되물음 속에 새로운 사랑 앞의 설렘 못잖게 기어이 희망을 찾아내려는 절박함을 담아내고, “당신 진짜 이름 뭐에요?”라고 쏘아붙일 때 밖을 향해 내뿜는 분노 뿐만 아니라 안으로 삭아 들어가는 참담함까지 옮겨낼 때, 이 탁월한 배우는, 지난 20여년이 그러했듯, 관객들에게 동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기쁨을 안깁니다. | 이동진 | ★★★☆ (7.0)


https://youtu.be/5YEcFPakSgo




[변동림이자 김향안]


https://www.vogue.co.kr/2017/12/21/%EC%9D%B4%EC%83%81%EA%B3%BC-%EA%B9%80%ED%99%98%EA%B8%B0-%EB%91%90-%EC%B2%9C%EC%9E%AC%EC%9D%98-%EC%95%84%EB%82%B4-%EA%B9%80%ED%96%A5%EC%95%88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947876


https://www.chosun.com/national/weekend/2022/07/16/UVXWJVGCAFDZ5HAWIISTR5BIJA




[벚꽃동산]


https://youtu.be/0SvxWjXaChg?si=dWdeM2UoYb68nPY7


https://www.youtube.com/watch?v=Ne_JfJTlKS0


https://www.youtube.com/watch?v=vs9hCFU5BvY


https://www.youtube.com/watch?v=MUXZK79y59I&t=1463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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