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기린언니 Jun 24. 2024

여러분은 파우치가 있나요?

비폭력대화(NVC)로 본 인사이드 아웃 2

지난 주말, <인사이드 아웃 2>를 보고 왔어요. 관객이 400만 명을 넘어서고 있다고 하죠. 가족들이 다 같이 본 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각자 비폭력대화(Nonviolent Communication)의 관점에서 발견한 것들이 있어 남겨보려고 해요. (*스포일러 주의)


#. 현존하는 어린아이, 미래와 과거와 타인의 시선으로 흔들리는 사춘기

<인사이드 아웃 1>이 라일리의 어린아이 시절이었다면 <인사이드 아웃 2>은 대망의 사춘기를 배경으로 합니다.

오리지널 다섯 감정들 (*출처 : 인사이드 아웃 유튜브)

1편에서 나온 다섯 감정은 현존하는 아이의 핵심감정을 그대로 표현했습니다. 기쁘고, 슬프고, 화나고, 불편(까칠하다고 번역되었지만 원래 이름인 Disgust는 보다 근본적인 불편함에 닿아있는 것 같아요.) 하고, 두려운(마찬가지로 소심하다고 번역되었지만 Fear, 겁나고 움츠러드는 느낌을 말하고 있어요.) 즉각적인 반응이지요.


반면  <인사이드 아웃 2>에 나오는 새 감정들은 시점과 관점에서 '현존'과는 멀어져요.

불안이(Anxiety)는 ‘미래’ 혹은 보이지 않는 걱정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그래서 불안이가 작동하기 시작하면 현존할 때 느낄 수 있는 여러 감정들은 무력해지기 쉽지요. 동공이 확대되고, 눈동자는 흔들리고, 가정과 상상이라는 '생각'에 기반해요.


부럽이(Envy)와 당황이(Embarrassment)는 어떤가요? '비교''타인의 시선'을 통해 느낄 수 있는 감정들입니다. 그래서 부럽이는 늘 남에게 주의를 기울이고, 자신도 그런 생각을 했다고 덧붙이곤 합니다. 외부의 평가와 권위가 중요하니까요.

당황이는 극 안에서 반응하기 전에 약간씩 딜레이가 있어요. 왜냐면 자신의 행동이 남에게 어떻게 보이는지를 살펴서 나오는 감정이기 때문이죠. 눈치를 보다가 남들이 쳐다보면 후드 끈을 당겨 숨어버리는 행동이 당황이를 잘 보여주는 것 같아요. 더불어 자기 비난으로 이어지기에 우울하고 슬퍼져요. (그래서 극에서도 슬픔이를…)

 

따분이(Ennui)는 꽤나 흥미로웠는데요. 저는 자신과의 연결이 끊어진 상태에서 보이는 '허세' 같았어요. 여우의 신 포도 이야기처럼 애초에 관심이 없다고 선을 그어버리면 거기에 대한 나의 부러움, 당황, 불안을 모두 잠재울 수 있는 것처럼 느껴지죠. 그래서 늘 다른 감정들과는 좀 떨어진 소파 자리에서 리모컨을 이용해요. 하지만 늘 은근슬쩍 다른 감정들이 있는 콘솔을 힐끗거립니다. 완전히 멀어지지는 않지요. 거리는 유지하면서 관심과 돌봄이 필요한 존재를 잘 상징하는 것 같아요.


어릴 때는 몸으로 느껴지는 기쁨과 슬픔, 불편함과 두려움 그리고 화 같은 감정들이 에너제틱하게 살아있습니다. 매 순간 현존하니까요. 하지만 자랄수록 타인의 평가, 눈치, 과거의 잘못이나 미래에 대한 걱정이 감정에 영향을 주기 시작하죠. 그 둘의 조화와 신념, 자아에 대해 <인사이드 아웃 2> 제작진들이 많이 고민해서 만든 것 같아요.


#. 우리 집 최애 캐릭터는 OOO


영화를 다 보고, '너희는 어떤 친구를 평소에 자주 만나?' 물어보니 한 아이는 기쁨이, 한 아이는 버럭이라고 대답하네요. 아직 어린이들이라 불안이나 당황 같은 감정은 와닿지 않았나 봐요.


<인사이드 아웃 1>을 책으로 읽어서 새로 등장한 친구들도 구분하는데요. 그중 누가 좋냐는 말에 이구동성으로 '파우치!'라고 대답합니다.


안녕~ 난 파우치야!(Hi everybody? I'm pouchy! I have lots of items.)

일부 영화평은 위기가 닥칠 때마다 파우치가 무작정 도와주는 설정이 완성도를 떨어진다고 말하지만 아이들에겐 상관없습니다. 인과관계나 논리적 설득보다 테이프, 오리 목욕 장난감, 다이너마이트처럼 무엇이든 튀어나오는 파우치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뿐이죠.


전 이 파우치에서 비폭력대화의 '욕구'를 떠올렸어요. 우리 삶에 있어 보편적이고 누구나 가지고 있는 중요한 것들. 비폭력대화 프로세스를 하다 보면 '엥? 갑자기? 나한테 이게 중요했다고?' 싶던 순간들이 있었어요. 어찌 보면 뜬금없지만 내 안에 분명히 살아있는 욕구들요. 그리고 그 욕구들을 충족시키려 노력할 때 문제가 해결되고, 삶이 변화하기도 합니다. 여러분에겐 만능 욕구 파우치가 있나요?



#. 캐러멜 팝콘아! 고마워~

생각보다 대사가 많고, 속도가 빨라서 끝까지 보는 게 가능할까 싶었는데요. 그래도 더빙이라 그런지 내용은 거의 다 알아듣는 것 같았어요.


사이사이 주인공들이 위기에 빠질 땐, 어린이들이 여기저기서 '엄마! 나 이제 그만 볼래~'라고 외치더라고요. ㅎㅎㅎ 저희 아이들도 같은 반응이었는데 (조마조마하고 겁나는 순간을 아직 잘 조절하기 어렵겠지요.) 그때마다 캐러멜 팝콘이 큰 위안이 되는 것 같았습니다. 덕분에 96분의 상영시간을 무사히 같이 즐겼어요.


전체 관람가라 아이들과 같이 보러 가긴 했지만, 사실 어른들이 더 재밌게 봤어요. 1편의 '빙봉'처럼 밑바닥까지 끌어내리는 캐릭터는 없었지만 그래도 몇몇 카메오들이 어린 시절 오락과 애니메이션 덕질의 기억을 잔뜩 건드렸습니다.

<인사이드 아웃 2> 포스터 중

#. 모든 감정을 수용하고 돌보기

비폭력대화로 마무리를 해볼까요? 비폭력대화에서는 모든 감정을 환영합니다. 좋다 나쁘다 판단하지 않고 수용하기를 권하지요. 1편에서 슬픔이가 무용한 존재 같았지만 라일리에게 정말 필요하다는 걸 말해주듯이 2편에서는 소심이가 어떻게 위험상황을 대비해 주는지 여실히 드러납니다.


그렇듯 불안과 부러움, 당황, 따분함도 우리에게 모두 필요한 감정입니다. 우리를 안심시켜 주고, 더 성장하게 해 주고, 안전하게 지켜주고, 타인과 어우러지며 살게 해 주고, 진짜 필요한 게 무엇인지 알려주지요. 부정적이고 치워야 할 감정이 아니라 '무엇이 충족되지 않았는지 알려주는 신호' 로서 우리에게 찾아옵니다.


이 영화를 화두로 사람들이 자신의 여러 감정을 잘 살펴보고, 더 많이 이야기 나누면 좋겠어요. 이름 붙이고 알아주면 더 잘 돌보는 데 도움이 되니까요. 주말 내내 저희 가족들이 그랬듯이요.

매거진의 이전글 마냥 사랑으로 가득 차기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