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심어린 로레인 Jun 07. 2023

한집에 살아도 서로 다른 시간 속에 산다.

부부는 곧 다름의 시너지

    


자기, 내일은 뭐 해?


다시 생각해 보니, 매일 출퇴근하는 사이라면 이런 질문을 물을 일도 없겠다. 프리랜서인 나에게 남편은 종종 질문한다. 그의 의도가 나에 대한 지극한 관심과 애정이란 걸 알면서도 나는 그래도 규칙적인 내 스케줄을 그가 미리 알고 있다면 굳이 할 질문인가 싶었다. 그나마 특정 요일에는 반복되는 스케줄인데 조금만 생각해 보면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매주 목요일이면 어떤 수업을 하고, 매주 금요일이면 어떤 약속이 있는지...


때론 그의 말투가 거슬리게 느껴졌다. 석 달 동안 반복되면 이젠 알 법도 되지 않나? 오늘도 아침 식사에서 "오늘 뭐 할 거야?"라고 묻는 말에 나도 모르게 표정이 굳었다. "오늘 목요일이잖아..." 질문자의 의도와는 달리 나에겐 무심하게 느껴져서 말이다. 무튼 전혀 다른 시간 개념으로 이따금씩 충돌하는 사건이 생긴다.


거슬러보니 연애 때도 그랬다. 바쁜 주중 일정을 끝내고 토요일이면 늦잠도 자고 싶고 가족과의 시간도 필요하겠지만, 언제 만날 것인지 약속 시간을 정확히 정하지 않으니 나는 엉성하게 하루종일 그를 기다리는 애매한 상황에 놓였다. 차라리 몇 시에 만나자고 하면 안 되냐고 묻는 나에게 그는 당황하면서도 2시 정도?라고 확신 없이 시간을 언급했다. 그러다가 나도 어느 순간 손해 보는 느낌이 들어서 그가 나타난 커피숍에 2시간 동안 나가지 않았다. 마음을 졸이면서도 기다리는 사람의 심정을 느껴보라는 소심한 복수였다. 한참 뒤, 내가 나타나자 그는 그사이 연습장에 적은 편지를 나에게 건넸다. 내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고, 그의 진심을 눌러 담은 글을 보면서도 나는 솔직히 마음이 편치 않았다.


반대로 나 또한 그에겐 굉장히 다른 시간개념의 소유자다. 즉흥적이고 추진력 있게 새로운 일을 벌여나가는 모습이 가히 충격적이었다고 말한다. 갑자기 여행을 잡거나 새로운 곳을 가자고 하고, 어제 말했던 말을 아이디어로 구체화해 오늘은 이렇게까지 디벨롭했다는 피피티 장표를 들이밀기도 한다. 충분히 숙고하는 스타일인 그에게 내 세계관에서 당연한 속도감은 현기증이 날 법도 하다.  

 

그렇게 부부가 된 우리에게 여전히 충돌하는 사건이 반복적으로 일어난다. 그가 당황하지 않게 한 달, 몇 주 전부터 스케줄을 공유하고 그의 도움을 구하지만, 때론 처음 들은 것처럼 반응하는 상황이 펼쳐질 때면 정말 어이가 없다. 그에게도 갑자기 뜻밖의 상대와 점심 약속을 권할 때면 정말 진심 버거워한다. 내가 답답하다고 화가 나는 만큼, 그도 당황스럽다고 화가 난다.


하아... 우린 이대로 잘 살 수 있을까?


한바탕 입씨름을 끝내고 나니, 맘이 답답했다. 그도 그랬는지 차키를 들고나갈 채비를 했다. 나는 남편을 뒤따라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나도 태워가라고 ㅎ 우리는 차를 타고 한강으로 쭉 한 바퀴 돌았다. 한밤의 야경과 스산해진 찬 공기가 마음을 누그러졌다.


"아, 정말 서로 좀 이해해 주자!"


남편의 약한 부분을 나는 이해해줘야 하는데, 순간 머릿속에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남편의 그런 시간 개념이 나한테 도움이 될 때는 언제인가? 타임 리미트를 정하지 않고 깊이 몰입하는 그의 시간을 통해 무엇이 좋아졌지? 생각해 보니 더 완성도 있는 결과물을 뽑아내기 위해서 몰입하고 연습하고 노력하는 시간과 같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시간개념이었다.


반대로 그가 자신 없고 미적거리는 그 사이, 내가 가볍게 어떻게라도 추진해 보는 것이 빠르게 결과물을 얻는 데 더 도움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다른 것에만 집중하니 서로가 원망스러웠는데, 관점을 틀어 내 부족함을 가진 그가, 그의 부족함을 가진 나는 서로에게 보완해 줄 만한 사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시너지가 되기 위한 부부가 된 것이다. 부부의 합작품으로 지난 시간 동안 이뤄온 것들을 생각하면 서로의 존재가 참 든든하고 감격스러울 뿐이다.


"맞아, 자기의 그 점이 좋은 것들을 떠올려보고 있었어. 참 많네"


뜻밖의 반응에 남편은 눈물이 고인 채로 그럼에도 자신이 더 노력하고 있고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까탈스러운 와이프를 만나, 자신의 성격을 다듬어가는 남편도 애쓰는 중이고, 나도 그런 포용력을 가지려고 애쓰는 중이다. 우리가 서로 愛쓰면서 살다 보니 그래도 더 웃을 일이 많아지고 있는 거 아닐까? 아주 조금씩이라도 부딪침의 횟수가 줄어가는 걸 보면...


그렇게 우리는 부부가 되어간다.

매거진의 이전글 남편의 육아휴직으로 우린 진짜 부부가 되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