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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여름의수박 Dec 16. 2018

왜! 회사들은 솔직하지 못할까?

무슨 일 하는지도 모르는데 입사지원을 어찌 하리오

서류합격 통보를 받고, 면접을 보러 갔다. 집에서 멀지 않은 곳이라 나는 차분히 걸어가려고 했으나, 오랜만의 면접에 너무 떨린 나머지 얼마나 혼잣말을 하며 갔는지 모른다. 면접시간이 가까워오자 면접자들이 모여들었다. 어림잡아봐도 열명은 거뜬했다. 와우. 1대 1 면접일 거라 생각했는데, 3명이서 함께 보는 면접이다.


내가 지원한 분야는 <홍보팀>이었다. 나는 신문사 취재기자와 문화기획자를 거쳤기에 홍보팀의 업무는 자신했다. 비교적 캐주얼한 분위기에서 면접은 시작됐다. 자기소개를 하고, 할 수 있는 업무범위나 컴퓨터 활용능력 등을 물어봤다. 비교적 큰 기업에 속한 곳이었는데, 디자이너가 따로 없는지 기본적인 디자인 업무도 겸해야 한다며 포토샵 사용 여부와 영상 촬영 가능 여부를 체크했다.


'여기서도 멀티를 원하는구나...' 신입이 아닌 이상에야 최선을 다한다는 말보다는, 내가 할 수 있는 업무의 선을 솔직히 말했다. 디자인 툴은 물론 숙지하고 있지만, 이전 회사에서는 디자이너가 별도로 있었기에 디자인을 본격적으로 해본 경험은 없으며, 영상 촬영 역시 대학교 때 다뤄본 것이 전부라고 답했다. 소셜 홍보가 주 업무라면 내가 적임자는 아니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떨어지고 보니 뒷맛이 씁쓸하긴 했다.


탈락의 고배를 마시고, 두 번째 지원은 더 심사숙고했다. 두 번째 회사는 지역을 기반으로 한 여행 콘텐츠 O2O 서비스를 준비 중인 곳이었다. O2O 서비스는 생소하긴 했지만, 콘텐츠 기획자를 구하고 있었고 스타트업 회사라서 그런지 직원 복지가 좋았다. 서류를 통과하고 난 후 회사 대표에게 서면질의서가 도착했다. 면접 전에 서면면접이라니... 당황하긴 했지만, 심도 있는 서면질의서를 받아보니 내가 입사하게 된다면 어떤 업무를 맡게 될지 가늠할 수 있었고, 나는 답변을 위해 짧은 시간이지만 열심히  O2O 서비스를 공부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콘텐츠 기획 분야 업무를 어필했다. 서면답변이 마음에 들었는지, 나는 다행히 면담하기 위해 회사를 방문했다.


그리고 몹시 당황스러운 상황을 겪었다. 면담 약속을 잡았던 대표는 외부 일정으로 부재중이었고(나중에 들은 말로는 약속시간을 착각했다고 한다...), 실무자와 한 시간 가까이 이야기를 나눴는데 공고문과 서면질의에서 했던 내용들이 주 업무가 아니라 이곳 역시 소셜 홍보가 핵심이었다. 당황스러운 마음에, 공고문에서 확인했던 내용과 서면질의받았던 부분들을 설명했더니 실무자 역시 당황을... 소셜 홍보를 안 해본 건 아니지만 내 주력분야가 아니었기에 몹시 실망스러웠고, 콘텐츠 기획이 아니라면 입사하고 싶지 않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렇게 두 번째 회사와도 인연이 닿지 않았다.


왜, 회사들은 솔직하지 못할까.


왜! 애매모호하게 취업 공고문을 내는 걸까?

두루 다 잘하길 바라는 마음은 알겠는데, 정확히 업무를 기재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 퉁쳐서 한마디로 홍보마케팅이라니, 기획이라니. 입사해서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도 모른 채 회사에 지원하는 게 말이 되는 것인가?

취업사이트를 살펴보며 정말 속이 상했다. 지원분야에 대한 설명이 정확히 명시된 곳을 찾기 어려웠고, 면접 봤던 곳처럼 공고문에 올라온 내용과는 상이한 업무를 던져주는 곳도 있었다. 이건 회사와 지원자 모두에게 시간낭비, 에너지 낭비 아닌가.  


이직은 역시 어려웠다. 무작정 열심히 한다고 될 일도 아니고, 숙련자로서 취업을 하는 것이기에 나는 내가 잘할 수 있는 분야에서 일을 하고 싶었다. 조바심 내지 말아야지, 마인드 컨트롤!!! 그나저나 왜 이렇게 일할 곳이 없어? 제주의 젊은이들은 모두 어디에서 일을 한단 말인가. 너네, 도대체 뭐 먹고 사니?! 연봉으로 보자면 신입과 경력의 경계가 모호했다. 이럴 수가. 나는 정말 충격받았다. 가만, 지금 최저임금이 얼마지? 응?! 그런데 월급은 이게 전부야? 한숨이 절로 나왔다.


나중에서야 들은 이야기지만, 제주의 젊은이들은 주로 자영업이나 가업을 이어받는다고 했다. 육지에 비해 노동시장이 협소하고, 워낙 박봉이기에 취업보다는 알아서 제 살길을 찾아가는 경우가 더 많다고 한다. 몇 년 새 폭발적으로 제주 땅값이 오른 것도 한몫 단단히 했다. 취업이 안돼 가게를 차려줬다거나, 일을 힘들어하니 한라봉 농사를 같이 짓는다거나, 그것도 아니면 원룸을 지어 임대업을... 뭐 이런 류의 나와 너무 먼 이야기들을 많이 들었다. 일개미로 태어난 나는 다시 열심히 취업사이트를 뒤졌고. 마침내 찾고 말았다. 연봉이 기재돼있고, 지원분야가 비교적 상세히 안내돼 있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컨설턴트라니, 조금 생소해 보였지만 세부과업의 성질을 따져볼 때 승산 있어 보였다.


이전 회사에서 워낙 혹독하게 일을 한 탓인지, 나는 홍보마케팅이나 문화 기획운영, 브랜딩, 콘텐츠 제작 등 업무에 숙련돼 있었다. 경력기술서에 꼼꼼하게 담당했던 과업과 과업 안에서의 내 역할 등을 기재했다. 특히 대형 프로젝트일수록 내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명시하는 것이 중요했다. 서류를 내고 얼마 후, 면접 통보 연락을 받았다.


회사가 입주해 있는 건물은, 그러니까 제주에 내려온 지 얼마 안 됐을 때 지나가다 본 적이 있었다.

'와, 여기 되게 좋아 보이네. 이런 데서 일하면 일할 맛 나겠는데?' 했던, 바로 그 건물. 입주기업이 함께 쓰는 실내 문화공간에서 대표와 일대일 면접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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