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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상택 Jun 08. 2018

165. 신비를 눈앞에, 마추픽추

2017년 10월 9~25일, 여행 383~399일 차, 페루 쿠스코

쿠스코에 오기 전까지도 페루의 많은 도시를 거치게 된다. 물론 그 도시들도 도시 나름의 매력이 분명 있다. 하지만 누군가가 페루로 여행을 간다고 하면, 반드시 이 곳을 가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을 할 것이다. 마추픽추. 잉카 문명의 숨겨졌던 그 거대한 도시를 보러 갈 것이라고. 나 역시도 마추픽추에 대한 기대감만큼은 한껏 안고 페루를 갔던 거니까. 그래서 쿠스코에서 지낸 지 4일째 되던 날, 멍해진 머리와 몸을 부여잡고 마추픽추를 향해 출발할 수 있었다.


마추픽추를 향한 험난한 길

이드로일렉트리카에 정차한 콜렉티보. 저것만 6시간 타야...

사람들은 쿠스코에서 마추픽추가 가까운 줄 알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사실 마추픽추가 어디 박혀있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더 많지 않을까 싶다. 전반적으로 말하자면 쿠스코라는 주에 위치해 있는 거지, 쿠스코 시 근처에 있는 것이 아니다. 쿠스코 시에 머문다고 해서 단박에 갈 수 있는 거리가 아니라는 점. 쿠스코에서 마추픽추로는 크게 세 가지 방법으로 이동이 가능하다. 첫 째는 '잉카 레일'이라 불리는 쿠스코 시부터 마추픽추가 있는 곳까지 여러 도시를 거치면서 움직이는 기차이다. 창문도 크게 뚫어놓아서 가면서 여러 가지 잉카 유적이나 자연경관을 볼 수 있는 최고의 이동수단이지만, 정말 비싸다. 말도 안 되게. 두 번째는 그런 잉카인들의 자연과 유적을 몸소 느끼며 걸어 다녀볼 수 있는 '잉카 트레일'이다. 가격은 정말 싸지만, 당연히 힘들다. 며칠을 걸려 이동하는 산악로인데 시간이 한정적인 내가 이런 무리수(?)를 둘 리는 없었다. 게다가 콜롬비아에서 삐었던 다리는 여전히 완벽하게 낫지 않은 상황이었기에. 마지막 남은 이동 방법은 승합버스인 콜렉티보를 이용해서 일정 위치까지 간 다음 걸어서 마추픽추가 있는 곳까지 이동하는 것이다. 가장 저렴한 방법이고, 가장 많은 여행자들이 선호하는 방법이다. 쿠스코에서 하이드로일렉트리카라는 긴 이름의 마을까지 콜렉티보로 6시간을 이동 한 뒤, 마추픽추 여행의 진짜 베이스캠프가 되는 아구아스 칼리엔테 까지 2시간을 걸어가면 되는 여정이다. 그간 수많은 트래킹이 있었으니 2시간 걷는 거야 뭐가 어렵겠냐 싶겠지만, 목적지를 아는 두 시간과 전혀 새로운 곳에 대한 2시간은 천지 차이라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내 예상은 정확했다. 

마추픽추로 향하는 길, 동반자가 있다면 무료하지 않는 길이다
잉카레일의 철로를 따라 걷는 행군길. 중간에 기차들도 다가온다. 산세가 아름답지만, 비가 오던 때를 생각하면 발걸음이 무거운 길.

2시간의 길은 정확히는 하이드로일렉트리카부터 아구아스 칼리엔테까지의 잉카 레일 길을 따라가는 것인데, 풍경이 한국의 산들이랑 비슷하다 보니 한국인들에겐 조금 식상하달까. 게다가 목적지를 명확히 모르는 상황에서 딱히 이정표도 없다 보니 그 길이 길기도 참 길었다. 하필이면 이런 상황에서 동행도 없이 혼자 걸으려니 더욱 심심했다. 누군가는 이 길에서도 참 멋들어진 사진도 많이 찍고 그러는데, 그런 것도 없으니 괜스레 울적해지는 걸음이었다. 길도, 마음도 험난한 마추픽추로 향하는 첫날이었다.

도착했을 때의 마추픽추 입구 근처. 호텔존을 한 바퀴 도니 해가 이미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신비를 눈앞에 마주하다

2시간 걷는 걸로 마추픽추를 바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하면 경기도 오산이다. 아구아스 칼리엔테부터 마추픽추 도시가 있는 입구까지는 트래킹이 아니라 등산(!)을 약 1시간 30분 정도 해야 한다. 오전 입장권을 끊었던 터라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아침을 먹고 5시가 되기 전에 숙소를 나서서 바로 아침 등산(...)을 위해 출발했다. 차로도 갈 수 있지만 편도 12달러라는 가격은 나에게는 꽤나 비싼 가격이었기 때문에 그냥 등산으로 올라가기로 한다.

마추픽추가 보이는 마추픽추 시티에 오르기 전 등산로 입구. 날씨가 안좋기론 이럴 수가 없다.
차로 구불 구불 올라가는 것을 등산로는 가로질러 간다. 덕분에 체력소모는 압도적이다!
등산로를 올라가던 중간에 찍은 모습. 이렇게 첩첩산중에 있으니 마추픽추를 못찾을 만도 했었다!

버스는 완만한 길로 구불구불하게 올라가지만 사람이 올라가는 길은 흡사 관악산을 생각나게 하는 난이도. 산타는 것에 꽤 이력이 있는 나인데도 중간중간 힘들었다. 보통은 한 시간 20분에서 한 시간 반 정도 걸린다는 코스였지만 불굴의 의지로 55분에 올라갈 수 있었다. 올라간 마추픽추 입구에는 새벽 이른 시간임에도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고 있었다. 꽤 긴 시간을 줄을 서 입장한 그곳에는 안개가 펼쳐졌다. 아니 의사 양반 이게 무슨 소리란 말이오. 안 그래도 그 전날부터 날씨가 심상치 않았다. 어제 기찻길을 따라 걸을 때도 구름이 짙게 껴 비가 내리기도 했었으니까. 그래도 이건 좀 너무했다 생각이 들었다.

올라가자마자 찍은 마추픽추. 이게 그나마 걷힌 상황이었고, 게다가 보정까지 한 것이다. 시...실화냐!

마추픽추 입장료가 152 솔(한화 약 6만 원)인데, 그 비싼 입장료를 내고 내가 봐야 하는 것이 이 안개뿐이라니! 그런데 주변에서 가이드들이 말하는 소리를 살짝 들었는데 '기다리면 열릴 것이다'라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돌아보는 것을 포기하고 마추픽추가 잘 보일 것으로 예측되는 위치에 그냥 자리를 잡고 기다렸다. 마추픽추는 원래 목표하지 않았던 유적지라고 한다. 최초 발견자로 알려진 빙엄 교수가 우연히 꼬마 아이를 따라 올라간 곳에서 우연히 발견된, 숨어있던 잉카 유적지라고 한다. 산 아래에서는 보이지도 않고, 일기가 항상 급변하는 지형적인 특성상 발견하기도 힘들고 산세가 험하다 보니 파괴도 덜 된 곳이었다고 한다. 빙엄 교수는 뜻하지 않게 이곳을 발견했다고 했지만, 뜻하고 온 나는 뜻하지 않게 안개를 보며 멍하니 기다려야 했으니 마음이 아플 수밖에. 

이랬던 마추픽추가...
이렇게 바뀌었고...
결국 완전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역시, 절대란 없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구름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숨겨져 있던 마추픽추의 모습이 드러났다. 사실 페루를 여행할 때에 즈음에 들었던 생각이 '참 비슷하다'라는 생각이 많았다. 그런 걸로도 친구들과 이야기도(정확히는 싸우기도) 했으니까. 이건 어디서 본 풍경이고, 이건 어디서 본 도시 같고. 그런데 마추픽추가 구름 속에 가려 있다가 드러나는 순간 내가 본 그 어떤 것과는 전혀 다른 신비함이 느껴졌다. 특별해서라기보다 가려졌던 것이 드러나는 그 신비한 순간이 마치 내가 그것을 처음 발견한 사람이 된 것 같은 환희와 감동을 주었던 것 같다. 그렇게 한참을 보았더니 시간이 어느덧 10시를 넘겼다. 내 입장권은 12시까지만 마추픽추 시내를 볼 수 있는 것이었는데, 그 구름이 움직이며 마추픽추 도시가 드러나는 걸 보느라 멍하니 몇 시간을 앉아있었던 것. 서둘러 시내로 가서 시내 곳곳도 보았다. 

시간이 지나고 맑아진 마추픽추. 아주 잠깐이었지만 행복!


잉카인들의 건축양식도 볼 수 있었지만, 내려가서 볼 땐 날이 맑아져 더욱 신났다. 좋은 날씨에 아이도 춤을 춘다!
야마가 내려다 보는 마추픽추. 넌, 우리와 저 곳을 보면 어떤 생각을 할까?

가이드가 없어 무엇이 뭘 의미하는지 다 확인하고 갈 수는 없었지만, 예전에 시티투어의 Diego의 말대로 잉카인들의 건축양식 특성이 고대로 드러나는 것들이나, 잉카의 상징 동물인 퓨마나 콘도르, 뱀 등의 형상이 곳곳에 숨어있는 것도 볼 수 있었다. 시내를 나와 출구에 가까워지면 농지로 쓰던 계단식 평지가 있는데, 그곳에는 야마들이 관광객들을 빤히 쳐다보며 마주하고 있었다. 삭사이와망에 비하면 넓이에 비해 적은 개체수지만 그래도 그 풍경 속에서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야마들은 모든 관광객들에게 인기 만점이었다. 마추픽추는 딱 두 번 입장이 가능하기에 시내를 다시 나와 재입장하여 다시금 그 도시의 풍경을 보았다. 이런 건축물이나 도시들을 보면 가끔은 대 자연만큼이나 놀라운 것은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많이 든다. 자연과 어우러져 공존할 수 있는 이런 신비로운 비경을 만들어 내다니. 신비를 눈앞에 마주한 최고의 날이었다.


방심은 금물

두 번이나 멍 때리면서 마추픽추의 비경을 보았더니 입장권 유효시간도 거의 끝나갔으며 차로 돌아가기까지 남은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입장권은 12시까지 유효했으며, 나는 반드시 처음 버스를 타고 내렸던 하이드로 일렉트리카까지 오후 2시 45분까지 돌아가야 했는데 벌써 11시 40분이었으니까. 서둘러 마추픽추 시티를 나갔다. '올라갈 때 산을 내려온 게 55분이었으니, 30분 정도면 내려갈 것이며 여기가 아후 아스 칼리엔테 보다는 하이드로 일렉트리카까지 거리가 조금 더 가까우니 2시간이 안 걸리게 갈 수 있으니 늦지 않고 복귀가 가능하다!'라는 계산을 마치고는 미친 듯이 산을 뛰어 내려갔다. 한때 소래산 날다람쥐로 불리던 내가 관악산 정도의 산을 내려가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내려가는 것은 올라갈 때처럼 천천히가 아니라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뛰었다. 나보다 훨씬 먼저 출발하던 사람들을 이십 명이상 제치면서 갔으니까. 올라왔을 때의 산의 풍경을 기억하며, 이쯤이면 절반이니 속도를 더 내 볼까 라고 생각하는 순간, 우지끈. 발목이 꺾였다. 순간적으로 정말 여행하면서 낼 수 있는 가장 큰 고함을 친 것 같았다. 처음엔 발이 부러진 줄 알았다. 잠시 후 걸어지기는 하는 것을 보고 일단 내려갔다. 속도가 올라갈 때보다 몇 배는 느려져 버렸다. 하필이면 꺾인 발은 콜롬비아에서 한 번 삐었던 오른발이었다. 힘들게 산을 내려와서 기찻길을 걷는데 도저히 속도가 나질 않았다.

워커를 신지 않았다면 내 발목은 정말 아작이 났을 것이다. 하산을 거의 마칠 즈음 지쳐 죽을 뻔 하기 직전의 사진

한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식은땀이 날 정도였다. 얼마나 아팠고, 어땠고를 더 이야기하는 것은 의미가 없을 것 같다. 결론 적으로 1시간 40분 정도 걸려서 돌아왔어야 할 복귀 장소까지 두 시간 20분이 걸렸고, 돌아와서 발목을 확인해 보니 말도 안 되는 붓기로 부어있었다. 언제나 방심은 역시 금물이다……. 그나저나, 이 상태로 어떻게 여행을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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