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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nontroppo Dec 09. 2019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빛의 속도로 달려도 도달하지 못 할 어떤 그리움에 대하여



오랜만에 삼박자가 맞는 책을 만났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재미있다. ‘내가 이 책을 재미있게 읽고 있구나’란 사실을 제일 앞에 실린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를 절반 즈음 읽다가 깨달았다.      


처음 이 책을 읽고 싶었던 이유는 SF소설이기 때문이었다. SF소설이래! 재미있는 SF소설을 읽은지 도대체 얼마나 되었더라, 나는 여기저기서 파도처럼 밀려오는 홍보문구에 몸을 그대로 내맡겼고, 결국 독서모임 주최 차례가 돌아왔을 때, 이 책을 선정하고야 말았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내가 2019년 가장 빠른 속도로 해치운 책이 되어버렸다.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책을 사서, 제자리에서 책을 전부 읽었는데, 눈물도 좀 흘렸음에도 불구하고 정말 다 읽는 데는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다.     

이 책에 대해서는 두 가지로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콘셉트와 메시지. 그러니까, 나는 SF소설이라는 말에 홀려 이 책을 샀고, 그만큼 신선한 설정이긴 했으나, 그보다도 마음을 더 두드린 이야기 자체는 우리에게, 그리고 나에게 매우 익숙한 말을 하는 것 같았다.     


책 전반적으로 깔려 있는 정서는 귀향과 향수이다. 인물들은 자꾸 무언가를 찾으려 하고, 때문에 떠나려 한다.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의 주인공은 시작부터 자신이 떠나고 없음을 말하고 있고,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의 안나는 가족이 있는 ‘슬렌포니아 행성계’로 떠나며,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는 우주로 떠나 재경 이모를 그리며 그가 갔을 곳을 떠올린다.      


이러한 이야기들의 기저에는 실체 모를 그리움의 근원이 있다. 그런데 알지 못하는 것에 그리움을 가질 수는 없다. 그러니까 이 사람들이 찾고자 하는 것은, 사실 ‘되’찾고자 하는 것들이다. 그래서 이 책 자체가 ‘감정의 물성’에 나온 이모셔널 솔리드와 같다고 생각했다. 그리움을 새로운 방법으로 표현한 어떤 물건. 나 역시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는 사실을 이 책이 일깨워준 것이다. ‘공생 가설’에 나오는 류드밀라의 행성처럼 ‘본 적 없고 느낀 적 없는 무언가’(p.143)에 대한 그리움의 근원을 탐구하는 데 이 책은 나름의 성과를 거두었다. 적어도 나는 매우 감동했기 때문이다.     


여러 편에서 우주를 배경으로 삼은 특성이 눈에 띈다. 이 책을 읽기 전, ‘우주 레시피’라는 책을 읽으며 독서모임에서 인간은 왜 우주를 탐구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함께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모임에서 나름대로 여러 가지 이유를 생각해보았으나 그리고 이 책을 읽고 나서 또 다른 답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인간은 어떠한 연결 없이,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 광활한 공간 속에서, 너무 작은 지구 안에, 그보다 훨씬 작은 우리 스스로에 대한 참을 수 없는 감정을, 우주를 탐구함으로써 해소하려는 것이 아닐까? 적어놓고 보니 답이 아닌 또 다른 질문이 되었지만, 아무튼 이 역시 물성으로의 또 다른 감정 치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내가 눈물을 흘린 때는 ‘공생 가설’을 읽는 도중이었다. 인간성과 윤리성, 도덕성은 어디로부터 왔을까? 하는 물음과 그 상상력보다도, 떠나지 말라고 부탁하니 떠나지 않았던 존재들의 따뜻함에 대해 생각해 본다. 나를 떠나지 말라고 부탁했던 외로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다. 외로움을 거침없이 나눌 수 있는 것과 이를 끝까지 포용하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작가는 이 글을 가장 즐겁게 썼다고 전한다. 나는 이 글이야말로 너무나 판타지라는 생각에 잠시 마음이 싸했다.





도서명: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지은이: 김초엽

출판사: 허블

발행연월: 2019.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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