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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퇴턍규 Sep 07. 2024

리뷰 : 천명관, 『고래』

여섯 문장으로 만들어 낸 압도적인 세계관


천명관의 『고래』(Whale)는 그 첫 문단부터 숨이 막히는데, 놀라운 것은 그가 등단하고 제대로 쓴 첫 번째 장편소설이라는 점이다. 여섯 개의 짧은 문장으로 500페이지가 넘는 장편 소설이 그려내는 세계관을 압도적인 상상력으로 보여준다. 역시 문학과 예술은 천재들의 전유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 공장 

  “훗날, 대극장을 설계한 건축가에 의해 처음 그 존재가 알려져 세상에 ‘붉은 벽돌의 여왕’으로 소개된 그 여자 벽돌공의 이름은 춘희(春姬)이다. 전쟁이 끝나가던 해 겨울, 그녀는 한 거지 여자에 의해 마구간에서 태어났다. 세상에 나왔을 때 이미 칠 킬로그램에 달했던 그녀의 몸무게는 열네 살이 되기 전에 백 킬로그램을 넘어섰다. 벙어리였던 그녀는 자신만의 세계 안에 고립되어 외롭게 자랐으며 의붓아버지인 文으로부터 벽돌 굽는 모든 방법을 배웠다. 팔백여 명의 목숨을 앗아간 대화재 이후, 그녀는 방화점으로 체포되어 교도소에 수감되었다. 영어(囹圄)의 시간은 참혹했으며 그녀는 오랜 교도소 생활 끝에 벽돌공장으로 돌아왔다. 당시 그녀의 나이, 스물일곱이었다.” (천명관, 『고래』, pp.9~10)


― The Brickyard 

  “Chunhui—or Girl of Spring—was the name of the female brickmaker later celebrated as the Red Brick Queen upon being discovered by the architect of the grand theater. She was born one winter in a stable to a beggar-woman, as the war was winding down. She was already seven kilos when she emerged and plumped up to more than a hundred kilos by the time she turned fourteen. Unable to speak, she grew up isolated in her own world. She learned everything about brickmaking from Mun, her stepfather. When the inferno killed eight hundred souls, Chunhui was charged with arson, imprisoned, and tortured. After many long years in prison, she returned to the brickyard. She was twenty-seven.”  (Choen Myeong-Kwan, 『Whale』, p.11, Translated by Kim Chi-Young)


박민규의 인물평은 그 자체로 작품인데, 특히 천명관에 대한 평가는 단편 소설 같다.


  “작가로서의 천명관을 말하자면... 그는 매우 커다란 엔진을 가진 작가입니다. 그의 문장이 내는 배기음도, 또 리듬도 여느 작가들과는 그래서 확연히 구분될 수밖에 없는... 그런 작가입니다. 이야기의 적재량도, 그 이야기를 구동하는 힘도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나의 삼촌 브루스리>를 쓰기 전에 들었던 말이 생각나는군요. 어느날 그가 그랬습니다. 이번엔 개인사를 다룬, 아주 소소한 얘기를 하나 쓸까 해. 그리고 소소하게... 3000매 분량의 소설을 쓰더군요. 이거야 원, 아무튼 여러모로 그는 절대 보편적인 작가가 아닌 것입니다. 자동차로 치자면 커다란, 컨테이너 두어개쯤은 끌고있는 트럭과 같은 느낌이랄까요? 아무튼 그래서 시내주행이 힘듭니다. 뭔 놈의 신호가 이리 많고, 이를테면 학교앞 횡단보도라든지... 전봇대는 왜 이리 많고, 적재량 검사는 또 자꾸만 해대는지... 하여간에 아아 피곤해, 외곽으로 뻗은 산업도로 같은 델 달려야 맘이 편안한 그런 작가인 셈입니다. 해서 다시 박민규 작가님께 천명관 작가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라는 질문으로 돌아가 본다면, 가끔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하는 것입니다. 예컨대 밤은 길고, 이 도로는 끝이 없고... 먼지는 날리고, 내가 모는 트럭은 덜컥이고... 보이는 건 달 뿐인데... 어디선가, 또 누군가가 달리는 소리... 보이진 않아도 엔진소리가 들린다면... 좋겠죠? 혹은 기름이 떨어져 사막 한 복판에 있는 허름한 주유소, 같은 곳에 차를 세우고 휘발유를 넣고 있는데... 아, 그 차구나 싶은 트럭이 들어오고... 그래서 나란히 주유를 하며 앞바퀴 바람이 좀 빠진 것 같다는 둥, 행선지가 어디냐는 둥, 또 밥은 먹었냐는 둥... 뻘츰하니 담배라도 피워 물었다 이봐 댁들, 정신이 있는 게야 없는 게야? 배나온 주유소 사장이 버럭 소리라도 지르면... 거 참 되게 그러네? 라며 개똥같은 주유소 이거 다 타봐야 얼마라고 그래? 깐죽거리는 것도 다... 기나긴 운행(運行)의 한 풍경이 아니겠느냐, 밤이 깊어 보이지 않을 뿐 실은 함께, 구름도 저 하늘을 흐르고 있겠지(雲行)... 생각도 해보며, 또 까짓 거 얼마야? 카드를 던져줬는데 어랏 이 배불뚝이 새끼가 피식 쪼개며 이 카드... 이거 지급 정지네? 소릴 듣고 그럴 리가 없는데, 급히 돈이라도 빌리거나... 혹은 짝짜쿵 장단이 맞아 사장을 폭행, 기절시키고 현금지급기를 털어 도망치는... 그러다 부르릉, 시동을 걸며 이봐 이름이라도 알자구? 물어보면 나? 내 고향에선 다들 '더 비트' 제임스 플로렌스 알겐하임 쥬니어라 부르지 조낸 긴 이름을 둘러대고, 다시 말해 그렇다면... 하고, 말입니다. 어랏, 그런데 뭘 물어 보신 거죠?”


https://ch.yes24.com/article/view/19245



마치, 김훈이 단 몇 문장으로, 함민복의 아름다움을 소설처럼 그려낸 것이 떠오른다.


  “함민복은 강화도 서쪽 바닷가에서 버려진 농가를 빌려 살고 있다. 나는 라면과 소시지를 장만해서 민복이네 집에 몇 번 놀러 갔었다. 부탄가스도 사다 주었다. 우리는 바닷가 개펄에 앉아서 지는 해를 바라보며 라면을 끓여서 소주를 마셨다. 나는 민복이가 우리나라의 중요한 시인이라는 것을 아는데, 민복이는 이걸 전혀 모른다. 민복이는 취중에도 문학 얘기는 일절 하지 않는다. 민복이는 제비가 딴 집에만 집을 짓고 자기 집에 와서는 구경만 하고 갔다고 투덜거렸으며, 올가을에는 망둥이가 살이 덜 올랐다고 걱정했다. 민복이는 언제나 이딴 얘기만 했다.”



김훈(金薰)과 마찬가지로 천명관도 마흔이 넘어 데뷔했다. 김훈이 한국일보와 국민일보, 시사저널, 한겨레신문사의 기자를 거쳐, 소설가로 데뷔한 나이는 47세. 소설가가 되어 쓴 첫 번째 장편 『칼의 노래』로 제32회 동인문학상 수상, 역시 첫 번째 단편 『화장』으로 제28회 이상문학상을 받았다. 


천명관(千明官)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20대에 골프용품 판매, 보험 외판원 등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가 30대부터 충무로에서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하기 시작했으나, 결국 본인이 목표했던 영화감독 입봉에 실패하였다. 마흔 살에 동생의 권유(나이 마흔에 신용불량자의 처지에 영화는 데뷔하지도 못하여, ‘내 인생은 결국 실패했구나’라고 망연자실해서 아무것도 못 하고 있을 때, 동생이 이상문학상 수상집 일곱 권을 사 들고 찾아와서 그동안 갈고 닦은 글 쓰는 재주가 있으니 차라리 소설이라도 써보는 게 어떻겠냐고 용기를 주었다고 함)로 태어나서 처음 써 본 단편 소설 『프랭크와 나』로 2003년에 곧바로 등단하였고, 연이어 2004년 문학동네 소설상을 받아 바로 출간된 장편 소설『 고래』가 비평적, 대중적 성공을 동시에 거두며 유명해졌다. 

     (출처 : 나무위키)



천명관의 고래는 출간 20여 년 만에 영국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의 최종 후보(번역 : 김지영)에 올랐으나 수상에는 실패했다. (The International Booker Prize 2023, Longlisted) 한국 작품이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오른 것은 한강의 『채식주의자』와 『흰』, 정보라의 『저주토끼』,『황석영 철도원 삼대』 등이 있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56/0011506695?sid=103


40세에 소설가로 데뷔하고 20여 년 가까이 흐른 57세에 천명관은 오랜 꿈이던 영화감독으로 데뷔하였다.  영화《뜨거운 피》(2022)는 또다른 천재 작가 김언수의 2016년 소설을 영화화 한 작품이다.


https://namu.wiki/w/뜨거운%20피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000779671


https://brunch.co.kr/@tyangkyu/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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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김진경 기자의 소설『고래』에 대한 코멘트


https://www.facebook.com/share/p/rsWeVo6nqSfffy7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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