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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여름의수박 Apr 01. 2022

경험이 정답은 아닐진대

모든 것을 경험주의로 해석할 때 생기는 오류

여럿이 함께 하는 일에서 가장 어려운 게, "내 경험이 전부라고 여기는 사람"이 아닐까 싶다.


'내가 해봐서 아는데...'도 무섭지만, '내가 모르면 별로인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의외로 많다. 위로 갈수록 정말 많다.  어르신들은 세상이 바뀌고 있다는 걸 언제쯤 머리로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생각나는 대로 훅 뱉어버리는 것도 권력이겠지 싶은 순간들 목도하면,  기성세대가 된 나 역시 마음이 무거워진다.



여러 기관들과 협업하던 프로트를 진행할 때였다. 1차 실무진 회의에서 각자 기관에서 진행하는 사업들을 공유하고, 유사사업은 묶어서 할 수 있는 것들을 협의하는 자리였다. 그간 내부에서 나름의 고충을 겪었던 실무자들은 가감 없이 지금의 고민을 토로하며, 사업 시너지를 확산하는 방법들을 나눴다.


가장 신나는 회의는 아이디어 회의. 말도 안 되는 아이템이란 없다. 생각나는 대로 던져도 보고,  혼자 감당하기엔 어려웠던 아이템들도 쏟아져 나왔다. 핑퐁 하듯 서로 말을 보태고, 피드백을 하니 예정된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당장이라도 일이 될 같은 분위기에 조금은 들떴고,  뭐라도 될 거 같아 신도 났다.


"우리 자주 봐야겠어요. 근래 들어 가장 신나네요. 역시 말 통하는 사람하고 이야길 해야 하나 봐요."  


그 말에 모두들 어찌나 웃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정확히 다음번 회의에서 분위기는 급반전됐다.  


실무진 회의에서 정리된 안건을 모은 다음, 기관의 결정권자들이 참여한 회의가 시작됐고, 여기가 회의장인지 강연회인지 가늠할 수 없게 긴- 어르신들의 말이 이어졌다.  하나둘 고개를 떨구기 시작하면, 눈치채고 그만해도 될 텐데 역시 남 눈치 안 보는 것도 일등이다. 한 가지만 하는 사람은 없으니까.


"그래서 이걸 해보겠다는 거예요? 다들 진짜 그렇게 생각한다고?" (뭐지, 채근당하는 이 분위기...?)


"내가 해봐서 아는데, 이거 안돼. 일단 그림이 안 나오잖아. 누가 오겠어?" (도대체 언제 적 해보셨다는 거죠..?)


"요즘 애들은 이런 거 좋아할지 몰라도, 우리 세대는 다르지. 나도 모르는데 어느 누가 알겠어요? 대중성 있는 걸로 갔으면 좋겠는데...." (애초에 타깃이 노년층이 아닙니다...)


이건 뭐 찬물을 끼얹는 수준이 아니라,  심사위원이라도 된냥 평가를 쏟아냈다.


그리고 나는 봤지. 저 기관 실무자의 떨리는 눈썹을. 듣는 나조차 화끈거리는데 담당자는 오죽할까 싶었다.


"본부장님, 그럼 생각해 오신 것 있으세요?"


그렇게 또 20분, 나 홀로 열띤 강연을 시작했고, 이야기  끝에는 "세대 구분 없이 다 참여할 수 있는 그런 거, 우리한텐 그런 게 필요해요."라고 하나마나한 소리를 보탰다.


물론 안다. 경험 좋지. 해본 경험치들이 많으면 실패할 확률도 낮고, 멘땅에 헤딩할 필요도 없고. 아는 길로만 가다 보면 넘어지지 않고 안정적으로 갈 순 있지만, 딱 거기까지 아닌가.


늘 하던 방식대로 되풀이할 거면, 바쁜 시간에 왜 다들 모여서 머리를 맞댔느냔 말이다.


싸하게 식은 분위기에, 다들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하지 말란 게 아니라 이왕 하면 잘하자고 하는 말이지요. 내가 너무 나 혼자만 말한 건 모르겠네." 본부장은 그렇게 또 마이크를 붙잡고 말을 시작했다.


그 프로젝트는 결국 흐지부지 됐다. 기관 연계사업은 사공이 너무 많아 자꾸만 산으로 가다가, 다시 돌아왔다가를 반복하다 결국엔 다음 분기를 기약하며 공감대 형성으로 끝이 났다.



언젠가 읽은 적이 있다. 나이가 들수록  말은 아끼고 귀를 열어야 한다고, 세상이 바뀐지도 모르고 혼자만의 세상에 갇혀있다 보면 종국에는 도태될 수밖에 없다고.  경험도 좋고, 충고도 좋고, 제언도 좋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라고 생각하진 말자.   


내가 해봐서 아는데,

내가 이 바닥에서 몇 년인데, 내가 모르는 거 보면 별로 같은데?

이런 말도 안 되는 이유는 진짜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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