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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훈 Mar 06. 2020

중요하지 않은 것들 중에서는

술이 가장 중요해요

나이가 들수록 술과 음식을 먹는 행위에 까다로워진다. 혼자서는 대충 해결하는 편이지만, 누군가와 함께 먹어야 하거나 밖에서 돈을 내고 사 먹는 데에는 특히나 더더욱 까다롭다. 그중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것은 아무 음식이나 아무 술을 대충 시켜서 아무렇게나 먹는 것이다. 누군가와 만나 같은 음식을 입으로 넣고 대화하는 행위는 잠시 동안 ‘식구’食口가 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시간과 돈은 물론 신체적, 정신적 에너지를 쓰게 된다. 이왕 같은 에너지와 물자를 쓴다면 최대한 효율적으로 더 나은 선택을 하고 싶다.

가장 아무렇게나 먹는 곳은 회식자리다. 직장인도 회식 자리에서 나름대로 효율을 좇는다. 회식 때 맛있는 음식점을 갈 때도 있다. 소고기를 먹는 날은 운이 좋은 날이다. 그러나 (특별히 보스가 개인 카드를 주지 않는 이상) 술은 언제나 소맥이다. 맥주는 덜 취한다. 소주는 너무 빨리 취한다. 적절한 속도로 빠르게 취할 수 있는 효율성 좋은 술은 소맥이다. 직장인들의 회식은 소맥을 연거푸 털어 넣다가 밤 열한 시쯤 갑자기 종료된다. 가정과 내일이 있는 직장인은 빨리 먹고 빨리 집에 가서 내일을 준비해야 한다. 어떤 메뉴를 고르든 소맥은 만능이다. 개인적으로는 최악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효율과는 사뭇 다르다.

술과 음식의 궁합은 꼭 지켜져야 한다.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과 맛있는 술을 나눠 먹는 게 인생에 몇 안 되는 행복이기 때문이다. 세가지 조합 중 하나라도 빠지면 서운하다. 대개 실망스러운 식사는 약속을 잡는 과정 중에 쉽게 파악이 가능하다. 대충 여러 명이 들어갈 수 있는 자리만을 찾는 사람과 약속을 잡다 보면 벌써 시무룩해진다. 같은 시간에 같은 돈을 쓰는 거라면 더 나은 곳이 있을 텐데. 나에게 주도권이 있다면 제안을 하지만 나서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음식에 집착하는 사람처럼 보일까 봐 잠자코 있게 된다.

대단하게 팬시한 곳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다. 만나는 사람들의 ‘결’과 ‘TPO’에 따라 다르다. 군대 소대 후임들과 오랜만의 만남에는 치킨집에 가거나 돼지고기를 굽는 게 좋다. 2차로는 골뱅이에 계란말이도 괜찮다. 단 둘이 본다면 조용한 곳으로 갔으면 한다. 소규모로 지인들과 만난다면 가능한 한 맛있는 곳으로 가고 싶다. 재정적인 여유가 있다면 평소 접하기 어려운 주류를 파는 곳을 가고 싶다. 장소가 있다면 집에서 모여 음식은 따로 준비하고 (밖에서 먹기에는 비싸지만 마트에서 사면 저렴한 술인) 와인이나 위스키를 먹는 게 낫다. 다 맞춰 달라는 게 아니다. 잘 모르겠다면 물어봐주는 종류의 센스를 지닌 사람이 좋다. 나와의 만남에 노력해주는 사람이 좋다는 말과 같다.

점점 중요하지 않은 것에도 호불호가 생긴다. 다만 중요하지 않은 것들 중에서는 술이 가장 중요하다. 좋은 사람들과 맛있는 것을 먹으며 같이 취해가는 건 좋은 일이다. 그러나 내가 좋아하는 운동과 술은 서로 상극이다. 무분별하게 마셨다가는 몸을 망친다.(이미 조금 망가졌다) 그러니까 좋은 걸 두루두루 오래 즐기려면 매번의 선택을 잘 내려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맥주부터 막걸리, 와인, 위스키, 브랜디처럼 자기만의 향이 있는 술이 좋다. 소주는 역해서 먼저 찾아먹지 않는다. 하지만 어떤 정취와 장소는 그걸 잠시나마 무의미하게 만든다. 여름에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면서 먹는다든지, 추운 날 잔치국수와 함께 먹는다든지, 언젠가는 같이 있는 사람과의 분위기에 젖어 소주가 술술 들어간다. 그러나 이제 누구를 만나더라도 삼천 씨씨 맥주 피쳐와 말라비틀어진 강냉이 및 기본 안주를 셀프로 가져다 먹어야 하는 준코 같은 호프집은 피하고 싶다. 단, 준코 노래타운은 신나니까 예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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