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위해서 항상 준비되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스팀 라이브러리에 가득 찬, 한 번도 하지 않은 게임 목록을 보며 흥분하며, 며칠 동안 잡고 있던 게임이 질려서 새 게임 시디를 집어넣고 두근 거림을 애써 감춘 채 '새 게임'을 누를 것이다.
이 글은 나의 습관인, 게임을 시작할 때 '새 게임' 이 아닌 '옵션'을 선택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에 대한 예찬 글이며 설득 문이다.
처음 게임을 실행시키면 갱장한 두근거림이 머리를 지배할 것이다. 손가락 끝에서는 어서 '새 게임'을 누르고 싶은 충동이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옵션은 그러한 충동을 막아 게임을 시작하기 전에 두근거림의 시간을 강제로 지속시켜 준다. 맛있는 것을 바로 당장 입에 넣을 수도 있지만 먹기 전에 맛을 상상하며 눈으로 관음 하는 일종의 의식 같은 기능을 한다.
옵션을 관음 하는 시간은 내가 이 게임을 받아들이기에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옵션은 당신이 이 게임을 무리 없이 수행하기 위해 도움을 준다. 예를 들어, WINDOW와 MAC OS를 넘나들어 사용한 사용자의 경우, 트랙패드를 사용할 때에 있어 스크롤링의 차이에 당황을 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WINDOW는 사용자가 위로 방향을 올리면 스크롤이 올라가고, 내리면 화면이 내려가는 반면, MAC에서는 올리면 내려가고 내리면 올라가는 아주 기묘한 상황을 연출한다. 이후에 설정 기능이 추가되었다. 아마 WINDOW는 스크롤바를 올린다는 개념으로, MAC은 스크린을 올린다는 개념으로, 개념의 차이가 있는 듯하다.
이와 같은 개념의 차이가 게임 속에서도 유저들에게 혼선을 주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게임 (횡스크롤을 제외한) 옵션에는 스틱의 방향에 따라 카메라의 X 축과 Y 축 반전 기능이 존재한다. 유저들의 학습 상황에 따라, 이와 같은 컨트롤의 차이가 게임의 진행을 방해하고, 몰입으로의 길을 끊어버리기 때문이다. 긴박하고 세밀한 컨트롤을 요하는 장르일수록, 이러한 옵션의 부재는 유저를 더듬이로 만든다. 물론 일부 설정이 불가능한 게임도 있다. 이러한 게임을 하면 미생물처럼 하늘과 땅만 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옵션은 이처럼, 유저가 편안하고 익숙한 홈 경기장을 만드는 것과 같다.
게임을 단순하게 즐기는 게이머로 남아도 좋지만, 설정은 게임을 한 단계 더 철학적으로 보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다. 옵션을 보면 이 게임의 장르와 이 게임을 만들기 위해 어떤 부분을 제작자들이 공들였는지 얼추 파악할 수 있다.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의 경우, 굉장히 세밀한 옵션 기능을 제공한다. 컨트롤 설정은 물론이고 음성 옵션까지 게임의 몰입을 돕는다.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한 어쌔신 크리드 2 의 음성 설정을 이탈리아어로 해 두면 몰입도는 더 높아진다. 이처럼 로컬라이징이 된 게임의 경우, '자막 켜기' 나 '언어' 설정 기능을 제공하는 경우가 많다. 게임을 하며 강제 학습기능까지 갖추니 이 얼마나 유용한가?
DEAD SPACE 1의 경우, 옵션 메뉴를 보면 얼추 평이한 구성을 보인다. 유혈 표현의 옵션이 없는 이유는 뭘까? 이 게임은 첫 번째, R-18 등급이고 두 번째, 유혈 표현을 숨길 이유가 1도 없기 때문이다. 네크로모프의 사지를 프리즈마 커터로 절단할 때, 밋밋하게 잘린다면 그들은 순식간에 총알받이로 전락해 버릴 것이고 게임은 창고에 처박히겠지.
FAT PRINCESS ADVENTURES는 아기자기한 맛으로 점철된, 게임은 하고 싶은데 변명거리가 없는 유부 게이머들의 일종의 돌파구 가 될 것이다. 잔인함 설정이 가능하여 원래는 유혈이 낭자한 게임이지만, 설정 하나로 아이와 함께 꽃가루를 날릴 수 있다.
https://youtu.be/-oUiI2 ke5 IU
인디게임 LIMBO의 옵션은 굉장히 심플하다. 왜냐면 더도 덜도 필요 없기 때문이다. 방향과 원버튼 만이이 게임을 무리 없이 즐기게 해 준다.
이처럼 장르적 특성과, 당시 게임이 개발되어 출시된 기술력과, 당대 게임 시장의 흐름과, 제작자들의 다분한 의도들이 다양하게 옵션 기능에 투영되어 있다.
이처럼 옵션에 대해 미리 파악하는 것은 '새 게임'을 먼저 누르는 것 보다 많은 정보를 미리 파악하기 용이하다.
비단 게임뿐만이 아니라, 새로운 프로그램을 접하거나 새로운 기능의 발견을 위해서 '옵션'을 보는 습관을 들이자. 그 게임과 그 프로그램을 사용함에 있어 스타팅 라인이 달라진다. 그것은 단순한 옵션이지만 옵션이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