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담 Aug 28. 2024

3. 익숙한 오늘의 교훈

나는 초보입니다


  몇 해 전, 오래된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대뜸 수화기에 대고 엉엉 울어대길래, 몇 번 다독여준 뒤 이유나 알고 같이 울든지 하자고 했다. 삼십이 넘어 등록한 면허시험장에서 자기보다 한심한 여잔 없을 거라며, 기능시험에서 또 떨어졌단다. 생각보다 사소한 이유이기도 했고 그 대사와 말투가 너무 귀엽고 진지해서 나는 빵 터졌다. 너 아니면 내가 누구에게 얘기하겠냔 말에 그래그래 잘했다고 위로해 줬다.


   S는( 그 친구를 지금부터 S라 하겠다) 수많은 고배 끝에 면허를 따고는 해가 거듭될수록 훌륭한 드라이버가 되어갔다. 집에서 20분 거리의 약속장소마저도 자신이 없다며 연락이 없으면 자신의 남편에게 비상전활 걸어달라고 했던 그녀는 이젠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약속을 잡는 멋진 여성이 되었다(ㅋㅋ). 운전을 못하는 나에게 유일한 동지였던 그 친구마저 핸들을 자유자재로 돌려대는 것을 보니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단 생각이 들었다.


  사실상 우리 집 차는 크기가 큰 SUV이기에 몰기엔 겁이 났다. 언젠가 중고차를 사서 본격적으로 몰고 다녀야지 하기를 몇 년 째다. 하지만 이제 시내연수도 받고 밤마다 동네 한 바퀴씩 돌며 운전연습을 해야겠단 다짐을 했다.


  그래서 오늘은 남편과 한 바퀴 돌아보기로 했다. 새 차를 구매한 지 얼마 안 된 남편은 차를 세 번째 딸(우리 집은 아들만 둘이다)처럼 여기고 있는 중이다. T의 성향인 우리 남편이 차와 이야기를 할 정도니 말 다 했다. 이런 와중에 내가 새 차를 몰고 연습을 하겠다니 이게 웬 말이겠나. 운전연습을 돕겠다는 그에게 나는 신신당부를 했다. 절대로 화를 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 보니 S가 경차를 따로 구매하게 된 이유도 운전연수 중 남편과의 심한 다툼 때문이었다는 말을 했었다. 남편의 새 차로  운전연습을 하다가 윽박지르는 그의 모습에 엉엉 울음이 나왔고 차를 탈 때마다 남편 눈치가 보여서 운전에도 집중을 못 하겠다더라. 나는 속으로 그 남편이 괘씸했다. 아니, 도대체 왜 가르쳐주면서 화를 내는 거야.라는 마음에서였다.


  이런 여러 생각들이 오가며 남편을 조수석에 태웠다. 시작은 훌륭했다. 역시 우리 남편은 자상한 편이야 라는 생각과 함께 흐뭇하게 가던 중에 살짝 옆차선으로 끼어들어 우회전해야 하는 길이 나왔다. 앞 차와의 간격이 너무 좁아 끼어들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대로 멈추었는데 남편은 이러면 뒷 차가 너무 답답하고 피해를 끼치는 거라면서 가라, 멈춰라를 반복하는 것이다. 순간 버럭하던 그는 그렇게 운전하면 뒷 차에게 민폐라며 계속 잔소리를 멈추지 않았다.


  놀랄 일이 벌어졌다. 소녀 같은 내 친구 S의 이야기가 내 이야기가 된 순간이었다. 이 두 뺨에 흐르는 것은 눈물이던가. 믿을 수 없었다. 수 없는 부부싸움에도 눈물을 흘린 적 몇 번 없는 나인데, 또르륵 또르륵 눈물이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졌다. 운전면허 따고 처음 운전해 보는 내게 너무 큰걸 바라는 게 아닌가 너무 서운하면서도, 나도 민폐 안 끼치고 싶다고!!!!! 하며 소리치고 싶었다. 근데 눈물이 나는 이 상황이 너무 웃기고 어이가 없어서 오늘의 운전연습은 이만 하기로 하였다.


  이번에 한 번 더 명확히 깨달은 사실이 있다. 대부분의 평범한 것들. 사랑을 하고 헤어지고, 무언가에 실패하고 다시 일어서고, 아이를 낳아 키우는 보통의 것들은 직접 해보기 전엔 아무것도 모른다. 나라면 저런 사소한 이유로 사랑에 빠지거나 이별을 하지 않을 것 같고, 내가 아이를 키운다면 저렇게는 안하리라 생각도 해보고. 나는 왠지 더 특별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을 하곤 하는데, 늘 보통의 것, 평범한 것들은 그 자체로 이미 수많은 이들이 공통의 경험을 쌓아 평균치가 된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걸 잊고 있었다. 그러니 나도 비슷한 경험을 하고 비슷한 생각을 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 그래서 결국 평범하고 보통의 것이 가장 어렵고 위대한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는 것.


  S가 남편에게 운전연수를 받던 중 싸웠단 이야기를 듣고 나는 그러지 않을 줄 알았다. 하하. 수많은 ‘가족에게 운전을 가르치지도 배우지도 맙시다 “라는 게시글을 봐오고도 나는 왜 피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을까. 어쨌든 오늘 목숨을 걸고 나의 운전을 도와준 남편에겐 고마움을 표한다. 당장 내일부터는 운전학원에 돈을 내고 시내연수를 받아야겠다! 운전연수는 학원에서!



작가의 이전글 2. 놈과의 동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