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로 순천여행이라니, 그게 뭔데 대체?
순천 덕질하다 이사까지 온 문화기획자
이번 초여름부터 뻔질나게 순천을 드나들었다. 어딜 가든 푸릇푸릇하고, 사람들이 따숩고, 파면 팔수록 여기에 짙게 배인 이야기들이 좋은 거다.
에? 순천만습지를 지키기 위해, 천연기념물인 흑두루미가 다칠까봐 전봇대 282개를 다 뽑았다고? 이게 단순히 관광지가 아니잖아.
윤슬 반짝이는 저 동천이 몇 년 전만 해도 골치 아픈 쓰레기더미 천변이었다고? 근데 지금 1 급수 천이 된 거야?
도로를 과감히 없애고, 그 자리에 시민들이 자연의 품에 안겨있는 5만 평 광장을 만들었다는 거지?
나는 모든 게 흥미로웠다.
순천시민들 눈엔 그저 그런 일상적인 이야기가 됐지만 나에겐 이 모든 이야깃거리들이 공간의 매력을 더 배가시켰다.
본업이 문화기획자인지라, 이런 로컬이야기들이 사람들에게 더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고. 로컬을 사람들이 인식할 때, 꽃축제 기간이 아니라도 올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처음엔 일주일, 그러다 매주 순천을 오가는 나를 보며. 진짜 여기 살아보고 싶다.
살고 싶어. 왜 안돼?
나는 때로 무모하고 용감하다. 안될게 뭐 있단 말인가.
서른에 일이 년만 살아보자고 제주에 내려가 내리 십 년을 살다 온 내가 아니던가.
아. 마흔의 시작은 순천이구나. 고민은 짧게.
순천을 덕질하다 기어이 이사를 왔다. 하하.
내려와서 보니 다 좋다. 가장 좋은 가을볕이 있어 그런지 어딜 가든 환대다.
내가 좋아하는 순천의 장면들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자연에 폭 안겨있는 모습들, 사람들의 일상들. 순천은 정원도시답게 어딜 가든 어디서든 식물을 키우는 사람이 참 많다.
특히 정원을 다른 이들과 공유하기 위해 대문밖정원을 만들기도 하고, 개방정원을 선정해 민간정원을 둘러볼 수 있게도 했다.
이쯤 되면 정말 식물에 진심이다. 일상에서 식물을 키우는 게 워낙 당연한 일인 곳이다.
자연과 공존하는 이 도시의 매력을 내가 잘하는 방식으로 구현하고 싶다.
몇 달간 찍은 사진들과 다이어리 기록을 펼쳐놓고 조각을 맞춰보기 시작했다. 아. 사람들의 일상에 들어온 자연의 가장 작은 형태 식물. 식물들이 살기 좋은 도시 순천.
식물에서 정원으로, 그리고 자연으로 확대되는 이 도시의 정서와 풍경을 담아 경험할 수 있게 해 주자. 슬로건은 그렇게 <순천에서 자연을 만나는 기쁨>으로 정했다.
이름이 생기니 힘을 받는다. 누구랑 이 여행을 할 것인가. 나는 식물과 자연에 관심 있는 이들이 로컬사람들과 섞여 일상을 경험하길 바랐다.
"식물을 키운다는 건, 집안에 자연을 들이는 일이다"
식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순천을 색다르게 보면 좋겠는데? 식집사들을 모아보자.
그렇게 식물집사 커뮤니티 여행인 <식물로 순천여행>이 탄생했다.
안다. 대상을 너무 좁혀놓으면 참가의 폭이 좁아질 거란 걸 알면서도 밀도 있는 로컬프로그램을 만들어보고 싶었다.
취향 맞는 사람끼리 식물 키우는 일상을 나누고, 집 안팤이 정원으로 가득한 정원마을을 함께 산책하고, 생태계가 공존하는 습지에서 함께 더불어 사는 짱뚱어, 농게, 흑두루미를 탐험하고, 탁 트인 오천그린광장에서 피크닉을 즐긴다.
좋아하는 걸 꽉꽉 채워 넣었다.
따로 또 같이, 우리 프로그램에서 못 가지만 꼭 순천에서 발견했으면 하는 장면(장소)을 담아 스토리카드를 만들고, 여행감흥을 기록할 낱장다이어리도 만들었다.
프로그램을 준비하며 어찌나 신나던지. 지난 한 달간은 매일 밤 열두 시까지 일을 했다.
낮엔 사람들을 만나 프로그램을 소개하고, 홍보발품을 팔고, 밤이 되면 수집한 이야기를 정리하고 구체화했다.
그렇게 준비한 프로그램이 세상에 나온다.
익숙한 도시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몇 달간 낯선지만 설레는 눈으로 구석구석 순천을 돌며 좋았던 장면들을 담았다. 순천을 덕질하다 이사까지 온 문화기획자의 눈에 담긴 순천.
그 길을 많은 이들과 함께 하고 싶다. 준비하며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즐거움에 비하면 사사롭다.
식물로 순천여행이라니,
설레지 않은가?
내일부터 시작인데,
아침마다 핸드폰 열기가 무섭다.
ktx 서울발 매진으로 행사 취소자가 생기고 있기 때문. 하하. 쉽지 않다.
식물로 순천여행, 함께 하실 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