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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성희 Feb 27. 2016

언젠가 우리에게  허락될 것 같았던 시간

아빠와 두 남매의 Bali, Green School 이야기 - 프롤로그

퀄리티 타임(Quality Time)이 필요해

일 년간의 긴 여행을 앞두고 부부는 집 근처의 카페에 마주 앉았다. 카페 그린그린. 카페의 이름이며 분위기가 아이들을 보낼 그린스쿨(Green School)을 닮았다. 가족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이야기했다. 예전에 각자가 꿈꿨던 것, 그리고 지금 부부로서 함께 꿈꾸는 삶을 이야기했다. 아이들이 어떻게 커 왔고, 지금 어떻고, 앞으로 어떻게 성장했으면 하는지를 이야기했다. 낯선 곳에서 보낼 일 년의 시간이 이 모든 대화의 주제를 다 담아낼 수는 없겠지만, 그 결정의 원인이 된, 어쩌면 결과가 될지도 모를 그림들을 그냥 어수선하게 그려 보았다.

  

한 번은 우리 부부를 우리보다 잘 아는 친구가 말했다. 너희 가족에게는 퀄리티 타임(Quality Time)이 필요해. 성경 묵상(Quiet Time)은 부지런히 했지만, 퀄리티 타임은 또 무엇인지. 맞다. 우리는, 조금 질 나쁜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삶의 질이란 상대적인 거다. 부부가 부모로서, 각각의 인격체로서 갖고 있는 가치관이 도전받고 있고, 첫째 아이가 자신의 기호와 주변의 압력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 조금씩 악화될 것이라고 예상되는 시기라면 '상대적으로' 삶의 질이 낮은 것이다. 우리의 상황이 어떠어떠하기 때문에 이러한 삶의 질이 낮다고 말하기는 조심스럽다. 그런 삶이 누구에게나 나쁜 건 아니니까.


친구의 말을 쉽게 풀면 우리에게 조금 긴 여행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예전에 이런 시도를 하지 않은 건 아니다. 6개월에서 일 년 정도 아프리카의 병원에서 봉사 활동을 하거나, 인도나 미얀마의 선교 현장에서 도울 일을 찾기도 했다.  그때 우리가 찾던 그것이 친구가 말한 퀄리티 타임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때의 계획은 하나도 실행에 옮기지 못했지만, 그 이후로 아내는 미래를 암시하듯 이런 날이 우리에게 꼭 올 것만 같다는 말을 되뇌곤 했었다.


우리에게 필요한 퀄리티 타임은 이를테면 이런 거다. 아빠는 조금 이른 듯한 인생 이모작을 준비하는 시간, 엄마는 마음에 품은 포부의 크기만큼 자신의 직업적 전문성과 경험의 지경을 넓힐 준비를 하는 시간, 아이들은 자신을 제대로 성찰하며  정말로 좋아하는 것을 발견할 기회를 누리는 시간이다. 말로는 이렇게  풀어놓을 수 있지만, 정말 그런 기회가 우리에게 주어질까. 그런 시간들이 있기나 한 것일까.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이런 질문들을 던지며 회의하던 와중에 우리는 인도네시아 발리에 있는 흥미로운 학교를 발견했고, 아빠는 회사의 전환기를 틈타 사표를 내 버렸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두 아이들을 그 학교에 입학시키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우리 가족에게 퀄리티 타임(Quality Time)이 필요해.
언젠가 우리에게 그런 시간이 주어질 것 같아.


결국 아내의 예언은 실현되었다. 지금 우리는 발리로 가는 비행기표와 현지의 국제학교인 그린스쿨의 입학허가를 받아 놓았다. 그러나 아내는 여기 남아 계속 일을 하고, 아빠가 아이들 둘을 데리고 가기로 했다. 아내의 예언이 실현되었다는 표현보다, 아내가 예언을 스스로 성취했다는 표현이 사실에 가깝다. 기러기 엄마. 아주 희귀한 사례이다. 그리고 어쩌면 예언의 불완전한 실현이다. 부부가 함께 가기엔 학비와 체류비를 감당하기 어렵다. 이 방법을 놓고 부부는 조금 고민했다. 결국 이 불완전함이 우리 가족에게 가장 적합한 대안일 수도 있다는데 공감했다. 둘 중 한 명이 간다면 아빠가 적임자라는 것은 부부가 완전하게 합의를 이루었다. 그린스쿨은 아빠의 큰 관심사이기도 했고, 가까운 친구들은 딱 아빠 스타일이라고 했다. 아내는 직장에서 전공 분야와 관련된 인증을 준비하고, 영어와 체력의 토대를 다질 시간이 필요했다. 아이들은 그 학교에서 너무나 행복할 것이 확실했다.




익숙한 곳에서의 낯선 발견

인도네시아 발리는 아주 낯선 곳은 아니었다. 약 십 년 전에 친구와 여행사를 창업하면서 네 번 정도 방문했었고, 재작년엔 가족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거기에 어떤 학교가 있나 가벼운 마음으로 검색을 하던 중 그린스쿨(Green School)을 알게 되었다. 홈페이지를 그렇게 꼼꼼하기 읽어보긴 처음이다. 한 줄 한 줄 읽어 내려가는 동안 계속해서 심장이 뛰었다. 우리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싶었던 가치들이  세련된 언어로 정리되어 있었다. 자연, 환경, 지속가능성, 행복한 유년기, 창의성, 공동체, 이런 키워드들이 마치 나의 내면 속 생각과 강력한 신호를 주고받는 느낌이었다. 설립자의 테드(TED ) 강의를 듣고는 가까운 친구 가족과 같이 보기도 했다. 여기구나. 휴양지로서의 발리는 너무나 익숙한 곳이었지만, 그린스쿨은 뜻밖의 발견이었다. 학교의 입학담당관에게 첫 이메일을 보내면서 길고 길었던 입학의 과정이 시작되었고, 입학허가와 비자 신청이 완료되면서 짐 싸는 손이 더욱 부산해졌다.


이참에 단순하기 살기로 하고 집을 비우기로 했다. 이런 계획에 대해 양가 부모님은 이해할 수 없다는 의견이셨다. 죄송하고 마음이 불편했지만, 꾸역꾸역 이삿짐 트럭에서 내린 살림들을 양가로 밀어 넣을  수밖에 없었다. 살림들은 대부분 처가로 보냈고, 남은 것들은 속리산에 카페를 오픈하는 누나와 고향 집으로 보냈다. 그리고 많은 물건들을 폐기했다. 살림에 잉여가 너무 많았다.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불필요해진 것도 많았지만, 이 짐들을 사기 위해 그렇게 직장 생활을 해 왔는지 회의가 밀려왔다.


버리는 게 아니라 보내는 것

살림에는 미련이 남지 않았지만, 동물 식구들을 보내는 일이 쉽지 않았다. 물고기는 처음 데려왔던 시골의 강으로 돌려보내고, 절대 방생해서는  안 되는 청거북 두 마리는 대전의 형에게로 보냈다. 강아지 까미가 문제였다. 처가에서 입양을 거절하셨다. 까미 역시 대전의 형에게로 보냈다. 형님이 매주  시골집에 가기 때문에 까미에게는 일주일에 이틀은 마음껏 뛰어다닐 여건은 되는 셈이다. 짐을 다 빼고 휑해진 집에서 까미도 이별을 짐작한 듯 잔뜩 풀이 죽은 모습이었다. 아이들은 엄마 아빠 못 봐도 괜찮지만 까미 못 보고는 못 산다는데 큰일이다. 데려갈 생각을 잠깐 했지만, 한참 유행하던 메르스 때문에 사람도 입국이 확실하지 못한 판에 반려견을 데려갈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책을 정리하는 일이 가장 힘들었다. 한 권도 버리기 싫었지만 다 짊어지고 살 수는 없었다. 출국 두어 달 전부터 지인들에게 나눠주거나 온라인 서점을 통해 판매를 했다. 꼭 소장하고 싶은 책들의 대부분은 시골로 보냈다. 그렇게 삶의 무게만큼이나 짐스러웠던 책들을 다 정리했다. 그중에 정말 아끼는 책들, 매입하지 않고 반송된 것들 중 버리기 싫어진 책들을 실어 고향집으로 보냈다. 고향 집에 책장이 들어서니 많이 어색하다. 그런데 어떤 책들은 여기가 더 어울린다. 이곳은 시간의 정류장이다. 나의 유년기와 아이들의 유년기가 공존하는, 시간은 멈추고 의미만 존재하는 곳이다. 그 책들이 다른 주인을 찾거나, 다른 종이 제품으로 거듭나는 대신 이곳에서의 동면을 선택했으니, 언젠가 이들을 깨울 날이 있으리라.


짐을 싼 후 휑해진 거실 바닥에서 잠든 아이와 반려견 까미의 모습이 교차한다. 헤어짐을 눈치챘는지 잔뜩 풀이 죽은 모습이다.


7년 반 동안 우리 가족의 발이 되어 주었던 자동차도  떠나보내야 할 시간이다. 이걸 타고 회사와 교회를 오가고,  이곳저곳 여행을 떠났던 시간들은 그 자체로 우리 가족의 소중한 스토리다. 눈 쌓인 산이 아름다웠던 분당으로의 출근길, 차 안에서 라디오를 들으며 야간 근무하는 아내의 퇴근을 기다리던 시간들, 고향 집으로, 모래가 흐르던 내성천으로, 남도의 신비를 간직한 고흥으로, 속초와 경주로 여행하던 시간들을 함께 했던 자동차다. 그러고 보면 가족의 소중한 추억은 이 자동차가 다 갖고 있겠구나. 회사를 그만두고 발리에 입국하기 전까지 충북 보은의 시골집을 아이들과 자주 다녀왔다. 아이들은 시골을 좋아했다. 그리고 까미를 데리고 시골에 가는 것을 세상에서 제일 좋아했다. 아이들도 까미도 시골집에서는 정말 행복했다. 뒷좌석에서 서로 눕겠다고 싸우던 일도, 뒷좌석 위에 올라앉은 까미를 바닥에 내려놓네 마네 엄마와 실랑이를 벌이던 일도, 휴게소에서 사 먹던 떡볶이와 닭꼬치 양념으로 더러워진 시트도 이젠 추억 속으로 스며들어 버렸다.


1년 간의 여행이지만, 좋은 사람들과 헤어지는 건 정말 힘든 일이다. 이전에 다니던 교회의 문을 닫고 어렵게 새로 정착한 교회에서 많은 좋은 분들을 만났다. 만난 지 1년 여 만에 이별이다. 우리가 떠나는 걸 가장 아쉬워해 주신 백, 이 선교사님 부부와 만났다. 멋진 레스토랑에서 맛난 요리를 사 주시며 건강을 빌어 주셨다. 이 목사님 부부, 백 선교사님 부부와의 만남은 그 자체가 축복이었다. 교회 정착한 지 1년을 다 못 채우고 다시 여행을 떠나게 되어 아쉽고 죄송했다. 아이들도 연배가 비슷해 크지 않은 교회에서 좋은 친구로 정말 잘 지내왔었기 때문에 떠나는,  떠나보내는 아쉬움은 클  수밖에 없었다. 그린스쿨에 가는 계획을 적극 지지해 주시고 격려하셨던 목사님은 발리에서 지내는 동안에도 큰 힘을 주셨다.  


병준 형님이 보내 준 케이크로 발리로 떠나기 전 조그마한 파티를 열었다. 우리 가족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며 촛불을 불었다. 출국 전날 아이들은 할머니 손을 따라 세상에서 가장 착해 보이는 미용실에서 머리를 깎았다. 남은 살림을  들여놓은 처가 근처의 미용실이었다.  


채비가 끝났다. 이제 떠날 시간이다.

Green School  ⓒ이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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