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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봄 Nov 07. 2017

이방인

우리 언제나 서로에게 이방인이 되자구요.

한 달 전쯤이었을까? 정말 관계에 대해 하루도 빠짐 없이 고민하고 많이 힘들어하고 있을 때 우연히 윗글을 읽었다. 바로 제일 친한 친구를 향해 쉴 새 없이 휴대폰 자판을 두드렸다.


요즘 요동 치는 내 마음을 보면서 많이 느끼는 건데 정말로 깊이 사랑하는 사이라도 서로의 차이점을 알고, 서로에게 공간을 주고, 오해하지 않기 위해 늘 노력하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구나 싶어. 같이 해온 시간이 결코 더 깊은 이해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도.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 '상대방도 당연히 나처럼 생각하겠지' 하는 짐작이 얼마나 자기중심적인지 조금 알 것 같아. 왜 우리 둘 다 오랜 관계를 가져봤지만, 어떤 날에는 둘도 없이 가깝고 서로 잘 아는 것 같다가도, 다른 날에는 수년 간 봐온 사람이 누군지 전혀 모르겠고, 닮은 게 하나도 없는 것 같은 생각 들곤 했잖아, 그렇지? 사랑하면 닮아간다는 말은 어쩌면 조금 틀린 말인가 봐. 게다가 닮아간다고 하면 사람은 자연스레 이기적이게 '상대방이 나를' 닮아가는 과정을 먼저 생각하게 되는 거 같아. 어느 샌가 이해하기 보다는 이해 받고 싶어하고, 어느 날 문득 오랜 시간 뒤에도 좁혀지지 않는 거리를 보면, 그 긴 시간 동안 내게 다가와주지 않은 상대방을 탓하게 되고. 그런데 두 사람은 결코 동화되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결국엔 이방인일 수밖에 없다는 말이 너무나 와 닿아. 흑백으로 나뉘어 어느 하나가 답일 순 없지만, 이렇게 생각하니 전에는 안 보이던 면들이 보여. 이 글이 나한테는 요 근래 품고 있던 문제에 방향성을 준 거 같아.


그리고 또 얼마 전, 기말 페이퍼 때문에 바쁘던 나는 시내 도서관에서 매일을 보냈다. 하루는 몇 시간 동안 집중해서 글을 쓰다가 나와 보니 위와 같은 세상이 펼쳐졌다. 가을의 끝자락에서 만난 탁 트인 하늘과 따스한 햇살이 은혜로웠다. 그리고 문득 이 아름다움이 읽히는 건 내가 아직 (그리고 어쩌면 영원히) 이곳에서 이방인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다리로 딛고 선 땅이 가끔 무르게 느껴지는 대신 어린 아이의 동경을 간직할 수 있는 조건이라면, 이방인일 수 있는 것도 아름다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꼭 그만큼의 불편함이, 거리감이, 예측 불가함이, 그 불안이 대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걸지도. 사랑하는 사람에게 영원히 낯선 이가 되어달라던 누군가의 말이 생각난다. 참 달콤한 고백이다. "우리 언제나 서로에게 이방인이 되자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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