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배에 올라타 선장이 되는 일
30대 여성의 리더성장기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까지 조금 오래 걸렸다. 나에게 저말은 곧, 좋은 사람들도 한자리 꿰차면 약속이나 한 듯 전혀 다른 사람이 돼버리는 말과 똑같았으니까.
흘리고 말았던 저 말의 값어치를 요새 단단히 깨닫는 중이다. 누구한테? 놀랍게도 나한테.
6개월 전의 나라면 절대 생각지 못할 일들이 요새 마구 일어나는 중이다. 2인자 역할에 심취해 뒤에서 핸들링하는 게 익숙했던 나는 싫어하던 마이크 잡을 일이 너무 많다. 남들 앞에 서야 하는 이 상황들이, 모두 내 입만 바라보는 상황들이 , 더러는 헛웃음으로, 때론 그 '주인공' 역할에 심취해보려 애쓴다.
으악. 그러니까 나는 조그만 배에 올라타 얼결에 선장이 됐다. 그러니까 이 말은, 퇴근 후 친구들을 만나 쟈근쟈근 보스를 씹으며 하루를 상쾌하게 마무리하고 싶은데, 그 쟈근쟈근이 내가 됐다는 말이기도 하다.
나의 가장 최근 이력은 국비사업을 기획 운영한 중간관리자, 팀장이다. 크고 작은 세부사업들을 기획하고 협업구조를 만들고, 성과를 짜내고 파이를 키워 장기 국비사업을 따내기 위해 이렇게 저렇게 애써왔다. 결과는 하늘의 뜻이라지만 그렇게 근 2년간 나를 갈아가며 했던 프로젝트가 올초에 허무하게 끝났다.
어쨌든. 그렇게 조직을 떠났고 다음 스텝을 고민하던 중 솔깃한 제안을 받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두 번의 티타임이 면접이었나 싶기도 한데. 요새 근황과 더불어 센터에서의 역할과 어떤 일에 즐거움을 느끼는지, 무얼 하고 싶은지를 물었고. 오랜만의 연락에 기꺼이 즐겁게 주고받은 이야기들이 일의 방향성과 가치에 대한 결을 확인했던 자리였다.
국비사업인데 구조가 그전에 하던 일 대비 심플하고, 위에 간섭하는 어르신들이 일단 없으니 배가 산으로 갈 일이 없다는 것. 팀을 알아서 구성할 수 있고 기한이 있는 프로젝트라는 게 좋았다. 무엇보다 책임과 권한이 온전히 쥐어졌다는 게.
듣자마자 솔깃하긴 했다. 그간 중간관리자를 하며 느낀 답답증들이 많았고. 그중 가장 컸던 것들은 소위 어르신들이 맥락 없이 해 집어 놓는 상황과 사업 이해가 없던 결정권자들로 인해 번번이 벽에 부딪혀야 했던 상황에서의 무력감들이었다.
해봄직하단 판단과 함께, 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동시에 들었다.
근데 잘 해내지 못하면 어쩌지?
불쑥 얼굴을 내민 불안감이 솔깃했던 마음을 자꾸 눌러댔다.
"지역에 이만한 적임자는 없어요. 즐겁게 맡아서 해봤으면 해요."
"제가 맡았을 때 걱정되는 부분이나 제가 더 알아야 할 내용들이 있을까요?"
나는 두어번 그리 물었고, 새로이 시작하는 그 배에 조심스레 올라탔다.
사무국이 채 꾸려지기 전, 전국단위 회의에서 또 한 번 느낀 감정을 통해 이 멋모를 불안의 정체를 깨달았다. 다수의 책임자들이 짐작처럼 나보다는 족히 열 살은 많은 이들이었다.
나 역시 십년넘게 경력을 쌓았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여물지 않았다는 게 들통나면 어쩌지'
'책임자가 되기엔 아직 어린가'
나도 모르게 이상한 잣대를 들이대며 나를 판단하고 있었다.
앞으로 나아갈 때 가장 큰 훼방꾼은, 실로 나다.
일단 해보지 뭐.
이렇게 반걸음 내딛는데 가장 큰 장애물 역시 나였다. 엄격한 자기 검열을 내려놓지 않으면 기회도 그냥 흘러간다.
어쨌든 배에 올라탔다. 사무국에 출근하기 전 날, 이 일에 적임자가 왜 나인지,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지 쓰고 또 썼다. 나는 나를 설득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일장이 되고 나서 가장 힘든 건, 뭐다?
내가 책임자가 되고 나서 초반 가장 힘들었던 건 탓할 남이 없다는 거다. 일이 안 풀리면 보스 탓이라도 해야 하는데. 그게 나네? 조바심이 느껴질 때마다 얼마나 내달렸는지. 사무국이 차려진지 두 달쯤 됐을 때는 속도전에 실패해 하루하루 동료들이 피가 말라했다.
행사치고 또 행사고. 저 연차 동료들은 일의 경중이나 볼륨과 상관없이 모든 일들을 같은 위계에서 바라봤다.
나는 나대로, 생각만큼 움직이지 않는 동료들 탓을 하며, 하루하루 버티듯 일을 쳐냈다.
지금이야 웃으며 그 험난했던 시절의 극복기를 읊을 수 있지만 그땐 꽤나 심각했다.
대외협력을 하고(이렇게 쓰니 그럴싸하다만, 실은 영업이다. 우리 사업을 알리고 협력 지점을 찾으러 발품을 팔고, 누가 봐도 못 알아먹었음이라고 써진 이들을 대상으로, 침묵인 그곳에서 꿋꿋이 말을 하는 게 쉽지 않았다) 사무실로 복귀하면,
다시 실무자 모드로 일을 쳐내야 했다. 보스에 의한 의사결정 구조는 내가 가장 꺼려하고 싫어했던 방식이라 동료들에게 자율성을 열어뒀지만 그걸 또 어려워해 결국엔 다 내 몫이 됐다.
자리가 바뀌고 가장 힘들었던 건, 외부 메신저가 모두 나라는 거였다. 표정 없는 기관의 중년 실무자들을 서른 명씩 앉혀두고 창과 방패처럼 사업을 설명하는 일, 백여 명의 사람들 앞에서 무대에 올라 능숙해 보이려 애쓰는 일 그런 일들이 좀처럼 적응이 안 됐다.
남들 앞에 서는 일은 쉽지 않다. 긴장이 들통날까, 말이 또 빨라질까, 얼굴에 불쾌함이 묻어날까, 신경 써야 할게 한두 개가 아니었다.
"나는 이렇게 하루에 두건씩 대규모 회의 쳐내면 진 빠지고 힘든데, 보스는 어떻게 했을까? 하루에 세네 건도 거뜬했잖아.?"
"그거야 옛날 센(보스)은 실무를 전혀 안 했고. 우리가 다 준비하면 와서 읽고 참여하면 됐으니까요."
그는 참 좋았겠다. 알아서 챙겨주던 내가 있어서... 나한텐 나뿐이라 내가 곧 보스고 내가 팀장이었다.
반 바퀴를 돈 지금, 우리 배는 순항하고 있을까?
선장은 일단 배를 탈출하지는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일단 안도. 선장의 고군분투기는 앞으로 조금씩 기록해둬야지.
#프롤로그
한 번은, 정말 힘들었던 회의가 끝나고 회의 사진을 보는데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나를 제외하고는 전부 4,50대 남자 중간관리자들이었다.
실무진 미팅을 하면 성비가 엇비슷한데 팀장급 회의로 넘어가면 성비 불균형이 심각하다. 책임자 회의를 하면 같은 상황이 되풀이된다.
그 많은 실무진은 다 어디로 갔을까.
작은 배에 올라탔지만, 물살에도 항해를 멈출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