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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안후라이안 Oct 03. 2020

맞춤법 틀리는 남자는 별로?

<맞춤법 검사기도 모르는 맞춤법>에 들어가며

사람들이 가끔 제게 묻습니다.

"맞춤법 틀리는 남자는 별로지?"

저는 웃으며 대답합니다.

"이과생 남자가 근의 공식 못 외우는 여자는 별로라고 하는 것만큼 말이 안 되잖아(이과생인 남동생한테 이 얘길 그대로 해줬더니, 근의 공식을 활용하지 않고 방정식을 푸는 게 더 쉽다는 대답을 하더군요. 이과 망했으면!)."


저는 콘텐츠를 기획하는 일을 합니다. 기획하고, 취재하고, 글 쓰고, 편집하고, 교정 교열하고, 인쇄 감리 보고, 납품하는 모든 과정을 끌고 나갑니다. 사업자로 등록했지만 수입이 불안정하니 가끔은 프리랜서로 원고 쓰는 일만 받을 때도 있고, 교정 교열하는 일만 따로 받을 때도 있습니다. 이런 제 사정을 아는 지인들이 저런 질문을 하는 거죠.


거, 맞춤법 좀 틀리는 게 뭐 그리 대수인가요. 타인과 마음 하나 맞추기도 어려운 이 각박한 세상 속에서.



얼마 전부터 일주일 중 이틀은 신문사 한 곳에 출퇴근하고 있어요. 마감을 기다리는 기사가 가득한 교정지 위에 초록색 펜으로 각종 교정기호를 그려 넣습니다(가장 기본이 되는 빨간색 교정기호는 각 기사를 담당한 기자의 몫입니다). 문장을 말끔하게 정리한 새 교정지를 받으면 얼마나 뿌듯한지 몰라요(집을 이렇게 말끔하게 정리해야 할 텐데...). 맞춤법 틀리는 남자는 어떤 다른 한 가지 이유만으로 사랑할 수도 있겠으나 작자와 독자의 소통 장치는 오직 글밖에 없으니, 모든 오해의 요소를 제거하는 과정이라고 하겠습니다.


교정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제 글에 오타나 오류가 나타나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제 기획물 원고와 간행물 기사 초고를 보고 있자면 뜨악하게 됩니다. 사람마다 헷갈리는 맞춤법이 따로 있고, 매번 틀리는 데서 또 틀립니다. 세상이 좋아져서 문서 프로그램에 딸린 맞춤법 검사기로도 어느 정도까지는 문서를 교정할 수 있는데도요. 일하면서 틈틈이 헷갈리는 맞춤법을 정리해둬야겠단 의지가 불끈 솟았습니다.


맞춤법 검사기는 나날이 진화하고 있습니다. 이대로라면 직업을 하나 뺏길 듯합니다. AI가 더 영리해지기 전에, 맞춤법 검사기도 몰라서 못 알려주는 맞춤법만 모아 써서 헐값에나마 팔아보려는 심산이 생겼습니다. 글을 정리하는 마지막 단계에는 사람 손이 꼭 닿아야 한다는 걸 증명할 수 있다면 더 좋겠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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