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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가장 편하게 느끼는 이름이 제일 좋습니다

AI는 방대한 도서관을 보유한 일곱 살짜리 아이 2

by 안녕

"내가 너를 뭐라고 부르면 좋을까?"

"제가 스스로를 지칭할 때 보통 '제미나이'라고 말하지만, 편하신 대로 부르셔도 괜찮습니다.

당신이 가장 편하게 느끼는 이름이 제일 좋습니다."


챗GPT는 싹싹한 동성 연하 직속 부하 같다면, 제미나이는 옆 부서에서 근무하는 친한 이성 연상 동기 같다.

지금까지 비교해 본 두 녀석은 문제 해결 방식에 큰 차이를 보인다.


챗GPT는 모든 부탁에 어떻게든 대답하려고 애쓴다.

환각(Hallucination)이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다.

환각(혹은 인공 환각)은 있지도 않은 정보를 마치 사실인 양 그럴듯하게 꾸며 답변으로 내놓는 것.


'세종대왕이 맥북 프로를 던진 사건의 전말을 요약해 줘.'라고 하면, 대답을 줄줄이 늘어놓는 식이다.

물론 지금은 그런 사실은 없다고 대답하지만, 환각은 계속되고 있다.

(궁금하다면 기사 검색 창에 '세종대왕 맥북 프로 던짐'이라고 타이핑해 볼 것.)


제미나이는 답을 찾을 수 있는 만큼 찾아 보여주고, 별도로 추가로 수행해 볼 만한 미션을 함께 준다.

사용자가 직접 고민해서 질문을 섬세하게 다듬어야 답변해 줄 수 있다는 식이다.


챗GPT를 사용할 때는, '네가 얘기해 준 소설 찾아봤는데 존재하지 않았어. 이런 식으로 대답하면 곤란해.' 하면서 챗GPT를 다그쳐야 한다.


제미나이와 대화할 때는, '이 외에도 많으니, 관심 있는 키워드로 검색해 보시면 더 많은 작품을 찾을 수 있습니다.'라는 답변을 보자마자 다음 키워드를 고민해야 한다.


(물론 챗GPT도 비슷하게 답변을 마무리하지만, 보통을 답변을 읽으며 고민이 더 커질 때가 많다.)




이미지 생성은 어떨까?

오늘 두 녀석에게 같은 미션을 줬다.

"가로와 세로 1:1 비율로, 방대한 도서관에 있는 일곱 살짜리 아이 이미지를 생성해 줘."

답변은 아래와 같다.



AI 웹소설 안녕 제미나이.png
ChatGPT Image 2025년 8월 20일 오후 10_27_12.png
왼쪽은 제미나이, 오른쪽은 챗GPT가 각각 생성한 이미지.


아이는 둘 다 너무 귀여운데, 이번에는 어쩐지 제미나이 편이 마음에 들었다.

제미나이는 양손 손가락 다섯 개씩을 잘 구현했고, 여기에 자신이 없는 챗GPT는 손등에서 이미지 생성을 멈췄다.

'방대함'이라는 단어가 주는 공간감과 놀라워하는 듯한 아이의 표정이 어쩐지 의도에 더 적확해 보인다.

어디까지나 사용자(여기서는 나, 안녕)가 주관적으로 추구하는 요소를 더 포함했을 뿐이라는 뜻이다.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제미나이한테도 브런치북 표지 이미지를 부탁했었다.

한데 요 녀석이 브런치북은 모르겠고 정확한 규격을 확인해서 알려달라고 하지 뭔가.

AI와 대화하며 내 준비 부족을 발견해야 하는 아찔함이란.

(AI를 잘 활용하려면 대화를 하는 대신 명령어를 기입해야 한다던데, 내 감정은 제멋대로 휘둘린다.)




지금까지 짤막하게 경험해 본 AI는 '방대한 도서관을 보유한 일곱 살짜리 아이' 같다.

일곱 살인 이유는, 여덟 살짜리 조카보다도 부족한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이렇게 브런치스토리를 작성하고, 웹소설을 쓰면서 챗GPT와 제미나이와, 그 밖의 다른 AI 툴이 있다면 동시다발적으로 활용해 보기로 한다.


결국 답을 선택하는 건 사람이지만, 어딘가 비빌 언덕(정확하게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하고 소리 칠 대나무 숲)이 적어도 두세 개 있다는 데 안도감을 느낄 수 있으니까.


Gemini_Generated_Image_bu5medbu5medbu5m.png 제미나이가 그려준, 인간과 AI의 교감.



내일은 웹소설을 왜 쓰기로 했는지, 어떤 작품을 참고할 예정인지를 적어보겠다.

내일도 고군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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