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처음 말레이시아행 비행기에 발을 딛자마자
내가 비행기에서 나는 냄새를 정말로 싫어했었지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인위적인 방향제와 새 플라스틱 냄새 그리고, 애매하게 서늘한 공기와 비좁은 기내가 주는 답답함까지.
거기에 간간히 내 코에 스며들어오는 항공유 냄새는 내 귀밑 침샘을 자극해 금세 날 불쾌하게 만들었다.
비행기를 처음 탄 것은 아니었지만, 동북아시아 이상으로 멀리 여행을 떠나본 기억은 없었기에 6시간 30분이라는 비행시간은 막막하게만 느껴졌다.
모든 항공사가 다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좌석 앞 포켓을 잘 뒤져보면 스티커가 있다.
면세품 팔 때 깨워달라
기내식 때 깨워달라
방해하지 말아 달라
뭐 대충 이런 내용.
나에게 해당되는 스티커를 좌석 앞에 떡하니 붙여놓곤 눈을 감았다.
코로 숨 쉴 때마다 느껴지는 비행기 냄새에 나도 모르게 얼굴이 찌푸려졌다.
아직 탑승이 마무리되지도 않았는데 이걸 앞으로 몇 시간이나 더 참아야 한다니. 머리가 아찔했다.
최대한 입으로 숨을 쉬며 이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날 고립시키려 노력했다.
비행기를 타면 내가 겪는 불편함이 몇 단계를 걸쳐서 오는데,
그중 한 가지가 바로 위에서 언급한 항공유와 비행기에서 나는 인위적인 냄새고,
다음은 바로 ‘이륙’이다.
난 사고가 무서워서 이륙이 싫은 건 아니다.
과거 어느 칼럼을 통해, 비행기 사고가 생길 확률보다 집에 있다가 갑자기 죽을 확률이 18배 높다는 기사를 접한 적이 있어서 그런지. 비행기 사고에 대한 무서움은 가져본 적이 없지만. 이 ‘이륙’은 영 기분 나쁘다.
아니 비행기가 한대에 몇백억은 한다는데 이거 오래된 롤러코스터 마냥 너무 많이 흔들리고 소리 나는 거 아닌가?
덜덜덜 거리는 수준이 예사롭지가 않아서 가끔 창가에 앉게 될 때면 창문 밖으로 보이는 날개를 유심히 보게 된다.
날개가 잘 붙어 있을 수는 있을지. 뭐하나 떨어진 건 없는지.
그리고 이제 막 땅에서 떨어지려고 할 때의 느낌이 너무 끔찍하달까.
분명 이제 막 이륙한 것인데 뭔가 땅에서 날 잡아당기는 느낌이 영 유쾌하지 않다.
그다음 내가 싫어하는 게 몇 가지 더 나오는데,
이륙 이후 구름을 통과할 때의 느껴지는 이전보다 더 큰 흔들림,
그리고 올바른 궤적으로 향하기 위해서 좌회전 혹은 우회전을 할 때 이륙 때와는 또 다른 아찔함이 30여 년째 적응되지 않는다.
깜빡 잠이 든다. 주변의 모든 소리가 들리는 선잠.
얼마나 잠들었을까? 시간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난 비행기에서 40분 이상 잠을 청할 수 없다.
어쩜 그리 비행기는 건조할까. 입안이 쩍쩍 말라 잠에서 깬다.
그렇게 몇 번을 선잠을 자다 깨고 물을 마시고 다시 잠을 청하길 반복하면
어수선했던 기내가 더욱더 시끌시끌해진다.
다음으로 내가 싫어하는 것.
기내식 냄새다.
기내식은 도대체 누가 요리한 걸까. 괜한 불평이 시작된다.
기내식의 냄새는 모든 요리가 다 똑같이 느껴진다. 적어도 나는,
"Chicken or Fish?"
"No thank you very much"
반은 왔다. 물은 너무 마시면 안 된다. 화장실에 걸어가는 것도 나에겐 도전이다.
착륙도 이륙 이상으로 엄청난 굉음과 흔들림과 불편함이 있지만, 몇 분 후면 내린다는 생각에 그 정도는 참을 수 있다.
이때쯤이 되면 목적지에 대한 기대보다, 어디든 땅바닥에 닿는 것 자체가 나에겐 더 중요하다.
그렇게 정신을 차려보니, 정말이나 낯선 땅에서 출입국 신고를 하고, 짐을 찾고 공항을 나서자마자.
엄청나게 뜨거운 열기에 턱 하고 숨이 막혔다. 문자 그대로 숨이 막혔다.
맞다. 나 여기 놀러 온 거 아니지. 앞으로 여기에서 살아야 하는 거였지.
2004년 9월의 저녁.
쿠알라룸프르의 날씨가 32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말레는(은) 눈앞이 캄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