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부터 쓸 데 없는 걸 모은다고 엄마한테 자주 혼났다. 그럴때마다 외할아버지 이야길 하곤 했다. 할아버지도 너처럼 자꾸 쓸데없는 걸 돈주고 사모았다고. 오남매를 키우고 손주들까지 키우시면서도 우리 ‘할압씨’는 낭만이 있었다. LP 컬렉터였고 정원의 꽃을 가꾸는 걸 좋아하셨고 오토바이와 자전거를 즐겨 타셨다. 부모님의 맞벌이 덕에 할아버지 집에 살았던 어릴적 그 시절에는 소니 워크맨부터 카메라, 전기면도기 같은 신기한 물건들이 항상 그의 곁에 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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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보면 그 사람이 좋아하는 쓸 데 없는 것들이 곧 그 사람을 떠올리게 하는 매개가 된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직후 유품을 정리하기 전 챙겨놓은 LP 몇 장을 가져왔다. 얼마 뒤 할아버지의 자녀들은 몇 백장이 되는 LP판을 팔아치웠다. 몇 장 챙겨놓은 게 얼마나 다행인지. 참 대책없고 낭만 없다. 입신양명하는 게 가장 큰 자아의 고양인 세대라면 당연히 낭만이 배양되지 못한 세대가 아닌가 싶기도 하고. 그치만 할부지가 좀 알려주지 그러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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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가끔 누군가와 보낸 그 때를 기억하고 싶어서 물건들을 오래 간직하는 편이다. 자주 꺼내어보지 못하지만 그게 지금의 내 상태와 절묘하게 오버랩 될 때 그 물건을 곁에 둔다. 나는 무엇을 사랑하는가, 무엇을 즐기고 살 것인가. 죽기 전까지 나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생산적이지 않지만 즐거운 무언가다. 한없이 소비적이며 누가 꾸지람하거나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상관없다. 나만의 것이다. 그런데 지금 보니 전부 과거형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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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본가에 들러 할아버지의 LP와 10년 넘도록 모았던 나의 CD컬렉션 중 일부 그리고 10년차 소니 CDP를 모셔왔다. 음악은 CD로 들어야 진짜지! 아주 꽂혀있었던 수집 대상이었다. 멀리 두고 싶지 않다. 좋아하는 것들은 현재로 자꾸 가져와야 행복하다. 우리 할배는 그걸 알았던 거지. 쓸 데 없는 게 진짜다. 쓸 데 없는 걸 향유하지 않는다면 존재도 퇴색된다. 역으로 쓸 데 없는 걸 향유하는 사람은 냄새도 진하다. 오래 기억에 남는다. 늙은이가 되어도 썸띵 스페셜 유슬리스 아이템이 자꾸 생겨났으면 좋겠다. 이왕이면 안락한 노후를 위해 저렴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