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명의는 우리 명의 일뿐

실제로 우리집 주인은 바로 아들이었다.

아들이 태어나면서 우리는 공간에 대해 생각했다. 처음에는 아들에게 필요한 공간이란 자신의 침대와 잠시 누울 역류방지 쿠션과 바운서가 전부였다. 장난감이라곤 모빌과 딸랑이가 전부였다. 그 외는 우리의 공간이었다.


우리의 첫 집은 방 2개짜리 피스텔이었다. 아들이 태어나고, 코로나가 심해지자, 외출하는 게 겁이 났다. 그래서 놀이터가 있는 아파트로 가고 싶어 졌다. 은행의 힘을 빌려 놀이터가 있는 작은 아파트로 이사를 갔다. 방이 2개인 곳에서 방이 3개인 곳으로 이사를 가자, 우리는 침실, 아들의 방, 우리의 취미방으로 사용하기로 했다.


아들이 뒤집기를 하고, 기어 다니지 못하고 버둥거리기만 할 때는 거실에서는 단순히 폴더 매트 하나, 침실에는 자신의 아기침대만이 아들의 공간이었다. 아들의 방에는 단지 아들의 옷과 붕붕카만 있을 뿐, 나머지는 우리의 공간이었다. 하지만 기어 다니고, 걸음마 보조기를 타기 시작하자, 들은 땅따먹기 하듯이 자신의 영역을 넓혀가기 시작했다.


아들이 배로 기어 다니기 시작하자, 매트를 탈출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배가 차가워지고, 기어 다니다가 머리를 바닥에 받기도 했다. 그러자 하나였던 폴더 매트는 점차 늘어나서 거실을 가득 채웠다. 그 위로는 아들의 장난감들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장난감 정리함 하나였는데, 책 정리함, 볼풀장, 스프링카로 하나씩 늘어났다. 그렇게 거실은 1인용 리클라이너 소파를 제외하고는 아들의 영역이 되어 갔다. 신랑은 1인용 리클라이너 소파를 사수했다.


"그래도 여기 우리 소파가 있어!!"


하지만 아들이 걸음마를 시작하자 그 소파마저도 아들의 장난감이 되었다. 기어 올라가고 자리에 앉아서 자신이 주인인 마냥 우리를 내려다보곤 했다. 그렇게 거실 전체는 아들의 영역이 되었다. 


아들은 어느 정도 잘 기어 다니자, 거실에서 통로를 지나 자신의 방을 가기 시작했다. 걸음마 보조기를 끌고 다니기 시작하자, 본격적으로 통로와 자신의 방을 휘젓고 다니기 시작했다. 걸음마보조기를 끌고 자신의 방으로 가서 주차해놓고 자신의 붕붕카를 끌고 나왔다. 그러다가 맨바닥에 아들이 자주 넘어지자, 결국 우리는 통로와 아들의 방 전체에 퍼즐매트를 깔게 되었다. 그렇게 통로, 아들의 방이 아들의 영역이 되었다.


아들이 뒤집고 잡고 일어서기 시작하자, 더 이상 아기침대에서 잘 수 없었다. 우리는 우리의 침대 옆에 폴더 매트와 범퍼가드를 이용해서 아들의 잘 자리를 마련했다. 아기 침대보다 넓어진 자신의 잠자리가 만족스러웠는지 뒹굴면서 자기 시작했다. 우리도 침대 옆 범퍼가드에서 자는 아들을 보면서 좋아했다.


아들이 다리에 힘이 생기면서 범퍼가드를 밟고 우리의 침대로 올라오고 싶어 했고, 침대로 올라오려고 안간힘을 쓰면서 넘어지고 부딪히기 시작했다. 그래서 침대 위로 올려놓으면 내려가려고 하고 버둥대다가 떨어지기도 했다. 신랑과 나는 아들을 못 올라오게 하기도 힘들고 올려놓으면 떨어지는 게 순간이라, 결심했다.


침대 프레임을 치우고 매트리스만 깔고 자기로 했다. 어느 순간부터 아들은 자신의 잠자리에서 점프를 하기 시작했다. 폴더 매트를 깔고 그 위에 이불을 깔긴 했지만, 걱정이 돼서 결국 매트리스를 아들에게 양보했다. 그럼에도 아들은 침대 매트리스에서 시작해서 뒹굴다가 결국 맨바닥까지 나와서 머리를 박았다, 결국 그 인근으로 기능성 매트리스를 다 깔았다. 그렇게 침실도 아들의 영역이 되었다,


이렇게 방을 바꾸다 보니, 침대 프레임, 아기침대, 아들의 모빌 등, 쓰지 않는 물건들이 남은 한 방을 가득 채우면서, 남은 하나의 방은 물건의 방이 되었다.


결국 침실, 거실, 아들의 방은 아들의 영역이 되었고, 우리의 방은 없었다. 아들이 침실 체를 뒹굴면서 잠이 들면, 우리는 기생충처럼 기어 나와서 거실로 나와 아들의 폴더 매트 위에 누워, 자유를 만끽한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은행 간판을 보며 누가 실제 주인인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명의는 우리 명의 일뿐, 항상 현관만 우리 꺼고 은행이 집주인이라고 우스갯소리를 하곤 했다. 집을 둘러보니 그게 아니었다.


실제로 우리 집주인은 바로 아들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신랑의 우와~한 교육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