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육아휴직으로 우린 진짜 부부가 되었다
부부라는 다름의 시너지
결혼 후, 남편은 성실하게 가장의 역할을 책임져왔다. 매일 아침, 출근하는 남편의 뒷모습을 보면서 어떤 날은 내가 가정을 돌보고 있으니 그 수고가 당연하다고도 느꼈고, 어떤 날은 그의 어깨가 무거워 보여 안쓰럽기도 했다. 꼬박 9년의 시간을 한 회사의 중책이 될 때까지 젊음을 바쳐온 그가, 잠시 인생의 쉼표를 갖겠다고 말했다. 덧붙여 갓 초등학교에 들어간 첫째 아이의 소중한 시기를 함께 하고 싶은 부성애 깊은 모습을 어필했다.
지금은 이제 막 40대에 접어든 그에게 인생 가장 중요한 시기이자, 육아휴직을 쓸 수 있는 마지막 시기이기도 했다. 프리랜서 기획자이자 워킹맘으로 고민이 많던 시기에 남편이 육아에 손을 더하겠다고 선언하니 한편으론 고맙고 든든하게 느껴졌다. 우리가 살아갈 인생이 얼마나 길지는 모르겠으나, 훗날 돌아보면 지금 제대로 된 쉼표를 찍어야 다시 새로운 도전을 이어가는데 적절했다고 판단할 것만 같았다.
그렇게 남편은 5월 1일부터 5개월 육아휴직에 들어갔다. 유독 휴가가 많은 5월이라 한편으론 시기가 더 늦어도 좋았을 뻔했지만, 그의 선택엔 후회가 없어 보였다. 노마드로 일하는 나에게 남편의 존재는 꽤 일상의 큰 변화로 다가왔다. 혼자 이곳저곳을 다니며 일하는 편이라 이 사람과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함께 해야 하는지, 밥을 꼭 같이 먹어야 하는지, 우리가 같이 할 사이드 프로젝트를 어떻게 추진해야 나가야 하는지 등등 뭔가 두리뭉실하고 애매한 상황들이 혼란스럽게 느껴졌다. 새삼 우리가 결혼한 지는 수년이 흘렀지만 온전히 24시간을 붙어있던 시간은 많지 않았다고 깨달아졌다. 남편의 육아휴직은 진짜 부부가 되는 트레이닝이 아닐까?(내가 프리랜서이기 때문에 더더욱)
우선은 남편의 1~2주를 여유롭게 쉼을 주되, 본격적으로 우리의 육휴기간을 알차게 보내기 위해선 규칙이 필요해 보였다. 육휴의 시작을 축하하기 위한 점심으로 스시 오마카세를 예약했다. 적당한 배부름을 선사하는 점심 코스가 우리 부부에겐 가성비가 좋았기 때문이다. 스시 한 점씩 느긋하게 즐기면서 남편의 흰머리를 찬찬히 쓰다듬었다. "고생했어 여보야! 당신 덕분에 우리 가족이 이렇게 살아왔어!" 고마운 진심을 담아 그에게 전한 한 마디는 남편의 눈시울을 붉히게 만들었다. 찡한 점심을 마치고 우리는 근처 스타벅스로 향했다.
노트북을 켜 엑셀 시트에 우리가 육휴기간 챙겨야 할 투두리스트와 하고 싶은 위시리스트를 프로젝트 스케줄처럼 세팅해 봤다. 아이들을 챙기는 당연한 육아 루틴과 함께 사이사이 시간에 해볼 수 있는 자기 계발을 위한 것들을 말이다. 혼자서는 계속 늘어지고 늘어졌던 에세이책 원고를 쓰는 것부터, 남편이 소소하게 실험해 볼 만한 프로젝트까지 하나하나 리스트업 했다. 부담은 덜되, 5개월의 육아휴직 기간을 그럼에도 규칙적으로 보낼 수 있도록 적당한 운동과 일거리를 만들기로 한 것이다. 착착착 캘린더가 완성될수록 육휴가 끝난 뒤에 더 성장해 있을 우리 부부를 그려보는 게 가슴 벅차게 느껴졌다. 업무 스타일이 다르지만 PM(Project Manager)인 남편을 잘 따라 찬찬히 일정에 맞춰 진도를 빼보려고 한다.
남편에게도 나에게도 아이들에게도 아주아주 소중한 하루하루 시간을 잘 보낼 수 있게 노력해야지.
파이팅 여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