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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상택 Sep 11. 2017

154. 칼리 충전소

2017년 9월 7~9일, 여행 351~353일 차, 콜롬비아 칼리

보고타를 떠나기 전 다음 도시를 선택해야 했다. 멕시코에서 만났던 Reika 누나의 추천사항 중 하나였던 한 여행지는 3박 4일 일정으로 가야 하는 먼 여행지라 선택에 제한이 있었다. 후보는 제2의 도시라 불리는 메데진, 살사의 고향이라 불리는 칼리, 그리고 소박한 마을이지만 커피 농장 등을 볼 수 있는 살렌토로 정해졌다. 메데진은 북부로 올라가야 하기에 보고타로 다시 돌아와야 하는 중복 동선이어서 먼저 포기했다. 살렌토와 칼리 중 고민이 많았다. 보고타의 호스트 Christian은 '살렌토가 더 좋을 거야. 작은 마을이지만 아름답거든'이라고 말했지만 살렌토를 가게 되면 역시 중복 동선이어서 과감히 칼리를 선택했다.


호스트와 함께하는 칼리 산책

보고타에서 버스로 약 10시간 정도 떨어진 곳에 살사의 고향으로 알려진 칼리가 있다. 중미도 그렇고 콜롬비아에서도 호스텔 대신에 에어 비 X비를 자주 이용하고 있다. 같은 가격에 편하게 있으면 더 좋으니까. 생각보다 저렴하기도 하고. 칼리의 호스트는 처음부터 꽤나 친절했다. 본인들이 이동수단을 제공해 줄 수 있다고도 했고 (물론, 그 부분은 조금 비싸서 피했다) 택시를 타고 오면 얼마쯤 될 거라고도 알려주었다. 아침 일찍 체크인해야 할 상황이었는데도 받아주었다. 심지어 가자마자 아침을 차려주었다! (물론 포함사항이었지만) 아침을 먹으면서 호스트는 '마침 자기 친구가 한 명 와있어서 칼리 이곳저곳을 차로 움직여 볼 건데 같이 가볼 거냐'라고 제안해 주었다. 오전에 푹 쉬고 오후에 움직이자고 했고, 이는 우리에게 아주 좋은 제안이었기에 응당 수락했다!

먼저 향한 곳은 칼리의 다운타운인 불러바드(Boulevard, 가로수가 양옆으로 들어선 넓은 도로)였다. 처음에 '불러바드'를 잘못 들어서 남미의 영웅이라 불리는 '볼리바르'로 들었는데, 막상 가보니 말 그대로 큰 도로였다. 시청과 오래된 교회들이 이 도로 근처에 밀집해 있으며, 저렴한 레스토랑과 노점상들이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외식도 하고 술 한잔 걸치면서 흥겹게 노는 거리라고 한다. 우리가 갔을 때도 몇 가게에서 노래를 크게 틀어 놓고 사람들이 먹고 마시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가로수 중간중간에는 고양이 동상이 있는데, 시내 한편의 고양이 박물관 쪽에서 만든 것이라고 했는데, 그것은 다음 날 가보기로 한다.

다운타운에서 가장 신기하고 재밌었던 곳은 의외의 조형물이 있던 자이로 발레라 공원(Plazolete Jairo Varela)였다. 현대 살사에서 가장 유명한 그룹으로 알려진 Niche의 리더인 자이로 발레라를 추모하기 위해 만들어진 공원이었다. 생전에 연주하던 트럼펫을 모델로 삼아 NICHE 모양의 조형물을 만들었고, 그들의 대표곡인 Cali Pachanguero가 트럼펫의 나팔 부분에서 끊임없이 재생된다. 사실 살사의 고향라고 해도 입장료 비싸면 들어가기 꺼려지고, 고민되는 것인데 나팔에서 재생되는 노래를 듣자마자 살사 바에 너무 가보고 싶어 졌다!

호스트는 우리를 데리고 산 안토니오 언덕으로 데려갔다. 다른 포인트로 간다길래 내심 '또 어딜 데려가는 거지'싶기도 했는데, 우리보다 열정이 넘치는 호스트는 '칼리의 전경을 볼 수 있는 아름다운 곳'이라며 우리를 데려갔다. 사실 칼리는 잘 개발된 도시기에 보고타에서 보는 전경과 무엇이 다를까 싶었는데, 근본적으로 다른 관점에서 전경을 볼 수 있었다. 바로 월출. 보고타는 산으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달이 떠오르는 모습을 보는 것은 쉽지가 않다. 그런데 칼리는 반대로 평지에 산 안토니오 언덕만 뽈록 튀어나온 형태라 달이 지평 선위로 뜨는 걸 볼 수 있다. 우리가 갔던 날은 구름이 많아 구름 아래에서 달이 올라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월출이라니!

내려가는 길에는 살사 클럽들을 볼 수 있었다. 살사의 고향이라는 말답게 많은 사람들이 살사 수업을 듣고 있었다. 일정이 허락되면 나도 며칠 머물면서 살사도 배워보고 천천히 시간을 즐기고 싶지만, 페루에 도착할 때까지는 어느 정도 고정되고 신속한 일정을 해 나갈 수밖에 없으니 아쉬움을 남기고 사진만 담았다. 호스트의 열정 넘치고 친절한 안내 덕분에 안전하고 편안하게 칼리를 돌아볼 수 있었다. 고마워요 Carlos!


한식으로 행복 충전!

칼리를 여행 중이었던 9월 9일은 우꾼의 생일이었다. 여행 중에 맞는 생일은 생각보다 외롭다. 누군가 나이가 먹으면 생일은 아무 의미가 없어진다고는 해도, 외딴곳에 홀로 나와 있는 상황에서 받는 축하는 더 크다는 것을 여행 중에 파키스탄에서 생일을 보냈던 나도 잘 알고 있다. 적당한 생일 선물을 고민하고 있다가, 우꾼이 '만두 먹고 싶다'라는 말을 했던 것이 기억이 났다. 칼리에 한식당을 쥐 잡듯이 뒤졌다. 다행히 딱 하나, 한국 문화원에서 운영하는 한식당을 찾았다. '우리 무리'라는 이름의 한식당은 칼리의 한국 문화 사랑방과 같은 곳이었다. 일단 존재를 확인한 후, 생일 당일 오전 사장님께 전화를 드려 보았다. 평일 낮엔 영업하지 않는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 여행 중이고 친구의 생일 때문에 꼭 미역국을 먹이고 싶다는 간절한(?) 요청으로 사장님께서 1시까지 오라고 하셨다. 우꾼에겐 '맛집 찾아놨으니 생일맞이로 오래간만에 맛집이나 가보자'며 꼬드겨 우버를 탔다. 우꾼의 정신을 사납게 하려고 하기라도 한 듯, 택시를 타니 비가 미친 듯이 쏟아지고 있었다.

사실 미리 전화를 해 만두와 미역국을 먹을 것이라고 말씀드렸기 때문에 우리가 자주 먹을 수 없던 오징어 볶음과 김밥을 추가로 시켜 먹었다. '이런 비싼(한식당은 비싸니까) 음식으로 거룩한 부담감을 주는구나'라며 멋쩍어했던 우꾼이었다. 지지리 궁상처럼 300원짜리 빵을 사 먹고, 천 원을 아끼려고 숙소를 찾고, 만 원을 아끼려고 여행지를 포기하며, 십 만원을 아끼려고 비행기 일정을 당겨버리는 우리기에 이 한식이 얼마나 귀한지 나도 우꾼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배낭여행자들이 무작정 돈을 아끼는 게 아니다. 여행을 길게 하면서 돈을 왜 아끼고 어떤 때 써야 하는지를 배우는 것 같다. 그 이유는 생각보다 단순한 것인데,

좋은 사람이랑 행복한 시간을 만들려고


이다. 아프리카의 두 달 반, 그리고 지금 중미와 남미를 포한한 한 달반. 총 네 달 정도를 같이 여행한 친구다. 좋은 점, 서운 한 점 많아도 소중한 동반자의 생일상을 위해 쓰는 30불이 아까울까. 그렇게 300원, 천 원, 만 원이 모여서 이 지금 우리가 먹을 수 있는 행복한 한국 음식 한 끼가 되는 거면 30불이 아까울 이유가 전혀 없다. 우리 무리 사장님의 음식 솜씨가 우리의 행복한 시간을 더 빛내 주었다. 물론, 만두가 너무 먹고 싶었던 우꾼에게 만두보다 오징어 볶음과 회심의 불고기 김밥이 더 와 닿았다고 했던 점은 웃픈 사실(두 메뉴가 만두에 비해 압도적으로 맛있었다). 정말 정말 생일 축하한다, 우꾼!

Carlos와 그의 부인, 그리고 그의 친구와 우꾼. 사진을 담는 나는 담길 수 없다. 우꾼의 채소전은 늘 옳았다.

그날의 한식은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우리에게 칼리 여행의 소중한 시간을 선물해 준 칼리의 호스트 Carlos 부부에게 한식을 대접하기로 했기 때문. 과테말라에서 시도했던 제육볶음과 채소전으로 한 끼를 했는데, 우꾼의 채소전은 아주 강력했으며 나의 제육볶음은 남편 Carlos의 큰 사랑과 매움의 고통에 모두가 눈물을 흘려야 했다(너희들이 먹는 피칸테보다 덜 매운 거 같은데...).


여행 나와서 한국음식을 해 먹는 걸 보면 누군가는 '아니 거기까지 가서 왜 또 한식을'이라는 생각을 품을 수 있다. 음식이 오감으로 즐기는 콘텐츠 중 하나라고들 한다. 눈으로 보고, 소리로 즐기고, 맛을 확인하고, 식감을 느끼고, 냄새를 맡는. 그런데 나는 음식이 주는 또 다른 것이 바로 어떤 경험을 공유한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꾼과 한식당에 가서 한국음식을 먹으면서 '콜롬비아 키토에서 쉽게 먹을 수 없는 미역국을 먹는다'는 경험을, 칼리의 호스트들과는 '그들에겐 생소한 한국음식을 소개하고, 우리에게 익숙한 한국음식을 여기 재료로 만들어 본다'는 경험을. 그래서 우리는 그렇게 한국음식을 만드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본의 아니게 칼리에서 특별히 많은 것들을 본 것은 아님에도, 한국음식으로 우리 입맛도, 감성도 팍팍 충전하고 갈 수 있어 행복한 시간이었다.


칼리의 마지막 밤거리

한식 식사를 마친 후 호스트에게 부탁해서 칼리의 밤거리를 걷겠다고 말했다. 칼리가 안전하다고 말했던 그들이지만, 밤 10시를 향해가는 시각이어서 인지 선뜻 그러라고 하지를 않는다. 콜롬비아는 다른 남미 국가들 중에서도 안전한 편에 속한다고는 하지만 이런 안정을 찾은 지가 그리 오래되지 않는다고 했다. 특히 칼리의 Calle 15(15th Street)은 강도 상습 출몰 지역이라 현지인들도 접근을 꺼린다고 했다. 호스트는 날 출발지점에 내려주면서 '절대 Carrera 15로는 가지 말고 큰길로 우회에서 오라'고 말해 주었다. 그때부터 시작된 나의 밤 산책! 사실 밤 산책을 선택한 가장 큰 목적은 살사 바를 한 번 가보는 것이었다. 

출발지는 Loma De La Cruz라는 공원이었다. 본디 여기는 살사를 노상에서 즐기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라고 알려져 있...으나 보통은 오후 5~6시에 모여서 힘들게(?) 살사를 흔들고 사라진다고 한다. 그러니 내가 도착한 시간에는 그 누구도 춤을 추러 올 리 만무했다. 공원 주변 으슥한 밤 시간을 즐기는 히피들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살사 바가 있다는 거리로 발걸음을 옮겼다. La Topa Tolondra, 칼리에서 가장 유명한 살사 바이다. 유명한 만큼 많은 사람들이 입장을 대기하고 있었다. 나도 들어가려고 했는데 입장료가 일단 조사한 것보다 너무 비쌌고, 그걸 감당하고 들어가려고 했지만 대기열이 한참이라는 말에 (Quarenta persona! 40명!) 그냥 바깥으로 흘러나오는 살사 음악과 사람들의 모습만을 보고 나와야 했다. 사실 칼리에는 수많은 살사 바들이 있다. 다만 알려진 게 적을 뿐. 한 살사 바는 손님 없이 조명만 튼 채 주인과 친구들만이 쓸쓸히 술을 마시며 있는 모습도 보았다.

말 하나 제대로 안통하는 사람에게 친절을 베풀 수 있는 마음이 우리에게 있을까?

살사 바가 있는 골목을 벗어난 이후부터 거리가 급격히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중간중간 어쩌다 보이는 동네 술집만이 밝혀져 있었다. 지도를 보니 나도 인식하지 못한 사이 Carrera 15 근처에 와있었다. 안 그래도 무서워 있던 찰나, 근처 동네 술집에서 술을 마시던 아주머니가 '거기 안돼!' 하면서 원숭이 흉내(?)를 내셨다. 얼굴을 긁는 것이 위해를 가하는 것. 즉, 강도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Robo, Carrera 15, No Entrada!(강도, 15th Street, 들어가지 마)' 내가 스페인어를 못한다고 하니 맞춤형 설명으로 나에게 위험을 표시해 주었다. 일행을 불러다가 차로 데려다줄 테니 여기서 이야기나 하다가라길래 말도 안 되는 엉터리 스페인어로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남한이냐, 북한이냐. 남한은 여기서 얼마나 떨어져 있냐. 한국은 어떤 돈을 쓰냐. 너는 무엇을 하는 사람이냐... 더듬더듬 스페인어로 몇 마디를 나누었다. 스페인어를 익히고 싶다는 생각이 절실해지는 순간, 아저씨가 차를 갖고 왔고 숙소까지 안전하게 데려다주었다. 


아프리카를 여행했던 묘령의 미모의 J누나는 우리에게 늘 이렇게 말했다. 

남미 여행지 중 가장 친절하고 사람이 매력적인 곳이 콜롬비아야!

여행지의 기억은 꽤나 주관적이라 나는 누나의 말을 맹신하는 것은 피하려고 했다. 위폐에 당한 아픔도 있어서 더욱 그랬지만, 적어도 누나가 가장 친절하고 사람이 매력적이라고 느꼈을 이유가 무엇인지는 충분히 느꼈다. 밤 산책을 마무리로 콜롬비아의 여행이 마무리되는 듯했다. 내일은 국경도시 이피알레스를 거쳐 에콰도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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