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라는 다름의 시너지
남편이 육아휴직을 하겠다고 했을 때만 해도 쉬고 나면 지금의 방황을 조금은 잠재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의미와 성장, 두 마리 토끼를 잡다가 둘 다 놓치기 십상인데, 남편이 다니는 지금 회사가 그 어려운 걸 해낼 수 있는 곳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남편이 직장 대표와 복직 여부를 최종 논의하는 미팅을 한 달 앞두고 나는 알 수 없는 긴장감에 계속 마음을 졸였다. 남편의 결정에 전폭적인 지지를 해주는 아내이고 싶지만, 내가 원하는 방향대로 남편이 결정하도록 한 마디씩 거들었다. "그래도 돌아가면 되게 재미있는 프로젝트를 시작할 수 있겠네. 해봐도 좋겠어" 그가 흡수하는지 튕겨내는지 모르지만 분위기를 만드는 것도 꽤 중요하니 말이다.
남편도 이 시기를 꽤 힘들게 지나고 있는 듯했다. 밤마다 난해한 꿈을 꾸고 잠을 설치면서 아침마다 피곤한 얼굴을 하는 그를 보니 안쓰럽기 까기 했다. 어느 날 자고 일어났을 때 마법처럼 1년 뒤라면 어떨까 상상해보곤 했다. 그 사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했고 어떤 미래로 나아가고 있을지 궁금했다.
회사 대표와의 미팅이 며칠 남지 않은 시점에 나는 남편에게 하루 교외로 여행을 다녀오라고 말해주었다. 1박 2일을 밀도 있는 시간으로 보내고 나면 그의 선택이 더 견고해져 있으리라. 그가 주저하지 않게 하나투어를 켜고 괜찮은 숙소를 찾아봤다. 남편이 원하는 숙소의 조건은 주변에 걸을 곳이 많아야 한다는 것. 그래서 거닐만한 큰 공원이 가까이 있는 숙소로 결제를 하고 그에게 떠날 채비를 하라고 말했다.
남편이 여행을 떠난 날, 나는 물리적으로는 떨어져 있었지만 함께 긴장하며 하루를 보냈다. 실제론 아이들이랑 아침부터 영화관에 가서 쿵푸팬더4를 보고, 시장탐방을 하면서 과일, 떡, 쑥을 사고, 박물관에서 다양한 체험을 하면서 부산스럽게 보냈지만, '이런 게 부부구나' 싶을 만큼 마음이 그와 닿아있었다. 종일 긴장이 되다가 어느 순간 마음이 편해졌다. 그가 어떤 결정을 내리고 돌아오든 이제는 그의 선택에 힘을 실어주기로 다짐했다.
자기야, 나 새로운 도전을 하기로 결정했어.
뜻밖의 말은 아니었다. 이미 기울어진 그의 마음을 눈치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에게 주어진 현실에서 그의 선택이 최선이었느냐는 점검할 필요가 있었다. 그의 자세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한편으로 마음이 놓였지만 한편으로는 불안감이 차올랐다. 양가감정에서 나는 원치 않게 예민해졌다.
남편이 미안하다고 했다. 조금 더 완벽한 계획을 제시하지 못한 채 지금의 결정을 하게 돼서.
그가 말한 대로 5년 후, 10년 후의 우리의 입장에서는 이 결정이 꼭 필요로 할 것이다. 앞으로 나아가는 결정 말이다. 새로운 스테이지에서 펼쳐질 도전에 몸을 내맡기는 것만이 후회를 남기지 않는다. 남편의 말에 나는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그는 최종적으로 복직하지 않기로 대표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내가 첫 아이를 낳고 육아휴직에 들어가 복직하지 않기로 결정했을 때가 오버랩되었다. 그때 나 역시, 남편에게 원 없이 일했고 새로운 일을 해야겠다고 말했다. 대학졸업 후 상경해 결혼하고 출산까지 겪으며 애정이 남달랐던 회사였다. 대표님께 퇴사를 말씀드리고 돌아오던 길에 수많은 감정이 교차하면서 집 근처 놀이터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었더랬다.
남편 역시 비슷하게 감정이 올라온다고 말했다. 우리가 결혼을 결정하던 때 갑작스럽게 그의 퇴사와 이직이 맞물려있었다. 스드메 대신 자소서를 쓰면서 시간을 보냈던 때가 떠올랐다. 그렇게 입사 두 달 만에 결혼식을 올렸고 회사에 다니면서 두 아들을 얻었다. 그의 30대 고스란히 10년의 시간이 담긴 조직이니 나보다 더할 것이다. 그를 토닥이며 우리는 그간의 회고를 나눌 저녁 만찬을 가졌다. 잘 울고 잘 떠나보내자.
신기하게도 한 마음으로 결정하고 나니, 그에게 더 이상의 불평은 없었다.
10년간 성실하게 벌어줘서 고마워 여보.
덕분에 우리가 지금의 집에 살림살이들을 채워왔네. 이제 내가 벌테니 자기가 하고 싶은 일 맘껏 펼쳐봐. 새롭게 올라탄 파도가 우리를 어디로 이끌지 기대해 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