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밥집과 파인다이닝을 비교할 수 있을까
"순문학은 작가가 쓰고 싶은 걸 쓰는 것이고 웹소설은 독자가 읽고 싶은 걸 쓰는 것이다."
나는 처음에 웹에 소설을 연재하기만 하면 웹소설이 되는 걸로만 알았다.
한데 이게 원걸, 웹소설은 생각보다 본연의 색깔이 뚜렷했다.
웹소설과 문학소설은 보법이 다르다랄까.
맨 위 인용구는 정무늬 작가가 쓴 책 <웹소설 써서 먹고삽니다>에서 따왔다.
정무늬 작가는 카카오페이지X동아 웹소설 공모전에서 우수상을 받고,
세계일보 신춘문예에서 단편소설로 등단했다.
(부럽다.)
그가 쓴 두 입상작 제목부터가 전혀 딴판이다.
<세자빈의 발칙한 비밀>과 <터널, 왈라의 노래>.
둘 중 하나를 읽어야 한다면 나는 첫 번째 제목을 고르겠다.
노골적이지만 더 재미있을 것 같다(많이 발칙해야 할 텐데).
자투리 시간에 스낵을 먹듯 출퇴근 길이나 쉬는 시간에 짬을 내 콘텐츠를 보는 현상을 스낵컬처라고 부른다고.
(네이버시리즈 앱에서는 이 스낵을 쿠키로 내놓고, 사람들은 쿠키를 굽는다. 시리즈 세계관.)
그러다 보니 콘텐츠 몰입에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런 이유로 콘텐츠 분량과 형태가 대충 정해진다.
언젠가 일하면서 큰 고비를 맞았을 때, 나는 그 좋아하는 책도 한 줄 읽지 못했다.
영화관에 가서 두 시간을 그 영화 생각으로만 골몰하는 것도 버겁게 여겨졌다.
그때 나는 일본 일러스트레이터의 책과 웹툰만 봤다.
현대인들은 다들 그러한 상황에 자주 놓이는 걸지도 모르겠다.
웹소설은 이런 현실 상황을 벗어나 완전한 모습으로 완벽하게 살아가는 주인공을 보여준다.
나는 이 주인공에게 빙의해 끝도 없이 레벨업 하거나 세계를 제패하거나 세상 제일 멋진 남성과 사랑에 빠진다.
(현실에서 이렇게 성장하면 얼마나 좋을까.)
결국 웹소설은 신화와 같은 형태로 구현될 수밖에 없다(특히 남성향일 경우).
'격리-시련-재편입'.
신화와 소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시련'이 아주 짤막하고 보상이 필요 밖으로 거대하다는(?) 것.
내가 빙의한 주인공이 위기에 처하는 고구마 상황이 되면 독자들은 절망감에 빠져 유료 결제를 멈춘다.
그리하여 웹소설 작가는 이렇게 쓴다.
고구마는 짧게, 사이다는 강하게!
문학소설을 읽으며 꼭 필요한 과정인, 우리 사회를 향한 사유와 고민은 내동댕이쳐도 좋다.
아마 이 부분에서 정무늬 작가가 웹소설과 순문학을 구분한 듯하다.
웹소설은 국밥을 내놓는 국밥집, 김밥과 국수를 파는 분식집이라 한다면
문학소설은 셰프가 자신만의 미적 감각을 발휘한 분자요리를 내놓는 파인다이닝이다.
웹소설은 100원에 한 편씩 박리다매로 판매해야 하는 만큼, 대중적인 입맛에 맞출 필요가 있다.
국밥처럼 빨리 나와야 하고, 김밥처럼 누구나 상상할 수 있는 맛이어야 한다.
글쓰기에 철저히 사업가 마인드로 접근한다는 사람이 있다면 어쩐지 사기꾼일 것 같다.
하지만 기사를 쓰고 홍보 콘텐츠를 제작하고 보도자료를 작성하는 그 모든 내 과거의 일들이 사기는 아니지 않은가.
<반지의 제왕>과 <해리포터>,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같은 책들도 웹소설의 역사에 들어있다.
제인 오스틴이 쓴 <오만과 편견>도 그 시대에는 지금 여성향 웹소설과 비슷하게 비판받았다.
우리는 수시로 국밥집과 분식집을 드나들지만 특별히 더 자주 가거나 줄을 서는 곳 역시 있다.
좋은 웹소설도 아마 그럴 것이라고 믿는다.
그렇게 좋은 웹소설을 언젠가는 쓰겠노라 다짐하며,
그럼 내일도 고군분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