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겐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은밀한 취미가 있다.
노래방에서 혼자 노래를 녹음하고 반복해 듣는 일이다. 아내조차 내 핸드폰에 열 개가 넘는 파일이 저장돼 있다는 걸 모른다.
퇴근길 편의점에서 500미리 생수 한 병을 산다. 그리고 집 근처 코인노래방에 들른다. 신해철과 김광석, 유재하의 노래를 부른다. 녹음 버튼을 누른 뒤 이어지는 4분간 죄 없는 핸드폰은 절제를 모르는 에코와 음이탈을 온몸으로 견뎌야 한다.
녹음한 노래는 주로 출퇴근길에 듣는다. 지하철 소음에 질세라 음량을 키우다 보면 갑자기 블루투스가 끊겨 지하철 가득한 사람들이 모두 들어버리면 어쩌나 걱정되기도 한다.
동시에 스릴도 느껴진다. 아, 차라리 그렇게라도 사람들 앞에 까발려졌으면, 정해진 음정과 박자를 따라가려 애쓰고 있지만, 진짜 나는 삑사리가 일상인 음치라는 걸 들켜버렸으면 하는 마음도 드는 것이다.
삼십 대 중반의 난 훌륭한 어른이란 목소리를 잘 감추는 사람이라 믿으며 산다. 저마다 제멋대로 생긴 오백 명의 생각이 모두 같을 수 없으니, 나라도 링 위에서 내려오는 게 집단의 평화에 기여하는 길이라 생각했다. 회사에선 의견을 누르고, 친구들 사이에선 취향을 감추고, 가족 안에선 욕망을 참는다.
그러다 보니 점점 겁쟁이가 되어 간다. 말을 안 하는 게 익숙해져 논리 전개가 서툴어지고, 빈약한 논리가 들통날 것 같아 더욱 말을 아낀다. 내 의견을 관철했을 때 얻는 만족보다 갈등 자체가 주는 불편함이 커졌다. 상대방이 나를 비난할까 봐, 아니면 서로의 차이를 확인한 만큼 사이가 멀어질까 두려워졌다.
그 결과 알게 된 사실이 있다. 내 목소리를 제대로 낼 줄 모르는 사람은 타인의 목소리도 들을 줄 모른다는 점이다.
진지하게 경청하는 줄 알았는데 사실은 갈등을 피하려 입을 다물고 있는 내 모습을 깨닫고 놀랄 때가 많다. 이상한 보상심리도 자란다. 관계란 탁구와 다르게 오고 가는 과정 안에서 중간을 찾는 것인데, 자꾸 상대의 말을 쳐내고 이기려 한다. 지금까지 내가 져 줬으니 이번엔 너가 져 줘야 공평하다는 식의 심보 때문이다.
그러다 결국엔 내 목소리도 네 목소리도 사라지고 침묵만 남게 되는 건 아닐까 걱정이다. 그런 파국을 예방하는 길은 사람을 믿는 것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의 목소리가 다를 수 있겠지만 너 역시 조금 양보하며 중간을 찾고자 노력할 거라는 걸, 너와 다른 목소리를 가진 나를 미워하지 않으리라 믿는 것 말이다.
내 핸드폰 녹음기가 신해철의 목소리 대신 내 목소리로 채워지길 바란다. 모창을 잘 하는 사람이 아니라 내 목소리로 노래하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그리하여 그놈 목소리와 저놈 목소리, 이놈 목소리가 한데 섞여 난장판이 되어도 그냥 원래 그런 거지 하며 담담하게 내 목소리도 얹을 수 있게 되길. 마흔 전에 이루고 싶은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