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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dysik Mar 22. 2020

관찰을 잘 하고 싶다

Class 101 - 팔지 않아도 사게 만드는 공감 3

"너 그만 좀 싸돌아 다녀" 친한 친구들이 나에게 자주 말하는 말이다.


뭐, 틀린 말은 아니다. 회사를 들어가기 전 6개월 정도 남은 시간 동안 나는 거의 매 달 대륙을 옮겨 다닐 정도로 여행을 했다. 늦은 2월 삿포로를 시작으로 베트남, 타이페이, 포르투, 베를린, 샌프란시스코 등 그동안 저축해둔 돈을 모두 여행에 쏟아부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게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는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게 나에겐 즐거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혼자서도 잘 다닌다. 작년에는 도쿄에 그냥 사진 클래스도 듣고 혼자 생각도 할 겸 다녀왔다. 거기서 느낀 점을 글과 사진으로 남겨두어야지 하고는 돌아와서 아무 글도 쓴 건 없다. 수많은 벚꽃 사진은 남겨왔으니 반은 성공했지 뭐.


4월의 도쿄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것들을 만나면 문득 쳐다보게 된다. 한참을 쳐다보면서 생각한다. 그러다 보면 별에 별 생각을 다하게 되곤 하는데, 이 생각 행위를 나만의 여행 활동 중 자연스럽게 당연히 해야 하는 것으로 여겨왔다.


이 활동을 이때까지는 정의 내려보지 못했는데, 오늘 이 활동이 무엇인지 정의하고 이름을 붙여 주었다.

'관찰'이라고.





구매 결정에 영향을 주는 요소

감응력을 찾아보자. 사람이 결정하는 데에는 다 이유와 원인이 있다.


혹시 감응력이라는 단어를 알고 있을까?

감응력이란 마음에 어떤 느낌을 전달하여 움직이도록 만드는 힘이라는 뜻으로 쓰인다.


결과가 있으면 원인이 있는 법. 내가 어떤 행위를 한건 다 어떤 요소에 의해 움직여졌다는 것인데, 솔직히 나는 내 마음에 어떤 느낌이 전달돼 내가 이런 일을 했을까 하고 나 자신에게 물어보는 일이 많다.

(물론 혼자 생각하지 밖으로 말을 내뱉지는 않는다)



자,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알고 있는 사실이 있다. 비가 오면 막걸리와 부침개가 먹고 싶어 진다는 사실.

실제로 이마트가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비 오는 날이 그렇지 않은 날보다 막걸리 매출은 34% 높았고 막걸리 안주용 부침개 재료들도 함께 더 많이 팔렸다고 한다.


날씨는 정말 구매 결정에 영향을 주는 요소 중 가장 강력한 요소인 것 같다.

여름이 다가오면 폭염대비 용품의 매출이 늘어나고, 겨울이 다가오면 한파대비 용품의 매출이 늘어나는 것은 너무 당연한 원리이며, 봄이나 가을 같은 간절기가 다가오면 일반 외식 산업의 매출이 증가하는 것도 자연스럽다.


그렇다면 날씨를 카피에 적용해보면 어떨까?


아직 전기요를 꺼내기는 이른 요즘,

잠들기 전 포근한 이불속 작은 난로


'아직 전기요를 꺼내기는 이른' 시기는 언제일까. 아마도 11월에서 12월 넘어가는 즈음 영상 10도를 기웃거리는 때 일 테다. 그런 시기에 당연히 보일러나 전기요의 힘을 빌리기엔 더울 수 있다. 이 카피는 적당히 따뜻하고 포근한 잠자리를 만들기 위해 이 난로(온수를 담아 두는 주머니)가 있다면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다. 그 공감사례를 날씨와 엮어서 카피를 지은 것이다.


이 카피를 본 사람들은 요즘 날씨가 '아직 전기요를 꺼내기는 이른' 시기임을 알고 있다. 그리고 '잠들기 전 포근한 이불속'이 어떨지도 직감적으로 알고 있다. 그럼 두 사실로 인해 완벽히 설득당한 사람이라면 이 제품을 구매하기 위해 클릭해보지 않을까?


카피의 몫은 다했다.




관찰을 생활화하자

사소한 공감은 사소한 관찰에서 나온다

 

달은 어디에나 있지만,
보려는 사람에게만 뜬다

검색의 시대, 사유의 회복 - 법인 스님


내가 즐겨 보는 인스타그램 인플루언서가 있다. 그는 여행 광고회사 '여행에 미치다' 직원이면서, 오로라와 은하수와 같은 빛을 가두는 야경사진을 찍는 일을 좋아한다. 매번 오로라를 찾아 떠나고 은하수를 찍기 위해 밤을 새우는 모습을 보다 보면, 정말 위의 문구가 격하게 공감되곤 한다. 누군가에겐 그냥 지나가다 보이는 자연현상이겠으나 그에게는 엄청난 시간과 돈을 투자해 보려고 하는 일이다.


포르투의 노을


포르투 여행을 가서 이 장면을 보고 혼자 큰 전율을 느꼈다. '너무 예쁘다' 그 많은 관광객 사이에서 혼자 한국말로 내뱉고 나서 카메라를 꺼내 슛을 찍어대는 동안, 나는 잠시 관찰을 멈추었다. 사진이 제대로 찍혔는지 확인하고 나서 다시 관찰을 재개했다.


이렇게 찍은 사진은 나보다 한 달 전 포르투를 다녀간 친구에게 전송되었고, 내가 직접 눈으로 본 장면을 묘사하여 글로 덧붙였다.


'포르투 와인이 독하고 단 이유는, 이 노을이 나타나는 짧은 순간에 더 극적으로 구경할 수 있게 하려고'


지금 보면 '나 도대체 뭔 소리한 거야ㅋ'라고 생각되기도 한다. 하지만 저 묘사한 글을 보고 그때의 내가 느꼈을 큰 감동이, 지금도 느껴진다.


요세미티 국립공원


사소한 공감을 이끌기 위해 사소한 관찰을 하라고 이유미 카피라이터는 이야기한다.


어떻게 이걸 실천해보지 하고 예전 미국 서부 여행에서 찍었던 사진 하나를 꺼내보았다. 이 사진을 찍을 땐, 뭔가 구도가 괜찮아서 찍었던 기억이 있다. 지금 혼자 관찰해보니, 아이가 던진 돌로 물의 파장이 전경을 비추는 거울 같은 모습을 곧 해칠 것만 같다. 그런데도 평온하다. 따뜻해 보이면서도 싱그러워 보인다. 저 멀리 깎여서 하얘져버린 돌산의 한쪽도 뭔가 손을 데면 따뜻한 온기가 느껴질 것만 같다. 저 흰색 모자를 쓴 남성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저때 분명히 쌀쌀했는데 반팔만 입고 있는 걸 보면 추울 것 같다.


성수동 띵굴 시장


성수동 성수연방을 처음 놀러 갔을 때 에코백을 줄 테니 구경하고 가라는 호객행위에 냅다 방문했던 띵굴 시장의 한 켠 모습이다. 저 멀리 걸려있는 채는 마늘용인가 아니면 과일? 은색 식기들이 빛을 받아서 그런지 뭔가 깊숙이 빨려 들어갈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원목 테이블 때문인지 아니면 저 다홍색 벽돌 때문인지 바코드 스티커가 붙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반 가정집에 온 것 같다. 유리컵들은 저마다 높이도 크기도 달라서 유리막대로 살짝 치면 저마다 소리도 다를 것 같다.


참 별거 아닌 사진인데, 그땐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은 생각을 지금에서야 하고 있다.


처음엔 이게 무슨 짓인가 싶었는데, 이 활동이 만약 평소에도 생활화되어 발현되면 뭔가 느끼는 바가 다를 것 같다. 나는 출퇴근 시간에 그냥 스마트폰을 보거나 땅을 보고 걷는데, 문득 다른 사람들은 출퇴근할 때 어떤 것을 보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역시 스마트폰이 문제야.




어떻게 관찰해야 하는가

남들을, 나와는 다른 모든 것들을. 관찰, 그리고 관찰하자.


이유미 카피라이터는 잡지를 보라고 추천해주었다. '아 이런 정보가 있구나~'라는 식의 정보 이해에 그치지 말고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은 무엇이지'까지도 고민해보라며 추천한다. 그러면서 3가지 방법을 제안했다.


관찰 잘하는 방법

아이들에게 설명하듯 글 쓰기

스마트폰 멀리하기

경험과 공감을 수시로 메모하기


역시 하나도 쉬운 일이 없다.


오스트리아 알 타우시 에어비엔비 호스트의 작업공간


오스트리아 여행할 때 하루 묵었던 호스트의 집은 100년이 넘은 목재 건물이었다. 그중 아래층은 우리가 쓰고 위층은 호스트가 썼는데, 다음날 아침 체코로 넘어가기 전 인사를 건네기 위해 위층 문을 두드렸다. 호스트는 자신의 작업공간을 구경시켜주며 마지막 차 한 잔을 함께 하자고 했다.


작업공간은 그 호스트가 어떤 사람인지 너무 잘 보여주고 있었다. 사진을 찍고 그림을 그리는 예술가답게 사진집과 미술도구가 널브러져 있었고, 작업에 몰두하는 시간이 많아 소파에서 잠이 드는지 쿠션과 담요가 소파에 서로 색과 깔이 안 맞는 채로 방치되어있었다. 또 찻 주전자들이 작업공간 곳곳에서 발견되는 것을 보고 차 마시는 것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그 짧은 사이에 나는 관찰한 것이다.


만약 담요 카피를 쓴다면, 어떤 소파에서 잠이 들더라도 자연스러운 담요 라고 쓰겠다. 소파에서 잠이 들어 손님이 방문했을 때 담요를 치우지 못했을 수도 있으니까.


만약 찻 주전자 카피를 쓴다면, 예쁘다고 여러 개 사지 마세요 설거지가 쉬운 한 개로 오래 쓰세요 라고 쓰겠다. 호스트는 매 번 씻기 어려운 찻 주전자를 몰아서 설거지한다고 했다. 그럼 아예 설거지하기 쉬운 찻 주전자 한 개가 더 좋지 않을까.


아직까지도 카피 쓰는 일 참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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