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등을 유지하는 수고로움과 평등한 세상을 만들기 위한 불편함 사이에서.
작가가 어느 날 들은 이 말이, 그의 연구의 시작이 되었다. 살다보면 우리는 종종 착각에 빠진다. ‘특정한’ 사람이 ‘특정한’ 때와 장소에서 차별을 행한다는 생각이다. 누구에게는 ‘결정장애’가 차별적인 단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다른 누구는 장애를 비하할 의도를 가지지 않고도 사용할 수 있다. 한 마디로 ‘선량한 차별’을 행하게 되는 것이다.
이 책은 한 사람이 사회 속에서 살아가며 가지게 되는 정체성과 점유하게 되는 위치가 얼마나 복잡할 수 있는가를 다양한 사례를 들어 설명한다. 성별, 인종, 장애와 비장애, 이성애와 동성애 등 한 사람을 구성하는 요소는 실로 다양하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사람을 한 가지 특성으로만 규정하는 오류에 빠진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은 여성이지만, 여성이면서 동시에 아시안이고, 비장애인이며 이성애자이기도 하다. 때문에 일상의 한 부분에서 차별받는 위치에 있을 수 있으면서도 동시에 특권을 갖는 위치에 놓이기도 하는 것이다. 저자는 이를 ‘다중적 지위’라고 말한다. 2018년 예멘 난민 입국 당시 압도적인 반대를 보였던 여성들은 실은 ‘소수자 집단인 여성으로서가 아닌, 주류 집단인 국민으로서 권력을 행사’(p.41)한 것이다. 그리고 실은 이런 분류와 경계조차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 선량한 차별주의자는 바로 이렇게 탄생한다. 이에 더해 호명 권력과 능력주의, 고정관념 등은 차별을 공정한 것처럼 만들어버려 차별을 지워버린다.
불평등한 사회는 고단하다. 구조 때문에 발생한 문제와 책임을 개인에게 지우고 개인의 탓으로 돌리기 때문이다. 그 끝은 자유의 박탈이다. 평생을 구조에게 맞추기 위해 개인이 수고하며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우리는 이제 선택해야만 한다고 말한다. 불평등한 세상을 유지하기 위한 수고를 계속할 것인가? 평등한 세상을 만드는 불편함을 견딜 것인가? 더불어 이는 단순 개인의 수고로움 문제에 지나지 않는다고도 말한다. 이는 우리가 어떤 사회를 만들어 나갈지, 공동의 지향에 관한 문제인 것이다.
차별받고 싶지 않은 것은 모두의 욕망이다. 차별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은 것 역시 모두의 욕망이다. 선량한 차별주의자들조차 ‘나는 차별을 하지 않아’하고 외치니까. 하지만 앞서 살펴보았던 차별을 지우는 기제 아래, 과연 나의 의도가 담기지 않았다고 차별을 하지 않는 것이라 자신 있게 외칠 수 있을까?
저자는 누구도 남겨두지 않는 세상이 될 수 있도록. 그간 일상적으로 넘어갔던, 하지만 무의식과 비의도의 영역에 있는 ‘선량한 차별’에 관한 문제를 우리 모두가 ‘의식적으로’ 다시 생각해야 함을 강조한다. ‘우리가 생애에 걸쳐 애쓰고 연마해야 할 내용을 ‘차별받지 않기 위한 노력’에서 ‘차별하지 않기 위한 노력’으로 옮기’(p.189)자는 것이다. 배척당할까봐 두려워하고 전전긍긍하던 노력들을 쟤 금 안 밟았어! 라고 외칠 수 있는 노력과 용기로 바꾸자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금’ 역시, 닫힌 공간이 아니라 언제든 변화할 수 있는 열린 공간임을 함께 인식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왜 결정장애라는 말을 쓰셨어요?’
이 질문을 나에게도, 우리 스스로에게도 던져보자. 여기에 더해 ‘정말 ‘왜’ 사용했을까?’를 생각해보아야만 하는 시점이다. 나는 과연 선량한 차별주의자가 아닐 수 있을까.
도서명: 선량한 차별주의자
지은이: 김지혜
출판사: 창비
발행연월: 2019.07.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