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훈 Jan 30. 2018

다친 사람의 속도

갑자기 일이 났다. 페이스를 올려서 장거리 러닝을 하고 다음날 하체 운동을 강도 높게 한 탓이다. 왼쪽 무릎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몸에 약을 넣기 싫어서 바르는 소염제와 파스로 간단히 조치했다. 건강을 과신했다. 며칠이 지나도 쉬이 낫지 않았다. 신기하게 스쿼트를 할 때는 무릎이 아프지 않아서 하체 운동을 주기적으로 했다. 그렇게 일주일 째 절뚝거리며 걷고 있다.

자주 무언가를 놓쳤다. 그것도 아슬아슬하게. 회사 앞은 익숙하다. 건너편의 자동차 동시 신호가 끝나면 건너야 할 횡단보도에 파란 불이 들어온다. 동시 신호가 끝나가는 게 시야에 들어온다. 저만치 뛰어가면 닿을 수 있는 거리다. 하지만 이 속도로는 무리다. 다리를 절며 열심히 걸어도 소용없다. 횡단보도 출발선 앞에나 겨우 도착하는 정도다. 어딘가에 상처가 있는 사람의 걷는 속도는 마음보다 한참 뒤에나 있다.

신호등, 엘리베이터, 버스, 회전문. 일주일 간 놓친 이것들의 횟수를 합치면 뻥 안치고 스무 번은 되는 것 같다. 다음이 있는 것들이다. 하지만 놓치고 나면 왜 이렇게 속이 쓰릴까. 그러고 보면 얼마나 많은 것들을 아슬아슬하게 붙잡으며 살았던 건가. 때로는 다친 줄도 모르고 억지로 출발선 앞까지 스스로를 이끌었던 때도 있었다. 사람들은 어떻게든 아등바등 가보려 하는 자세에 갈채를 보낸다. 하지만 이제 그 장단을 응원할 수 없다.

먹는 진통제를 사고 운동 스케줄을 취소했다. 난 쉬어야 했다. 아프다고 말해야 했다. 치료를 받아야 했다. 이제 다리가 조금씩 낫고 있다. 몸 한 구석 아픈 게 이렇게 불편하다. 마음도 같다. 무리하지 않아야 한다. 어디든 아플 때는 나을 때까지 느리게 면밀히 경과를 관찰해야 한다. 더뎌도 분명히 나아지고 있다. 무언가 내 앞에 놓여있을 때 달려가서 붙잡을 수 있는 성함이 얼마나 중요한가. 일단 꾸역꾸역 가는 게 어디냐고? 아니, 아플 땐 늦게 가자. 그래야 다음이 오면 박차고 나아갈 수 있다.

작가의 이전글 쓸 데 없는 것 예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