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게으른 완벽주의자를 위한 리부트

스물아홉 살 때 그 기분으로

by 안녕

스물아홉 살.

아마 그때 나는 서른 살이 되면 어떤 종말이라도 받아들여야 하는 줄로만 알았다.


찬란한 순간들이 한순간에 빛바래게 될지 모른다고.

그때 그 시기에는 특히나 20대를 찬양했었으니.


그런데 이게 웬걸.

서른 살이 되고 나니 그때부터는 마음이 더 넉넉해졌다.


20대까지 이루고자 다짐했던 많은 꿈을 대부분 이루지 못한 데 대한 심란함을 뒤로하고,

이번에는 그 기간만 10년을 더 유예하는 것으로 끝이었다.

한 살을 더 먹었을 뿐인데, 오히려 10년을 더 벌 수 있었다는 뜻.


이 기억을 그대로 지금 가져오기로 마음먹었다.




챗GPT 이미지 생성에 드디어 성공했다. 이게 며칠 만에 해낸 것인지....



나는 게으른 완벽주의자 성향을 지녔다.

미룰 수 있는 한 마구 미뤄 뒀던 일과를 짧은 시간에 해치우는 게 일상이다.


특히 글을 쓰는 일은 더더구나 그런 면이 더 커서(정말 잘 쓰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해서 그런 듯하다),

구성부터 소재까지 의심스러운 부분은 공부하고 또 공부해야 시작할 수 있었다.


시작하고도 좋은 이음새로 연결이 안 되는 부분에 다다르면 더 이상 쓸 수 없었다.

종종 그렇게 매듭이 엉성한 채로 내던져둔 글이 오래된 하드디스크에 갇힌 채 먼지를 타고 있다.


이런 내 기질과 성향은 알면서도 고치기 어려운 부분이어서,

누군가에게 의뢰를 받거나 금전 대가가 치러질 예정인 업무가 아니라면 자주 바깥으로 밀려나곤 했다.


지금 쓰고 있는 브런치북은, 실은 누군가에게 보여 주려는 목적보다는

스스로를 몰아붙이려는 의도로 쓰고 있는 것이어서 그 부담을 작게 가져가는 장치를 덧붙여둔 터다.

그래서 그나마 이렇게나마 이어질 수 있었다.


이제 쓰고자 하는 웹소설은, 그래, 정말 제대로 써 보고 싶었다.

준비를 더 탄탄히 하고 정해진 일정에 맞춰서 글을 뽑아낼 수 있는 장치까지

가능하다면 모두 마련해 두고 싶었다.


그래서 최근에 나는 브런치 글로 가장 치명적인 피드백을 듣게 됐다.

"진도가 너무 느려서 답답해."




이미 생성한 이미지 변형을 요청하면, 자꾸 조금씩 엇나가 전혀 다른 이미지가 된다. 특히 챗GPT가 그러한데, 오늘 밤에는 제미나이가 이미지를 못 만든다며 두 손을 들었다.



그래서 의기소침해질 뻔했던 나는 다시 스물아홉을 버리고 서른이 되기로 한다.


웹소설은 초반 구성만 잡고 일단 무작정 써 보려고 한다.

모든 웹소설 작법 책에서 미리 시놉시스를 짜 두라고 권하지만,

지금껏 살짝 어설퍼 보였던 중반부에는 과감히 물음표를 찍어 두고 그냥 달려 보기로 마음먹었다.

(어차피 10화 이상 연재했다가 반응이 시원찮으면 내 의지와 상관없이 접어야 한다.)


만약 그렇게 접었다면, 또 다른 웹소설을 시작해 보려 한다.

여성이 남성향을 쓰는 게 쉽지 않아서 발생한 일이라면 로맨스 판타지라도 써 보는 거다.


웹소설이 계속 시원찮으면... 또 이렇게 리부트 조건을 걸어 놓는다.

이로써 나는 '무한 회귀자' 특권을 얻게 됐다(만세!?).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오히려 내 발목을 잡는다.

이번만큼은 정말이지 재미있어서 쓰는 글을 완성하고 싶다.

내일은 더더욱 고군분투!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