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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담 Aug 28. 2024

2. 놈과의 동거

건강하게 나이든다는 것


 일생에 세 번 급속도로 노화가 진행된다는 연구결과를 본 적이 있다. 36세, 60세, 80세. 그때 난 사실 큰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이번 여름을 지나오면서 여태껏 몇 번 나 본 적 없던 뾰루지가 얼굴을 점점 뒤덮고, 피부도 점차 탄력을 잃어가더니 이제는 조금만 햇빛을 보아도 기미가 마구 생겼다. 피부로는 고민을 해 본 적이 없었는데 아침마다 거울을 보기가 참 고통스럽다. 내 나이가 이제 몇이더라 생각해 보니 그 36세다. 그래, 그 급변하는 1차 시기에 접어든 게로구나.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절차 따위 무시하며 진행되는 녀석이라니.

  놈(노화)과의 동거가 시작되기 전, 나는 지금까지 나이 듦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 뭐랄까. 주변에 수많은 어른들. 나이가 성숙함을 대변할 수는 없다지만, 각자의 방식대로 혹은 각자가 겪어낸 삶의 무게만큼 중후해진 인생 선배들이 멋져 보였다. 단순히 이런 이유만은 아니었다. 어렸을 때부터 항상 삶에 대한 질문이 끊이질 않았던 난, 나이에 맞지 않게 너무 무거운 고민을 하는 게 아니냐는 핀잔을 줄곧 들었다. 그래서 얼마큼 나이가 들어야 이런 고민들을 하기에 적당할까?라는 의문이 들어서 그런 문제들에 대해 공유하기를 회피하기도 했다. 근데 그 적당한 나이란 게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늘 도달하기가 어렵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빨리’ 나이 들고 싶었고, ‘잘’ 나이 들고 싶었다. 그래서 무거운 주제들에 대해서 툭툭 내던져도 어색하지 않고 싶었다.

  그렇게 나의 바람을 타고 온 온갖 증상들 - 얼굴에 난 잡티와 기미, 주름과 같은 드러나는 변화들- 조차도 마주하기 어렵다는 걸 직면한 나는, 나이 든다는 게 내가 상상한 것만큼 유쾌한 것만은 아니구나 싶었다. 그러면서 과거 인터넷에서 떠돌던 유명 연예인의 인터뷰 기사가 떠올랐다. 가수 이효리 씨가 잡지 화보를 찍는데, 그것이 ‘자연’과 관련된 것이라 어떠한 주름과 잡티도 포토샵의 기술을 빌리지 않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나이 들어가는 것에 대한 자신의 경험과 철학을 이야기했다. 사실 자신도 얼굴에 점점 늘어가는 주름과 푸석해진 피부를 볼 때마다 너무 힘겨웠던 적이 있었다고. 하지만 나의 내면에 집중하고 지금 현재의 나를 사랑하고 존중할 줄 아는 훈련을 계속하다 보니 자연스러움이란 게 가장 아름답다는 걸 깨달았다는 내용이었다. 굉장히 멋졌다. 다른 예능프로그램에서 핸드크림을 얼굴에 철퍼덕 발라버리고는 기초화장을 끝내는 그녀가 참 근사했다.

  물론 그녀와 난 많은 면에서 다르지만, 여성으로서 나이 듦을 바라보는 건강한 태도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진정한 아름다움과, 아름답게 나이 든다는 것에 대해 말이다. 드러나는 변화들이 내가 회피하고 싶은 것들 일지라도 시간이 허락하는 모든 것들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나의 가치를 발견하는 것. 어떤 노화의 징후들도 감히 건들 수 없는 내면의 단단함을 길러내는 것.

  내일 또 난 아침부터 거울 속 놈과의 동거를 직접 목격할 것이다. 피부과에서 좋다는 시술도 받아보고 싶고, 하루아침 사라져 버린 나의 탱탱함과 젊음을 되찾기 위해 온갖 시도를 해보고 싶지만 잘 이겨낼 수 있을 것 같다. 나다움을 잃지 않고, 내면의 아름다움과 힘을 길러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러한 다짐을 하고 있는데, 나의 귀여운 둘째 아들내미가 내게 와 속삭인다. “엄마, 엄마는 예뻐서 참 좋겠다. 나도 엄마처럼 예쁘고 싶다.” 나이스 타이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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