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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rchid Jun 27. 2016

밤길




술을 잔뜩 마시면 꿈속에서도 취할 수 있다. 거기선 큰일이 별 것 아닌 일이 되고 별 것 아니던 일이 큰일이 된다. 옳은 것도 그른 것도 없고 그 둘을 나누려는 사람도 없다.


속이 들끓기 시작하면 술이라도 마시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다. 들끓는 감정은 장식과 같은 것 같다. 과해지면 거추장스럽고 없으면 초라해지고 만다.  취한 채로 밤길을 걸을 때면 뿌옇게 퍼진 불빛들이 내 안으로 들어오는 듯했다. 그 순간엔 모든 호흡이 슬픔인 동시에 기쁨이었다. 마치 들숨과 날숨 같았다. 모든 괴로움에서 멀어진 지금도 두 감정이 교차하던 순간의 감격만큼은 잊고 싶지 않다.


밤길엔 꽤 많은 위협이 있었고, 몇 번 험한 일을 당할 뻔했지만 그래도 두렵지 않았다. 공포와 비참엔 이미 너무도 익숙했기 때문이다. 위협을 만나면 다음엔 더 지독히 취해 더 많은 밤길을 누볐다. 생에 오기를 부리기라도 하듯이. 그땐  죽는 것보다 사는 일이 두려웠다. 차에 치어 죽거나 살해를 당한다 해도 내게 마땅한 일일 것 같았다. 오히려 안위를 걱정하게 된 순간부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겁쟁이가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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