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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성희 Mar 23. 2016

인터뷰 하던 날

아빠와 두 남매의 Bali 이야기, Green School 이야기 ③

인터뷰하던 날

우리 아이들은 조건부로 입학 허가를 받았다. 학교에서 별도로 ELL(English Language Learning)이라는 영어 수업을 받아야 한다. 한국에서 아이의 영어 수준을 테스트하기 위해 스카이프를 통해 선생님과 인터뷰를 한 적이 있었다. 하나마나인 인터뷰였다. 첫째 아이는 더듬더듬 자기소개를 겨우 마쳤고, 둘째 아이는 유구무언이었다. 담당 선생님은 학교 오면 다시 만나자고 하고 화상 인터뷰를 마무리했었다.


드디어 학교에서 ELL 선생님과 만나는 날이 왔다. 학교에는 이미 여러 명의 투어팀이 와 있었다. 아이들은 조금 긴장한 것 같다. 약속 시간보다 15분 정도 일찍 도착해서 안내를 받아 ELL 담당인 프랜시스 (Francis Mollet) 선생님과 만났다. 둘째 아이가 먼저 먼저 다른 선생님과 자리에 앉았고, 곧이어 첫째 아이가 프랜시스 선생님과 인터뷰를 했다.


ELL 반 배정을 위한 인터뷰다. ⓒ이성희


부모는 배석할 수 없기에 나는 멀찍이서 아이들의 모습을 지켜보기도 하고, 건물을 둘러보기도 했다. 학교의 심장부(Heart Of the School, HOS)라고 이름 붙은 본관에 들어서니, 그린스쿨에 들어와 있다는 게 비로소 실감이 났다. 사진으로만 보던 그 웅장한 대나무 건물이다. 대나무만으로 3층 건물을 지을 수 있다는 걸 비로소 알았다. 창밖으로 모자이크를 한 듯 태양광 패널들이 흩어져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알랑알랑(Alang Alang)이라고 부르는, 초가지붕을 닮은 전통 지붕의 색깔과 대나무 스탠드 위에 설치된 태양광 패널들이 묘하게 조화를 이룬 모습이다. 예술적이다. 선생님들의 미팅 공간도 살짝 엿봤다. 대나무 조각에 싱크탱크(Think Tank)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태양광 패널들이 마치 예술 작품처럼 보인다. ⓒ이성희


입학 담당 선생님인 팀(Tim)도 만났다. 처음 학교에 지원 절차를 문의했던 때부터 학교에 발을 들여놓기까지 숱하게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연락했던 분이다. 한국어를 조금 하신다. 인상이 참 좋다. 입학 허가를 준비하는 몇 달 동안 정말 많이 도와준 것에 대해 감사를 표했다.


아이들이 인터뷰를 마쳤다. 외국인과 그렇게 오랜 시간을 함께 있어본 적이 없던 아이들이다. 마치고 나서, 프랜시스 선생님의 안내를 따라 다시 학교를 둘러보았다. 선생님은 아이들의 교실과 화장실, 양호실, 음악실, 미술실 등 학교 생활에 필요한 내용들 위주로 상세하게 보여 주었다. 지난번에 둘러봤을 때보다 학교가 훨씬 크게 느껴졌다. 그때 조금 시큰둥하던 아이들이 오늘은 이곳저곳 호기심을 갖고 바라봤다. 이제 본격적으로 학교 생활 시작이다. 많은 어려움과 스트레스가 있겠지만 잘 견뎌내리라 믿는다. 입학할 날만 남았다. 나도 할 일이 많다. 우선 통학을 위한 차편을 알아보는 게 우선 급하다.


아이들은 외줄 그네에 매달려 인터뷰 동안 잔뜩 긴장했던 몸과 마음을 추스렀다. ⓒ이성희


설렘 반, 두려움 반, 오리엔테이션 데이

드디어 오리엔테이션 날이다. 입학식에 해당한다. 전학생인 두 아이들에게는 Green School의 공식적인 첫날이다. 사람들 틈에 끼어 정문에 들어서니 쌀자루를 재활용해서 만든 에코백과 스테인리스 물통, 학교 지도, 그리고 협력 회사에서 후원한 각종 선물들을 한 보따리 안겨 줬다.


약간 어수선하고 정신없었지만, 전체적인 진행과 프로그램은 참신하고 유익했다. 고등학교의 교장(Head of High School)에 해당하는 레슬리Leslie 선생님의 연설과 티셔츠 퍼포먼스는 감동적이었다. 몸집이 좀 큰 선생님이었는데, 아이가 입을만한 작은 티셔츠를 들고 와서는  자기 몸을 꾸역꾸역 티셔츠에 집어넣었다. 옷이 찢어질 듯 아슬아슬한 모습이었지만 결국 옷을 입는 데 성공했다. 그린스쿨이라는 새로운 공동체에, 발리라는 새로운 땅에 적응하는 것이 처음에는 잘 맞지 않는 옷처럼 불편하더라도, 결국 이렇게 옷을 입었지 않나요. 많은 박수가 나왔고, 그 퍼포먼스에 내 마음에도 크게 감동이 밀려왔다.


퍼포먼스가 아닌 생활 그 자체

설립자 존 하디John Hardy의 연설도 만만치 않았다. 마이크 앞에 선 그의 모습은 넝마주이의 차림이었다. 큰 자루를 어깨에 메고, 손에는 끝이 뾰족한 막대기를 하나 들고 있었다. 플라스틱 병 몇 개를 바닥에 쏟아붓더니 막대기로 하나하나 찍어서 자루에 담았다. 처음에는 그냥 퍼포먼스인 줄 알았다. 쓰레기 줍는 일이 이렇게 쉽고, 손에 더러운 걸 묻힐 필요가 없다는 걸 보여 주려는 메시지였다고 생각했다. 나중에야 그건 설립자를 포함해서 학생과 학부모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트래시웍(Trash Walk)의 한 장면이라는 걸 알았다. 일주일에 한 번씩 학교 주변을 다니며 이렇게 쓰레기를 줍는단다.


Green School 설립자 John Hardy의 연설은 내용도 형식도 인상깊었다.  ⓒ이성희


강당(Sangkep)에서의 일정이 끝나고 부모들은 몇 개의 그룹으로 나뉘어 학교의 시설을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다. 부모들은 학교 시설의 이름과 설명, 그리고 두세 가지 질문이 적힌 네 페이지 짜리 종이를 받아 들고, 보물 찾기(Scavenger Hunting)라 이름 붙은 게임에 참여했다. 그룹별로 직접 다니면서 학교의 직원들과 인사를 하고 질문의 답을 채워 나가는 형식이었다. 같은 그룹에 속한 부모들과도 친해질 수 있을 뿐 아니라, 학교에서 생활하는데 꼭 필요한 정보를 익히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앞서 두 번에 걸쳐 학교를 둘러보았지만, 여전히 학교에는 새로운 것 투성이었다. 최신 시설의 새 병원을 보유하고  있는 베가완 파운데이션Begawan Foundation이라는 조류 센터를 지나 중학교 교실과 의사 한 분과 간호사 두 분이 상주하고 있는 학교 의료실을 둘러보았다. 학교의 메인 건물과 교실들이 모여 있는 곳을 지나서 뒤쪽의 숲길을 따라 들어가니 커다란 지붕 아래 퇴비가 쌓여 있는 것이 보였다. 학교에서 나온 음식물쓰레기와 과일 껍질, 대나무 접시에 깔았던 바나나 잎 등이 모이는 곳이다. 미생물을 활용한 숙성 작업을 거쳐 퇴비가 되면 학교 곳곳의 텃밭으로 되돌아간다.


이곳은 퇴비를 생산하는 본연의 기능 외에도, 학생들에게는 배움의 현장을, 지역 주민에게는 일자리를 제공한다. ⓒ이성희


토양과 식물의 뿌리가 어떻게 물을 정화시키는지를 보여주는 수경재배센터도 인상적이었다. 대나무로 제작한 스탠드에 여러 채소가 심겨 있었고, 거기를 통과한 물이 발 밑의 연못으로 흘러들어가는데, 밑을 보니 팔뚝만 한 물고기들이 헤엄치고 있었다. 물고기가 떼 지어 노는 연못도 신기했다. 실제로 요리에 쓰이는 물고기를 기르는 곳이라고 한다.


물의 순환과 정화 과정을 관찰할 수 있는 수경 재배 센터. 채소가 심겨진 상자 텃밭의 밑바닥에는 물고기가 헤엄친다. ⓒ이성희


학교 소개 영상에서도 봤던 소규모 수력 발전 시설도 둘러봤다. 설치된 지 7년이 되었지만 아직 완벽하게 안정화되지 않은 상황이라고 한다. 그래도 학교에서 사용하는 전기의 상당 부분을 여기서 공급하고 있다. 학교가 운영하는 시설들은 단편적인 체험 위주의 환경 교육 시설이 아니었다. 학교 내에서 에너지와 먹거리를 자급하고 순환시키는 구조가 마련되고 운영된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아이들은 교실에서가 아니라 학교에서의 생활을 통해서 자원과 자연을 배려하는 법을 자연스럽게 배워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학교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시설 중 하나인 수력발전기를 두고 설립자는 악몽(nightmare)라 표현했다. 기술적으로 안정화시키기가 너무 힘들었다는 거다.  ⓒ이성희


어른들이 학교 투어를 하는 동안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따로 운영되었다. 첫째 아이는 카카오 열매를 가지고 초콜릿을 만들었고, 둘째 아이는 그림을 그렸다. 학교에서 처음으로 부모와 떨어진 아이들은 말이 통하지 않아도 그 시간을 즐겁게 보낼 수 있었다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점심시간이 되었다. 아이들에게 가장 인기가 많은 메뉴는 단연 사테 아얌Sate Ayam이라고 부르는 닭꼬치구이였다. 음식은 바나나 잎을 바닥에 깐 대나무 바구니에 담겨 있었다. 먹고 남긴 음식과 바나나 잎은 학교 퇴비장으로 가고 대나무 바구니는 다시 사용한다. 아이들은 정문에서 나눠 준 물통에 물을 담아 먹었다.


학교 다닐 채비로 분주했던 하루

공식적인 일정이 끝나고 학교에 마련된 여러 협력 기관들의 부스를 둘러보았다. 학교의 통학버스인  바이오버스Bio Bus팀을 찾았다. 놀랍게도 바이오 가솔린으로 운행되는 버스였다. 첫 텀(term) 학교 버스는 이미 만석이었다. 대신 벅스BUGS라는 카풀 서비스를 신청할 수 있었다. 집 가까운 곳에서 출발해서 학교로 바로 도착하는 노선이라서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었다. 첫 텀 약 세 달 동안 아이들은 벅스 카풀로 통학했고, 나는 그 차 뒤를 오토바이로 따라갔다. 자연스럽게 지리를 익힌 후에 차를 렌트해서 타고 다녔고, 두 번째 텀부터는 내가 직접 운전해서 아이들의 등하교를 챙겼다.


부동산 회사에서도 부스를 마련했다. 처음에 나에게 뉴꾸닝의 집을 소개해 줬던 분이 계셨다. 다른 좋은 집을 구했다는 소식과 함께 감사의 뜻을 전했다. 그 외에도 수십여 기관의 부스가 있었다. 그중에는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조직한 환경 캠페인 단체인 바이 바이 플라스틱 백Bye Bye Plastic Bags 팀도 있었다. 학교에서 운영하는 그린샵Green Shop에서는 가는 대나무로 만든 빨대 세트를 선물 받았다. 빨대는 일회용이 아니었다. 이날 받은 빨대는 집에서 음료수나 코코넛 주스를 먹을 때마다 사용했다.


미들스쿨 학생들은 컴퓨터가 필요하다고 안내를 받은 터라 컴퓨터 부스를 둘러보았다. 주요 제조사의 다양한 모델이 마련되어 있었고, 생각보다 가격이 저렴했다. 오리엔테이션 부스에서 모델과 사양을 상담하고 아얘 이날 시내의 매장으로 가서 받아 오기로 했다. 하얀색의 가볍고 심플한 모델이었다. 매일 들고 다니기 좋은 크기였다. 운영체제와 필요한 프로그램을 세팅하는데 한 시간 넘게 기다렸다. 컴퓨터를 받고 확인해 보니 실제 컴퓨터의 사양이 학교에서 상담할 때와 조금 달랐다. 10만 루피아를 깎아 주었다. 오는 길에 둘째 아이 휴대폰을 개통했다. 전화와 문자 메시지만 가능한, 최소한의 기능을 가진 폴더형 휴대폰이었다. 아이는 난생처음으로 자기 휴대폰이 생겼다고 굉장히 좋아했다.


이틀 후에는 독립기념일과 새 학기를 맞이하는 세레모니가 예정되어 있었다. 인도네시아 전통의상이 필요했다. 제법 큰 매장으로 갔는데도, 첫째 아이의 옷을 고르기가 참 어려웠다. 색깔은 많은데 적당한 조합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고심 끝에 골라 입어봤다. 남매 모두 현지 의상이 잘 어울렸다. 필요한 준비를 거의 마친 것 같다. 오리엔테이션에, 학교 갈 준비에 바쁘고 흥분되었던 날이었다.


잘 할 수 있어

오리엔테이션 다음 날, 발리의 집에서 첫 번째 주말을 맞았다. 월요일은 8월 17일로 인도네시아의 광복절로 휴일이었다. 화요일에 아이들의 첫 학기가 시작된다. 집에서 쉬면서 학교 갈 준비를 했다. 벌써 발리에 온지 만 한 달이 되었다. 처음 이곳에 자리 잡았을 때 창밖 풍경은 막 추수를 끝낸 모습이었는데, 어느새 물 댄 동산엔 파릇하게 모가 심겨 자라고 있었다.


토요일과 일요일 아침마다 동네 축구장에서 작은 축구 교실이 열린다. 둘째 아이에게는 축구 교실이 학교만큼 중요한 일정이었다. 집을 나와 축구하러 가는 길을 나는 무척 좋아했다. 사실은 축구장뿐 아니라 집을 나서서 어디든 가려면 항상 지나야 하는 길이다. 처음 이 집을 보러 왔을 때 이 길이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아이들은 이 길을 지날 때마다 도마뱀과 개구리와 개와 고양이를 만나며 즐거워했고, 나는 터널처럼 길을 둘러싼 열대 식물들과 정겨운 텃밭의 모습에 마음을 빼앗기곤 했다. 길은 집의, 생활의 일부이고 "아이들은 길에서 배운다." 이 길을 걷는 두 아이의 뒷모습은 내가 발리에서 가장 사랑했던 장면 중 하나다. 언제부터인가 우리의 길은 시간 비용을 단축시키는 게 가장 큰 가치가 되었고, 소음과 사고와 공해의 진원지가 되었다. 길에 관한 철학이 회복되어야 사람도 자연도 좀 더 행복해질 수 있지 않을까.

여기서 살 집을 고를 때, 축구장 다음으로 내 마음을 빼앗은 건 이 길이었다. ⓒ이성희


일요일에는 교회에 가는 대신 집에서 예배를 드렸다. 요셉이 이집트 왕의 꿈을 풀어주는 장면을 공부했다. 7년의 풍년과 7년의 흉년에 대한 꿈이었다. 발리에서의 1년이 너희들에게 풍년이냐, 흉년이냐 물으니 먹고 노는 것은 풍년이고, 영어 때문에 흉년 같기도 하단다. 놀고 먹으면서 친구도 사귀고 영어를 공부할 수 있다면 그건 풍년이라고 일러주었다. 요셉이 그랬던 것처럼, 인생의 흉년이 찾아왔을 때 이곳에서 1년 동안 비축한 경험과 지식과 관계를 통해 너희도 살고, 남과 이웃과 지역도 살리자고 부탁하고 같이 기도했다. 창 밖의 논에 풍년이 들기를, 앞으로 1년 아이들의 내면이 풍년이기를 기도했다. 그리고 언젠가 현실이 궁핍한 시기가 오더라도, 스스로 살고 남도 살릴 만한 내면의 자산을 비축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도했다.


2층 발코니에서 모세의 이야기를 나누면서 막 모내기를 끝낸 논 풍경을 바라봤다. 이 논에도, 아이들의 내면에도 풍년이 들기를. ⓒ이성희


그렇게 주말을 보내고 월요일을 독립기념일 휴일로 보냈다. 내일이 첫 등교다. 밤에 가방을 챙겼다. 아이들도 조금 긴장한 것 같다. 내일 일을 절대 오늘 걱정하지 않는 첫째 아이는 성경 읽기를 마치자마자 잠이 들었고, 둘째 아이는 걱정이 되는지 이것저것 궁금한 것을 물어보면서 잠을 이루지 못한다. 잘 할 수 있어. 아이의 귀에 대고, 그리고 아이의 마음에 대고 몇 번이고 그렇게 얘기해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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