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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rchid Jan 01. 2019

10

이 많은 말들을 하는 데 고작 10일이 걸렸다. 


나는 싸울 만큼 싸웠고 매달릴 만큼 매달렸다고 생각했었다. 원할수록 더 불행해졌다. 상황을 끼워맞춰 멋대로 해석하는 게 아니라 실제로 그랬다. 너무 간절했고 오직 이것 하나 뿐이라 세상 모든 것을 등질 수도 있을 것 같았는데, 점점 지쳐갔다. 두 눈을 잃고 손을 잘려도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는데. 새삼 노력만한 재능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사랑해온 것을 무슨 일이 있어도 저버리지 않겠다는 불길 같은 마음, 이게 없으면 더는 내가 아무것도 아니게 될 지도 모른다는 공포는 이제 영영 가질 수 없는 감정이겠지.





얼마 전에 그런 말을 보게 됐다. 운명이었기에 그냥 거기에 따랐다고. 운명이라고 여기게 될 만큼 큰 파도가 덮쳐왔을 때 그 흐름을 받아들인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부럽기까지 하다.




꼭 말하지 않아도 될 괴로움을 털어놓고 나면 미안하다고 사과해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그건 미안해야 할 일이 아니라 고마워해야 하는 일인 것 같다. 이런 쓸데없는 이야기를 해서 정말 미안해, 라고 하기보다는 이런 듣기 힘든 이야기를 들어줘서 정말 고마워, 라고 말하고 싶다.

너무 지극해지면 아무 말도 할 수 없어진다. 그건 한두 마디 말로 표현이 될 수 있는 마음이 아니라 나는 매번 말을 잃고 예의없는 사람이 되고 만다. 정말 상대를 생각한다면 인사치레라도 빨리 뱉아야 하는데, 혼 없는 말 같은 건 하고 싶지 않다. 어쩌면 지극함이 아니라 이기심 때문인지도 모른다. 배려하는 말은 나를 위하는 게 아니라 상대를 위한 거니까 설령 마음에 차지 않는다 해도 그 자리에서 꺼내라고 있는 거겠지.



허물어지지 않도록 온 힘을 다해 정신을 붙잡고 있지만, 이걸 놓아버린다면 얼마나 편해질까. 내딛는 발 한 걸음 한 걸음이 지옥으로 내려가는 길 같던 때가 있었다. 이제는 더 내려갈 곳도 없는 것 같다. 중간이란 걸 잘 지킬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았을 걸. 왜 매번 도 아니면 모 같은 극단적인 선택밖에는 할 수 없을까. 그냥 어중간하게 즐거워하고 어중간하게 외로워하며 살 수는 없을까. 자문하지만 역시 같은 말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맞는 말일수록 더 인정하기 싫은 법이라 괴로운 것 뿐이지. 나는 답을 분명히 알고 있다.



가까워지기 전에는 그 사람을 잃을까 두려워서 멀리했고 헤어진 뒤에는 그 사람에게 가까이 가고 싶을까 두려워 멀리했다. 그때부터 진심을 다해 전하고 전해받는 게 괴로워졌던 것 같다. 당장은 빛나도 결국 돌덩어리가 되고 말 말들.



휘청이는 걸음 속에 아무것도 없어. 흔들리는 시야 속에도 불안한 미래 뒤에도 역시 그럴듯한 답 같은 건 없어. 더디게만 느껴지는 종종걸음 뒤에 또 멀고 멀기만 한 목표가 기다리고 있다면. 그것을 견디는 이들은 위대한 존재가 될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 어디에도 속할 수 없겠지.



주변 사람들이 마음을 울리는 말을 하면 그 말을 오래도록 간직하게 되는 것 같다. 어떤 말은 20년 남짓 지나도 울리고 있다. 그 말이 얼마나 정한 것이었는지를 잊지 않고 거듭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요즘은 그런 말이 너무도 절실하다. 지금껏 가슴 속에 새긴 것으로 부족한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서 정수에 가까운 말을 듣는 것은 기적을 바로 앞에서 목도하는 일 같은 것이니. 말은  가장 쉬우면서도 힘든 것이라 더 그런 것 같다. 



심장이 너무 아프다. 딱히 빨리 뛰는 것도 아닌데, 끝도 없이 조여들어서 잠도 옅어지고 짧아졌다. 넘지 못했던 선들을 조금씩 넘고 있지만 정말이지 그 높이가 점처럼 미미하다. 더 크게 뛰어야 해. 더 큰 일을 일으켜야 해. 더 큰 말을 해 봐. 이런 아픔이 오지 않았다면 허공을 보고 짖는 듯한 소리마저 다시 시작하게 되지는 않았겠지. 그렇지만 정말 괴롭다. 괴롭다. 괴롭다고 말하면서도 털어지지 않는 괴로움이다.



공백을 메우려고 헛소리나 하는 자신이 싫어진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대화 상대를 심심하게 하지 않기 위한 배려일테니까, 상대의 모든 말들이 다 고맙게 여겨진다. 그럼 보통 사람들은 서로 헛소리를 하려고 만나는 걸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 끝에 역시 살아서 저지르고 마는 말이란 거추장스럽기 그지없으니 혼만 남았으면 하고 바라게 된다. 그리고 혼과 혼으로 만날 수 있다면 기쁨으로 미쳐버릴지도 모르겠다.



미친 사람처럼 밤길을 헤맸다. 사무치도록 외로워서 걷고 또 걸었다. 간절한 하나와 애매한 하나가 만나면 더 외로워질 것도 그때는 미처 모르고.




빛나고 있을 때보다 한없이 초라할 때 사랑받는 편이 좋다. 손가락만 까딱해도 얻어지는 수천의 사랑보다 엎드려 손을 벌리고 있을 때 놓여지는 하나가 더 컸다.



나는 사람들과 헤어질 때 밝은 얼굴로 인사하려 노력하는 편이다. 오래전 헤어진 친구는 내가 그와의 만남보다 헤어짐을 더 반가워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멀어지는 것을 두려워해서 그 마음을 감추려고 정반대의 표정을 짓는 것도 모르고. 나는 끝끝내 그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서 세 시간째 누워만 있다. 마음은 무슨 짓을 해도 길들일 수 없는 것 같다. 이렇게 날뛸 때는 온 힘을 다해 가둬야지. 앞으로 어떻게 될까. 보이는 모든 길이 다 파국일 뿐인데, 심지어 최선까지도. 이 판 위에 더이상 지을 수 있는 집이 없다. 패배한 지도 오래이고 인정할 일만 남아 있었지. 내가 졌으니 이 고뇌를 제발 그만 거두어 주시라고 빌고 싶다.




난 사실 어떤 때 제일 재미를 느끼냐면 궤도에서 벗어날 때야. 남들이 가지 않는 길로 가고 미친 것처럼 보일 일을 저지를 때가 재밌어. 그 외에 어디서 재미를 찾겠어. 죽은 사람들 다 모아서 묻고 싶다 죽고 나서 재미있니 재미있으면 나도 좀 죽자.



비밀은 몸 밖으로 나오기 전까지만 비밀이야. 그 뒤엔 비밀을 벗어낸 사람도 돌아보지 않을 허물이야. 내가 사람에게 가까이 가지 않는 이유는 딱 두 가지야. 그 사람을 이미 싫어하고 있거나 너무 좋아하게 될까봐.

사실 자기 취향에 대해 말하는 건 길 가다 주운 남의 깃털을 내보이는 일이랑 비슷한 거지. 그래서 네가 자기 자신에 대해 조심스레 이야기하는 것이 싫지 않아. 나는 내 생을 다 끌어와서 네 이야기를 느끼고 이해하려 하지만 절대로 그렇게 하고 있다고 밝히진 않을거야.



기계처럼 서로에게 친절하게 구는 게 *같은 걸 알면서도, 이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건 그 방법 하나밖에는 없어서 달리 도리가 없다. 어쩔 수 없이 묶여 있는 완벽한 타인이란 게 이런거였구나. 언젠가 너도 말했지. 헤어지고 싶어도 너무 얽혔다고. 그 말에 상처받지 않을 정도로 멀어져서 정말 다행이다. 그간 빠트려온 수렁도 충분한데 왜 죽을 힘을 다해 기어나오면 다시 빠트리고 빠트리길 반복하는거지. 구원해줄 것도 아니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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