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가지 가정들 2_내가 엄마가 될 때는 아니다.
엄마가 자살로 세상을 떠난 뒤에 언제쯤 이 사실이 괜찮아질 것인가에 대해 종종 생각했다.
그런 말들을 하고는 한다.
"너도 부모가 되면 알게 돼."
내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었다. 부모가 되면 이해할 수 있게 될까? 아닐 것 같았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부모가 되면 본인의 부모 마음을 이해하고 화해할 시기가 오게 된다고 했다. 나는 내가 그러지 않을 거라는 걸 직감적으로 알았다.
나는 자살유가족 수기를 읽을 때보다는 다른 상황에 대해서 좀 더 쉽게 공감했다. 가정폭력, 그러니까 극심한 혹은 신체적인 폭력까지는 아니더라도 언어적인 폭력 혹은 방치, 무관심 등 겉보기에는 심각해 보이지 않는 정서적인 가정 내 학대 당사자들이 겪는 감정을 적어둔 글에 더 쉽게 공감했다. 그중 와닿던 것 중 하나는 '아이가 생기니 부모가 내게 왜 그랬는지 더 이해할 수 없다. 이렇게 소중한데 어떻게 그렇게 대했을까?'라는 분노였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이고, 네가 내 삶의 이유라고 말하더니 갑자기 떠나버리는 것.
아이가 있는 나를 상상하기 어렵다. 그러나 아이를 그냥 두고 세상을 스스로 갑자기 떠나는 나는 더더욱 상상하기 어렵다.
엄마의 자살을 단순히 사고나, 우울증의 결말이라던가 충동적인 실수 같은 게 아니라 엄마의 선택이라고 믿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그 사람이 원하던 결말이니 잘 된 거고, 괜찮은 거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그러나 시간이 가고 내가 자랄수록 혹은 내가 더 정신적으로 건강해질수록 점점 더 그 이해는 어려워졌다.
부모가 된다한들 괜찮아지지는 않을 거다. 그때는 오히려 나도 어떻게 엄마가 그럴 수 있었는지를 다시 되짚어보는 때일 것 같다.
한편으로는 문제를 일으키고 계속해서 괴로움의 원인이 되는 부모가 있는 것보다 없는 것이 낫다고 느꼈다.
가끔은 부모가 힘이 없어진 사람들이 부러웠다. 세월 속에 기억이 무뎌져서 과거를 용서하거나 스스로 버티기 위해 부모와 화해할 수 있는 나름의 서사를 만들고 부모를 이해하기로 결정한, 이제는 또 다른 부모가 되어버린 자녀들을 부러워했다. 내 이야기는 아닐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