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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상택 Jan 07. 2021

171. 고난주간의 시작

2017년 11월 7-9일, 여행 412-14일 차, 볼리비아 산타크루즈

수크레에서 편하게 쉬었던 우리는 하나, 둘 씩 각자의 목적지로 향해 떠났다. 태환이와 대협이는 파타고니아 라인으로 이동이 예정되어 있었고, 유림이와 다해는 코차밤바로 떠났다. 가장 마지막까지 아이들을 모두 버스터미널 까지 바래다 준 뒤, 나는 나의 길을 떠나야 했다. 남미 일정 중 개인적으로 가장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는 구간이었다. 그리고 그 슬픈 예감은 현실이 된다.


원대한 계획

남미 대부분의 나라가 인프라가 생각보다는(?) 좋아서 국가간 이동이 그렇게 어렵지는 않다. 특히나 북에서 남쪽으로 내려오는 구간은 적어도 볼리비아까지는 버스가 꽤 그럴싸 하다. 문제는 볼리비아에서 다른 국가로 나갈 때인데, 볼리비아가 남미 최빈국이라는 이유 때문인지는 몰라도 버스의 빈도가 그렇게 많지가 않다. 그나마 페루-볼리비아는 무역교류도 활발하고 라파즈와 중심도시인 쿠스코가 멀지 않아 꽤 있는 편이지만... 문제는 내가 가려는 남쪽 방향의 버스가 정말 없다는 것이다. 

 Direct ETA 만 34시간이다. 키로수로 2,200여 km. 쉬운 이동구간은 결코 아니다

일단 나의 목표는 이러했다. 현재 머물고 있는 포토시에서 볼리비아 남부 최대 도시인 산타 크루즈로 이동한다. 산타 크루즈에서 파라과이의 수도 아순시온으로 이동할 수 있는 버스가 일주일에 두 대 (!)가 있다는 정보가 있었고, 내가 타려는 날짜와 다행히 맞아 진행할 예정이었다. 파라과이는 남미에서 볼리비아, 브라질, 아르헨티나를 접경하고 있는 국가이다. 덕분에 대상무역이 활발히 이뤄지던 국가라고. 특히 파라과이의 국경인 브-아 접경 지역에는 이구아수 폭포(!)가 있기 때문에 남미 여행에선 관문 국가와도 같은 역할을 한다. 파라과이를 하루 정도 휴식 후 통과하여 브라질을 슬쩍 거쳐 아르헨티나로 이동하며 이과수 폭포를 보고 수도인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간다는 것이, 내 원대한 계획이었다. 한동안 계획을 안만들던 나도 이 이동 전에는 최대한 정보를 찾아보려고 애썼다. 왜냐하면, 간단하게 찾아본 바로는 동일한 루트의 당시 최신 정보가 2년 전 정보일 정도로 정보가 부족했으며 파라과이의 국경지대인 시우다드 델 에스테의 치안이 굉장히 위험하다는 게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어찌되었든, 계획은 충분히 크고 튼튼했고 이제 그 계획을 차분하게 실행에 옮기는 것 뿐이었다.


고난의 예고편, 고산을 벗어나다

수크레에서 산타크루즈를 가던 버스. 짐 칸에 사람이 타는(!) 진기명기

돌이켜 보면 큰 고난은 아니지만, 첫 고난은 수크레를 벗어나자마자 마주하게 되었다. 바로 고도가 내려간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도가 내려가는 것이 오히려 반가운 일이라고 할 것이다. 높은 고도에서 생기는 신체 이상현상들인 '고산병'이 되려 고통스럽다고 할 텐데, 오랜 여행으로 적응된 내 몸은 고산병이 심하게 오지 않았다. 외려 고산 기후 특유의 건조함 덕분에 땀도 많이 안흘리고 쾌적한 생활을 했었다. 문제는 그나마 낮다는 수크레가 평균 고도가 2,810m 인데 산타크루즈로 내려오면서 그 고도가 400m이다. 당연히 해발고도가 낮아지니 기온은 굉장히 상승한다. 평균 10도 안팎이던 고산지역에서 평균이 30도인 곳으로 와버린 것이다. 게다가 숲으로 둘러 쌓인 이 도시는 습도도 어마어마 하다. 내가 방문하던 시기의 습도는 70%에서 계속 오르던 시기.

패딩 조끼를 입고 있었는데, 하루만에 쿨드라이 셔츠와 반팔로 갈아입어야 했다. 

더위가 뭐 대단한 변화냐 라고 하겠지만, 배낭 여행에서 습도나 온도는 치명적이다. 특히 도시이동이 있는 구간에서는 생소한 지리에서 숙소를 찾아가는 과정이 있기 때문에 무거운 가방을 매고 힘든 환경에 움직이면 더 빠르게 지치고, 그만큼 체력회복에 필요한 시간도 길어지기 때문이다. 상상하지도 못한 부분이었다. 고난 중에서도 그나마 행복한 것이 있었다면, 산타크루즈가 볼리비아 최대의 망고 생산지라는 점이었다. 이걸 행복이라고 해야할지. 


고난은, 이게 시작일 뿐이야

꽤 더운 날씨 때문에 바로 산타크루즈를 떠날 수는 없었다. 어짜피 버스 배차도 있었고. 이틀 정도의 텀이 있어 부랴부랴 산타크루즈의 볼거리를 검색했는데 결론이 '볼 게 없다' 였다. 산타크루즈가 경제규모로는 라파즈와 수크레 만큼 크지만, 사실 산타크루즈에 방문하는 사람들이 워낙 적어 한국어로 된 정보가 거의 없었다. 특이하다면 산타크루즈에 볼리비아 유일의 스타벅스 매장이 있다는 것 정도. 그마저도 내가 갔던 날이 사람들이 시위를 하던 날이라 가게들이 대부분 문을 닫았다(...)

가는 날이 장날. 아직도 무슨시위인지도 모른 채, 그저 스타벅스가 닫힌 것이 원망스러웠던 그 시위



왠지 모를 불안감에, 바로 버스터미널에 향해서 버스 스케듈을 확인했는데 맙소사. 일 주일에 두 대만 있다는 버스는 일 주일에 한 대로 줄어 있었고, 그 마저도 하루 갭이 아니라 이틀 갭이라 이 재미 없는 도시에 하루 더 쉬어야만 했다. 늘 느끼는 거지만, 내 마음대로 되는 건 진짜 하나도 없는 것 같다. 어찌 되었던 건에 하루 더 가볍게 산타크루즈를 돌아보고 버스를 타고 나가기로 했다. 이틀 날에는 너무 더워서 어디를 제대로 나가지도 못하고 겨우 밥 먹고 방에서 일정 확인과 사진 정리를 했던 기억이다. 운명의 날 저녁이 되었고, 파라과이 행 버스를 마주했는데,  버스가 심상치 않다. 


아시아와 아프리카, 그리고 유럽과 북미를 거쳐 남미까지 수 많은 버스를 타봤지만 이 정도 컨디션의 버스는 처음이었다. 기사에게 "이 버스로 파라과이 가는게 맞냐"고 몇 번을 물었다. 겉에서 볼 땐 흔한 남미 버스 같겠지만, 버스 창문은 제대로 닫히지도 않았고 버스 내부를 이루는 철판 어딘가는 용접이 뜯겨져 있어서 가다가 버스가 공중분해 되는건 아닌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고도를 내려오는 고난이 무슨 고난이냐'며 말하는 버스에 몸을 실고, 파라과이로 몸을 향했고 그것이 내 진정한 고난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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