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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훈 Mar 12. 2020

유혹하는 물건

탈압박 스킬이 절실한 때

물건을 늘리는 게 싫은 요즘이다. 물건도 자기 자리를 필요로 한다. 물건을 들이면 공간이 좁아진다. 좁아지는 공간과 별개로 너무 많은 물건을 끌어안고 사는 게 좋지만은 않다. 결국 버려지기 때문이다. 1년에 한 번씩 집을 뒤집어엎어 1년 간 쓰지 않았던 물건을 버리는데 그 양에 놀라곤 한다. 쓰레기 실명제 같은 게 없어서 망정이지 나는 아주 성실한 쓰레기 산지 직송 생산자다.

뭐든 쉽게 사던 때가 있었다. 맥시멀리스트의 소확행은 쓰레기 대생산 시대의 막을 열었고, 예쁜 쓰레기는 머지않아 정말 쓰레기가 되었다. 그 무렵 버린 것들이 기억난다. 그것들은 애매했기 때문에 버려졌다. 버리지 못할 만큼 헤리티지가 있는 좋은 물건이 아니었으며 활용도가 높은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때, 그 기분, 그 상황, 거기에서만 쓸모 있던 물건들은 대개 버려졌다. 중고거래가 활성화되어 있지만 애매한 건 타인도 알아서 잘 팔리지도 않는다. 쉽게 사면 쉽게 버리게 된다. 환경에 끼치는 악영향도 무시 못할 일이다. 이제는 최대한 물건을 사지 않는 게 지구에도 나에게도 좋은 일이다. 가능하다면 정말 최소한으로 소유하는 게 이치에 맞다고 느낀다.

그럼에도 유혹하는 물건은 있다. 가끔 그런 물건들을 볼 때마다 없어도 살 수 있는지, 이미 대체품을 갖고 있지 않은지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생각보다 그 관문을 통과하는 물건은 몇 없다. 갖지 않아도 삶에 지장이 없다. 그러나 휴먼 빙은 유혹에 나약하다. 몇 주에서 몇 년 간 지속적으로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때는 소유하기로 결정한다. 단 정말 오래 쓸 좋은 것을 사거나, 버리기 아쉬울 만큼 활용도가 높아야 한다.

어떤 물건은 의도치 않게 생필품의 영역으로 들어오기도 한다. 이사 오기 전 집 구조를 구상할 때 온전히 쉬는 공간으로 두기 위해서 책상을 놓지 않았다. 아쉽긴 했지만 책과 업무는 카페 가서 보면 되고 게임도 하지 않으니 일상에 불편함은 없었다. 그러나 최근 거듭되는 좌식 재택근무로 인해 고관절에 압박이 심해졌다. 탈압박을 위해 작업대를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오래 소유하고픈 좋은 테이블을 놓기에는 공간이 넉넉지 않다. 그럴 때는 활용도를 최우선 가치로 삼는다. 언제든 차지한 자리를 쉽게 비우고 이동할 수 있도록 다리에 상판을 얹어 쓰는 작업대와 수납 시 공간을 차지하지 않는 접이식 의자를 구매했다. 구석에 두고 작업대로 쓰니 좋다. 친구를 초대할 때는 거실 가운데로 꺼내어 쓰면 되겠다. 조금 더 넓은 집으로 간다면 고정식 다리를 달아서 더 튼튼하게 사용할 수도 있겠다.

테이블과 의자 2개를 합쳐 7만 9천 원이 들었다. 싼 게 비지떡이라고 한다. 일리 있다. 자본주의는 정교하니까. 약간의 차이를 통해 비슷한 제품을 계속해서 소비하게끔 만든다. 차이가 주는 경험의 고양은 분명 있다. 그것은 소비주의를 견고히 만들고 신봉하게끔 한다. 작은 차이가 내 삶을 바꿀 것 같은 기분을 들게 하지만 실제로는 달라지지 않는다. 거기에 쉽게 놀아나면 덜 소유하고 덜 버리는 삶을 살 수 없다.

더 본질적인 것을 좇고 싶다. 아르네 야콥센이 디자인한 테이블에서 커피를 마신다고 하루의 기분이 달라지지 않는다. 반면 작은 이케아 작업대에서 만든 흑백사진은 아직도 들춰보는 사진 중 하나다. ‘어떤’ 테이블을 소유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거기서 ‘무엇’을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느낀다. 본질 다음은 자기만족과 기분의 영역, 즉 사치의 영역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것을 마냥 무시하며 살 수 없다는 걸 안다.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때 소유하면 된다. 단, 탈압박은 점점 힘들어질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브랜드와 쇼핑몰은 나의 지갑에서 돈을 털어내기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다. 그러니 나도 전력을 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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