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얼마 전 기사를 보다가 '멍청비용, 홧김비용, 쓸쓸비용' 이란 용어를 보게 되었다.
늦잠을 자서 학교나 직장에 늦을까봐 택시를 타는 데 쓴 '멍청비용', 야근과 직장 상사에 대한 스트레스로 나도 모르게 충동적으로 구매한 물건값 '홧김비용',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쓴 '쓸쓸비용'
뭐 이런 식으로 특히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각종 용어가 탄생하나보다. 나 역시 위와 같은 돈을 어쩔 수 없이 지출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멍청비용'에 대한 설명을 읽고 있자니 대학시절 지각을 면하기 위해 가끔 택시를 탔던 게 생각났다. 비싼 가격 때문에 지금도 택시는 잘 안타지만 당시엔 학생 신분에 눈물을 머금었던 기억이 난다.
그 때와 지금. 가끔 이런 비용을 쓰게 되는 건 같지만 다른 점은 예전에는 이런 용어가 없었다는 것이다.
기사 댓글에 의하면 '멍청비용'은 실제로는 쌍욕이 섞인 단어로 쓰이는 걸 기자가 순화시킨 것 같다고 한다.
가만보니 '소비'를 하는 데 이런 부정적인 어감의 용어들이 붙는다는 것 자체가 살기 힘들어졌다는 것의 반증이 아닌가 싶다. 특히 '멍청비용'은 욕으로 표현이 된다니, 그래도 남는 게 있는 '홧김비용', '쓸쓸비용'보다는 확실히 쓸모 없는 데 낭비했다는 생각이 강하게 작용하는 것 같다.
가끔 비합리적으로 보일지라도 '소비'는 생활을 윤택하게 해준다. 물론 낭비를 일삼진 말아야겠지만 돈은 어차피 쓰여지기 위해 존재한다. 쓰면서 즐거워야 되는데 즐겁지 않은 이유가 뭘까.
살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고정 지출'이 소득에 비해 너무 많다는 데 있다. 집, 생필품 등 기본 의식주에 써야하는 돈을 쓰고나면 정작 수중에 남아 있는 돈은 얼마되지 않는다. 집값, 물가가 소득이 비해 너무 높다. 이런 상황에서 비합리적인 지출을 했다는 생각이 들면 자괴감에 빠지는 것이다.
또 돈을 벌려고 일하는 게 괴롭기 때문이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해서 살아남기가 힘든 시대이다. 기본 의식주에 들어가는 비용이 만만치 않으니 미래에 대한 확신 없이 꿈만 바라보며 경제적으로 불안정한 삶을 살아나가는 게 두려워진다. 그러다보니 소수의 안정된 직업에 대다수가 몰리고 자신의 꿈보다는 직업적 안정을 쫓는 경우가 많다. 이러나 저러나 일하면서 즐겁기가 힘든 것이다. 이렇게 별로 즐겁지도 않고 직장에서 스트레스도 받아가며 힘들 게 번 돈을 너무도 어이 없는 데 썼다는 생각이 부정적 감정을 불러 일으키는 게 아닐까.
성장하면서 자신이 좋아하면서 또 잘하는 일을 탐색할 수 있고, 망설임 없이 그 길을 선택할 수 있는 환경. 혹시 중간에 좌절하게 되더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최소한의 경제적 지원. 그래서 누구나 즐겁게 일하고 적정한 소득을 얻으며 행복하게 소비할 수 있는 삶.
이게 정말 그렇게도 힘든 일인가?
지금 이 순간도 하루 하루를 버티며 살아내는 국민들이 낸 세금이 국민의 행복으로 다시 돌아왔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